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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中正)’이란 말이 있어.

말 그대로 치우침이 없이 올바르단 뜻이지.

사람이 너무 자신의 정(正)에 취해 있으면 입장이 반대인 사람에겐 그만한 개새끼가 또 없을 거야. 반면에 사람이 너무 중(中)하기만 하다면 줏대없이 휘둘리며 헛물이나 켜겠지.

달리 중용이라 말하기도 하는 중정은 옛사람들이 생각하던 처신의 기본 원리중 하나야. 물론 개인의 이상은 중정에 있으나 세상은 늘 이상과 먼 곳이라 편협하고 삿된 의견이 날아다니지.

말끝마다 피장파장과 허수아비를 붙이지만 이상하게도 본인이 논리적이라는 우월감으로 가득 찬 야갤러들, 그저 반대되는 의견을 토착왜구, 대깨문으로 매도하는 정치의 소비자들, 언론을 믿지마! 유튜브를 믿어! 하는 분들 역시 그렇겠다.

지금 잘난 척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고.

하지만 비록 형식도 못 갖추고, 비약도 심한데다, 대놓고 편향적인 어떤 의견이 있더라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춘 경우가 있어. 혹은 그 자체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여지, 혹은 반성의 여지를 던져주는 경우도 있지.

나 같은 경우엔 ‘스키너의 심리상자 닫기’가 그런 책이었어.

 고 1 겨울에 읽었으니 대략 10년 가까이 지난 책이구나. 제목부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 어그로 끄는 내용이라 막장드라마 욕하면서 보는 느낌으로 읽었지. 그리고 급식이던 당시의 눈으로 봐도 이 책은 편향 투성이였어.







1. 작가 개인의 편향
작가는 운동권 출신 진보좌파야. 사람이 정치성향 가진 게 무어 문제가 되겠냐마는, 작가는 ‘심리학자, 노00과 오바마를 분석하다’*는 책을 쓰기도 했고 저서 곳곳에서 사회운동을 절대선으로 표현하거나 미국에 대한 운동권식 반감을 일관적으로 표출했어.

*금지단어라 이름 가림

예를 들어보자.

‘나는 제 3장에서, 미국인의 심리를 논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극우보수화된 미국 정치(낙후된 정치의식)
-우민화된 대중
-극대화된 개인이기주의
(하략)‘(89p)

‘그 결과 미국인들은 선진국 국민 중에서 가장 낙후된 정치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독립운동 그리고 4·19혁명, 6월 항쟁 같은 역사를 통해 ’정치적으로 단련‘된 한국인들의 잠재력이 표출될 때마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당연하다.’(70p)

그... 뭐 크게 틀리진 않다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작가의 관점이 한 방향으로 쏠려있다는 점엔 대체로 동의할 거야.

2. 작가 개인의 비윤리
작가는 내가 급식 잼민이던 시절부터 꾸준하게 자신을 ‘심리학자’라 칭하는데, 최종 학위는 학사야.(석사 재학 중 그만뒀어) 학자가 통상적으로 박사학위 인준을 받은 이를 지칭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친 올려치기지.

후술하겠지만 저술이 엄밀하지도 않아. 그냥 ‘학자’라는 단어가 갖는 지적 우위를 이용한 마케팅이라 생각해.

3. 저작 및 주장의 형식 문제
많은 저서들이 신뢰도 떨어지는 MBTI를 이용한 인물분석인 것과 본인 저술을 지나치게 많이 인용한다는 점, 뚜렷한 근거 없이 말한다는 점, 가치판단을 지나치게 한다는 점에서 이 분이 진정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갈 때가 있어.

물론 작가는 (본인이 생각하는)미국심리학의 생물학주의, 환원주의, 실험만능주의 등을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그게 최소한의 과학적 태도마저 내려놓자는 말은 아니잖아?





최근 이 책이 다시 생각나 읽었는데 내 기억보다도 더 조악하긴 했어. 빈말로라도 잘 썼다고는 말 못 하겠고, 비슷한 수준의 책은 아무 독붕이 앉혀도 써낼법했지.

하지만 주장이 분명한 만큼 생각해 볼 여지 또한 있더라.

 

1. 학자 개인의 삶이 이론에 미치는 영향
원숭이 애착 실험으로 유명한 할로는 부모, 배우자와의 관계가 안 좋았대. 부모에게선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거나 지나치게 의존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살았대. 평생을 애착문제로 골몰한 거지. 이를 작가는 '어머니 없이도 살 수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말해.

기억의 왜곡을 연구하며 억압(방어기제)을 부정한 로프터스는 전형적인 억압의 희생자였어.

특정 의견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삶과 시대상황을 고려해야겠다 싶었지.

2. 사회적 상황의 고려
스턴리 밀그램은 복종 실험의 결과를 인간 전반에 섣불리 일반화함으로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어.

작가는 과학자 집단에 대한 믿음, 의무에 대한 이행감, 개인VS공적권위를 지닌 집단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거둘 필요가 없다 주장해.

로젠한의 정신과 의사 엿먹이기 실험에선 사회적 상황을 배제한 실험 설계의 문제를 지적하지.

 

3. 비판의식
편향되긴 했지만, 비판의식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해볼 여지들을 던져줬어.

알렉산더는 쥐를 대상으로 마약중독 실험을 하며 안정된 환경이 마약 중독률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으나 주류학계를 이를 외면하고 검증조차 하지 않아. 반면에 연구결과가 변변치 않았던 골드스타인의 생물학 관점 연구는 호평을 받지.

이를 두고 작가는 학문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순수한 과학을 외치는 과학자들 중 많은 수가 사실은 매우 정치적이며 미국 심리학자들의 실험숭배는 위선이라 지적해. 언론과 자본 입맛에 맞는 연구만 인정한다는 거지.

 











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커뮤니티 사이트 내에서 상대방의 위선을 통렬하게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는 행위, 특정한 서사에 부합시키는 행위를 논증으로 취급하는 일이 늘어난 것 같아. 입장 다른 상대방의 의견 전체를 부정하거나 까기 좋은 예시만 가져와 상대방의 입장 전체를 부정하려는 경향도 늘어난 것 같고.

늘 그래왔다지만 요즘은 더욱.

하지만 단단한 의견과 신념은 상대방을 공박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오기보단 반대 의견을 이해하고 제 의견의 비판점을 개선하는 행위, 조악한 의견을 조악한 의견이라 조롱하기보단 그 의견의 개선점을 함께 찾아보는 행위(그리고 그 개선한 의견을 반박하는 행위), 의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스스로가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행위에서 온다 생각해.

 

이는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정이자, 지성인의 미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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