번역은 괜찮다고 본다. 만연체의 원문을 잘 옮겼고, 애써 의역하지 않은 흔적이 작품 내내 보인다. 중역의 안정효역이 매끄러운 번역이 장점이라면 민음사 조구호 역은 원어의 유창한 표현을 그대로 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있다.
근데... 번역가는 번역을 하는 사람이고 해석은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지 스스로 평론을 각주로 달면 어떡함?
밑에는 예시임.
* 페르난다는 부부관계를 할지라도 옷을 다 벗지는 않고 최소한의 부분만... 구멍이 뚫린 잠옷을 입고 있다.
= 페르난다와 세군도 부부를 묘사하며 단 주석.
* 마꼰도에 자본주의를 들여온 사람으로 인식된다.
= 외국인 이름에 뜬금없이 주석을 달아놓고 인물을 해설함
* 마꼰도에서는 삼월이 기적이나 경이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달로서... 매년 삼월에 (집시가) 마꼰도에 찾아왔다
= 그런데 어느 '삼월'에 걸린 주석. 이런 건 독자가 해야 알아채든 못 알아채든 독자의 소임, 영역이 아닐까?
*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외국 자본의 영향하에 있는 당국이 저지른 범죄를 교회가 동조하고 있다고 본다
=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열일곱 아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이마에 그려진 '십자가'에 걸린 주석
* 메메의 여행은 본래의 순수와 고요로 회귀함을 의미한다.
=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지나치게 선을 넘은 평론가적 주석이 작품의 온전한 독서를 망치고 있음.
더욱이 무엇보다 '이야기성'이 핵심인 작품에서 번역가가 이건 이거, 저건 저거 선생질을 하고 있음.
물론 원어의 표현을 병기하여 설명해준다거나 음식, 문화, 의복과 관련된 자세한 설명은 이해에 도움이 되지만
의미를 한정지어버리는 수능식의 해석은 이 판본의 큰 결점이라고 생각함.
뭐 임의로 잘라먹거나 하진 않았다니 다행이네
맨 마지막꺼 말곤 난 괜찮은듯
딱히?
나는 주석은 번역가의 것이고 번역가의 영역이라 생각해서 딱히? 오히려 중역한 안정효역이 더 위험하다고 봄.
의견은 존중하지만 본문 내의 주석은 어디까지나 원작자의 것이고 번역가가 보탤 수 있는 건 번역 자체에 대한 것뿐임. 그밖의 주관이 들어가는 건 해제나 해설로 뒤로 빼는 게 마땅하다
일단 이런 문제는 역시 개인의 번역관 차이라고 봄, 나도 의견 존중함. 그런데 주석, 미주, 해설, 상관없이 원 텍스트에 덧붙이는 모든 글(원문 역시 번역가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 있을 수 있음, 이건 개인적으로 아주 안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함/그래서 안정효 역이 민음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고)은 전적으로 작가의 주관성, 세계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대놓고 텍스트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나는 더 좋다고 생각함. 어쨌든 최소한 번역가와 작가 사이의 층위 구별은 가능하잖아, 작가가 쓴 원문에 박혀있는 설명도 아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모든 독자는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최소 원문의 텍스트와 주석의 텍스트의 질감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봐서 특별히 문제 될 건 없다고 봄.
여담으로 마르케스는 번역가가 주석 붙이는 것을 싫어했나 봄. 그는 번역의 객관성을 배제했음. 번역이라는 영역 특성상 언어가 왜곡될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번역가를 언어 예술가로서 생각했대. 그래서 다른 텍스트를 느끼고 자신만의 언어로 새롭게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그에게 있어 번역의 최고미덕이라 생각해서 역설적이게도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번역 스타일이 마르케스에게는 최고의 번역 스타일이라는 말이 됨. 나는 원저자의 원문은 분명 존재하며, 오로지 원저자의 의도에 완벽히 부합하는 표현 역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개인적으로 마르케스의 번역관에 비동의.
마지막은 에바긴 하다
민음사가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