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거진 1년 반 만에 들른 동네 도서관에 이 책이 있길래 30분 정도 훑어보았다. 듣던대로 앤더스 에릭슨이나 게리 클라인, 안젤라 더그워스 같은 전문성 연구자나 긍정심리학자들의 주장을 대놓고 까면서 반골기질을 드러내는 책이었는데, 그 논리가 좀 마이클 샌델을 연상케하는, '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잘 살펴보면 죄다 허수아비 치기'인 감이 강하다.



가령 저자는 안젤라 더그워스가 사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사관학교에서 중도포기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는 지능이나 타고난 능력이 아닌 그릿=끈기였다)를 까면서 농구선수에게 키가 중요하다고 해서 야구선수에게도 키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듯이, 사관학교 학생들에게 끈기가 중요하다고 해서 끈기있는 게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안될 땐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요약이 저자의 주장의 전부는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난잡하게 인용한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대니얼 길버트의 감정예상 연구(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미래에도 지속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정서적 사건의 영향력은 길지 않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에 느낄 감정을 그리 잘 예측하지 못한다.)라든가,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한 윌터 미쉘이 주장한 성격의 맥락의존성(BIG5와 같은 보편적 성격특성은 사람의 행동을 일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며, 실제 사람의 성격은 각각의 상황에 맞게 조건화되어있다), 본성과 양육, 개인과 상황의 대립에 대한 논쟁에서 발생하는 복잡성의 환원에 대한 문제(이는 성격심리학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요인분석에 제기되는 비판이기도 하다.)등이다.



하지만 그럼 안젤라 더그워스는 바보라서 이런 연구들의 존재를 몰랐단 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성격심리학자나 긍정심리학자들은 BIG5성실성이나 그릿과 같은 성격특성이 모든 상황에 유리한 것은 아니고(모든 성격에는 트레이드 오프가 있다. 가령 외향적인 사람은 다양한 자극을 추구하며 실제로 내향적인 사람보다 더 행복하지만, 지나친 자극추구=모험심은 생존에 불리할 수도 있다. 만약 외향적인 게 좋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모두 외향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자제력과 끈기를 발휘하는 정도가 다르며, 어떤 종류의 처벌이나 꾸짖음은 문제행동을 소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듯이 어떤 종류의 칭찬이나 격려는 고정적 마인드셋과 같은 나쁜 자존감을 형성하고 오히려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GRIT은 끈기 뿐 아니라 능력성장의 믿음, 내적동기, 회복탄력성과 같은 성격심리학과 긍정심리학의 선행연구들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허수아비치기는 책 전체에서 계속 반복된다. 내가 30분 동안 훑어 읽은 분량에서만 해도 저자는 게리 클라인과 그 동료들이 수행한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간호사나 산불진압 소방대와 같이 급박하고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에 대한 연구와 인식촉발결정모델(전문가의 의사결정은 상황판단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다시말해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기존의 의사결정 경험과 연결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이에 맞는 지식과 기술을 유창하게 인출해낸다)을 까면서 불확실성으로 가득차있고 기존의 경험으로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상황(사악한 세계)에서는 경험의 폭이 매우 중요하며, 다양한 대안을 생성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게리 클라인과 자연주의 의사결정 연구자들은 병신이라 이걸 몰랐단 말인가? 게리 클라인은 인식촉발결정 모델이 모든 의사결정을 설명한다던가, 직관적 의사결정이 계량적-합리적 의사결정보다 언제나 앞선다던가, 전문가가 의사결정하는 방식이 인식촉발결정모델 하나 뿐이라고 하지 않는다. 게리 클라인은 '이기는 결정의 제 1원칙'(원제는 가로등 빛과 그림자Streetlights and Shadows)과 같은 책을 통해 자연주의 의사결정 연구의 한계(그림자)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실제로 인식촉발결정모델에는 멘탈 시뮬레이션과 자기 모니터링을 포함하는 수 많은 변형과 제한사항, 다양한 '힘의 근원'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오히려 이런 비판은 사악하지 않은 실험실 환경에서 의사결정하고 인지편향을 찾아내기 바쁜 계량적-합리적 의사결정 연구자들에게나 어울린다.


정리하건데 나는 (내가 읽은 부분에 한해) 이 책의 주장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주요 연구자의 주장을 설명하고 다른 연구자의 주장을 동원해 비판하고 있음에도, 대중서만 디립다 판 필자에게도 연구의 흐름에 뒤쳐진 게 느껴지며, 실제로 저자가 다른 학자들의 주장을 동원하는 방식 또한 그리 체계적이거나 일관적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이 분야에 문외한이라면 저자가 비판하는 연구자들의 책을 먼저 읽어보아야 연구자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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