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옴진리교


하루키는 옴진리교가 자신이 구축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서브컬처에서 비롯된 전기적 픽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옴진리교의 일원들이 서브컬처를 긁어모아 만든 픽션이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도 느꼈다. 에세이 ‘도쿄 지하의 흑마술’에서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옴진리교와 아사하라 쇼코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픽션이었다. 요컨대 ‘실증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그것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오해를 감수하고 말하자면, 모든 성립 과정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이자 픽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면에서 이야기는---이를테면 백마술로서---달리 예를 찾을 수 없는 강력한 치유력을 발휘한다.268


268.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2011) 235쪽.


흑마술과 백마술의 대립 같은 서브컬처(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해진 관념이긴 하지만)적 발상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마술이 가진 위험한 힘에 대해 하루키는 잘 알고 있다. 전기적 상상력이 현실과 뒤섞이는 순간, 카지와라의 말년과 같은 비참한 결과를 낳는 법이다. 하루키도 이렇게 지적한다.


다만 두말할 필요 없이 픽션은 늘 현실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 픽션은 우리의 실재를 깊게 삼켜 버린다. […] 언젠가는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269


269. 앞의 책, 235쪽.


오츠카는 《서브컬처 문학론》의 하루키를 논하는 장에서, 하루키가 현실의 역사에서 망상의 연대기, 오컬트적인 것을 이루는 조각을 작품의 형태로 만든다며, 히사야마 노부의 문장을 인용하며 지적한다. “러브크래프트나 톨킨 같은 ‘연대기’를 유발하는 호러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의 수용”은 정치운동을 하던 세대가 “1970년대 초두부터 중반까지 정치에서 오컬트로 전향하는” 경향이 있었고, 정치운동과 거리를 두는 형태로 작업해온 하루키도 그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치운동에서 서브컬처로의 전향은 앞에서 살펴보았듯 “1990년대 옴진리교로 이어지는 지하수맥의 진원지”270가 되었다. 하루키는 여기에 책임을 느꼈다. 자기가 추구했던 ‘거대한 총체를 이루는 소설’을 만들기 위해 초기의 하루키는 단편을 썼다. 단편들은 직소 퍼즐을 구성하는 조각들처럼 생겼고, 모아놓으면 완성된 직소 퍼즐, 다시 말해 ‘연대기 = 거대한 총체’를 암시하는 느낌을 풍긴다.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만의 별세계를 만들려 했던 본인이 실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을 것이다.


270. 나스 키노코 《空の境界 the garden of sinners 上》 講談社(2004) 425쪽(카사이 키요시 해설). 저자 번역.


따라서 하루키가 더 이상 현실에서 ‘디태치먼트’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옴진리교 사건을 취재한 후 《언더그라운드》(1997) 《언더그라운드 2: 약속된 장소에서》(1998)를 발표한 이유도, 일본의 서브컬처 인사가 옴진리교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1Q84》 역시 이런 맥락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속세와 동떨어진 채 고고하게(디태치먼트) 생활하던 일본 문학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단순히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살포사건과 고베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자 충격을 받아 현실 사회에 커미트먼트하기로 했다는 식의 분석은, 이른바 ‘순문학’의 관점으로만 납작하게 하루키를 바라본 것이고, 하루키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서브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 손지상 저



위 책을 포함해 일본의 서브컬쳐 지식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서 중 하나는 '재미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생각에 대한 자의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의식에는 옴진리교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도 '그저 재미로' 혈액형 성격설과 사주 점성술을 믿듯이, 전후의 서브컬쳐와 전기소설은 초능력, 외계인, 대체역사와 같은 허구의 서사를 채우기 위한 디테일을 크툴루를 비롯한 음모론이나 오컬트에서 가져왔는데, 이들에게 옴진리교는 서브컬쳐에 너무 깊이 빠져버려 '허구와 실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부연컨데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마 케로로 중사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것이다. 건담을 포함한 여러 서브컬쳐에 대한 패러디로 가득찬 이 만화-애니메이션은 서브컬쳐에 사용되는 수많은 오컬트와 음모론이 등장한다. '외계인은 실제로 존재하며 사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던가, '지구 어딘가에 초고대문명의 병기가 잠들어있어 지구를 종말로 이끌지 모른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이렇듯 우리가 오컬트나 음모론에 대해 잘 모르며 그저 웃음거리로 생각하고 소비할지라도, 서브컬쳐는 그러한 모티브를 차용함으로서 이를 재생산한다.


그리고 위 책에서 지적하듯이 이렇게 의미를 모른채 받아들인 지식은 역설적으로 이에 대한 숭배 또한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기억에 대한 오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비합리적일지라도 상상이 익숙하고 정서적이며 그럴듯하다면 진짜 기억과 착각할 수 있다. 마치 사이비 종교에서 무교도가 아닌 어리숙한 종교인을 초기 전도의 타겟으로 삼듯이, 어떤 분야의 초보자가 자신과 타인의 실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듯이, 지식은 있으되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나 혹은 다른사람이 실제 의미를 조작한다고 해서 이를 알아채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폭력적인 게임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강력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지식에 비추어 비합리적 착각을 교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상상이나 암시에 쉽게 빠져들 수 있으며(BIG5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소설, 만화에는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깊이 빠져들곤 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매체들에서는 상상을 진짜 기억처럼 느끼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사용하며, 이 기술은 허구와 실재의 구분이 모호할 때 제일 강력하다.



그만 줄이자면 필자는 오쓰카 에이지의 작법서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물론 하루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애초에 전후의 서브컬쳐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 논할 경험도 능력도 없다. 하지만 그의 책에서 서브컬쳐의 관점에서 하루키와 옴진리교의 유사성이 지적된다면, 이는 하루키가 옴진리교와 닮았다기 보단 옴진리교가 하루키와 서브컬쳐를 닮아있는 것이며, 이는 서브컬쳐 비평에서 만연해있는 담론이다. 오쓰카 에이지가 이러한 구분을 못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