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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양을 쫓는 모험>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정확히 대응되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하루키의 소설을 캠벨의 이론에 입각해 해석했기 때문이 아니라, <양을 쫓는 모험>이 캠벨의 신화론에 따라서 '이야기론'에 입각해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책.


책의 시작은 가라타니 고진이 한 "구조밖에 없기 때문이다."는 말. 저자는 이 문장을 응용해, 하루키와 같은 서브컬처 문학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구조밖에 없는 소설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세움. 이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과 <민담 형태론>이 말하는 신화/민담의 기본 구조와 하루키 작품이 얼마나 유사한지 보여줌으로써 그 근거를 댐.


나는 이 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함. 저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과 달리, <양을 쫓는 모험>에서 하루키가 지나치게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그려낸 것은 하루키가 어떤 '이야기 창작 법칙'을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함. 그리고 그 창작 법칙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과 <민담 형태론>이라는, 신화와 민담의 구조를 밝히는 책을 통해 습득했을 거라고 함. 그렇다면 하루키가 <천의 얼굴..>과 <민담 형태론>을 참고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음. 심지어 <천의 얼굴..>은 <양을 쫓는 모험>이 출간된 이후에 일본어로 번역된 책임. 저자는 이 사실에 대해 "이 책(<천의 얼굴..>)의 일본어판은 1984년 간행되었지만 하루키의 '어학 실력'을 고려한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함.


그리고 처음에 인용했지만, 저자는 하루키 작품에 "구조밖에 없는" 까닭이 그의 작품을 <천의 얼굴..>과 <민담..>에 나온 신화소로 환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함. 그런데 이 환원이 엄밀한가? 저자는 <천의 얼굴..>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서 하루키 작품의 구절과 유사한 구절을 찾아 하나하나 대입하며 '이렇게나 비슷하다'라고 말함. 그런데 저자 스스로 밝히듯이 캠벨이 제시한 신화 구조는 일종의 이상적인 상으로서 모든 신화에 들어맞는 엄밀한 것이 아닐 뿐더러, 애초에 비슷하다고 보여주는 구절도 별로 비슷하지 않음. 신화/민담과 소설의 관계가 이렇게 1:1로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밀접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남음.


위는 내용과 관련된 것이고,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일으킨 옴 진리교와 하루키를 동일시하는 표현에 있음. 저자는 하루키 작품의 어떤 독자가 하루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작중 시기순으로 나열한 연대기를 만든 것을 근거로, 하루키가 연대기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창작한다고 주장함.그리고 옴 진리교 교주의 수첩에 자신들이 일으킬 사건들의 연대기가 적혀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옴 진리교가 연대기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현실에 구현하려고 한 집단이었다고 주장함. 따라서 하루키와 옴 진리교는 마치 거울상처럼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 이 어이없는 추리 이후 저자는 지속해서 하루키와 옴 진리교를 비교하는 언급을 함. 예를 들어


"하지만 하루키는 옴진리교에 대한 근친 증오적 내성도 있기에.."


"아사하라(옴 진리교 교주)와 <1Q84>의 유일한 차이점은 <1Q84>는 소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등등. 이쯤 되면 대놓고 모욕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음.



아주 오랜만에 시간 낭비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책이었음. 차라리 '현대의 신화' 같은 느낌으로, 하루키가 신화/민담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이용했는지를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음.


평점은 1점(5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