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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앤디 워홀의 1964년 작 <브릴로 박스>. 브릴로라는 알루미늄 광택제를 담은 박스인데, 마트에서 판매되는 실제 제품의 박스와 완전히 동일하게 생겼음. 이것을 과연 예술로 인정할 수 있냐 없냐의 논의가 있었고 대체로 예술이라고 결론이 났음. 책의 저자 아서 단토는 이 작품을 근거로 '예술의 종말'을 선언함.


이 '예술의 종말'은 무엇을 뜻할까? 예술의 본질은 일반적으로 미(美) 그 자체 혹은 미의 구현에 있다고 여겨져 왔음. 그런데 브릴로 박스는 딱히 아름다워 보이지 않음. 그렇다면 아름답지 않은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주장이 있었음. 대표적으로는 '예술'은 열린 개념으로, 그것의 본질적인 특성은 없어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주장. 이 주장은 마치 기사 작위처럼 '예술 작품'은 일종의 칭호로, 전문가들로 구성된 예술계에서의 합의에 따라 부여되는 개념이라는 주장으로 확장되기도 했음.


이런 주장들에 반대해 아서 단토는 예술은 닫힌 개념이며 예술의 부분적인 정의를 '의미의 구현'으로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함. 예술은 어떤 것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의미), 그 의미는 특정한 오브제를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구현). 물론 이 조건을 갖춘다고 해서 예술이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예술은 이 조건을 공유하고 있어야 함. 그렇다면 관람객은 어떻게 예술 작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서 단토는 해석, 즉 철학의 필요성을 주장함. 철학이 예술 작품의 의미를 이론을 통해 해석해 관람객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 따라서 관람객은 철학의 도움을 받아 작품의 의미를 즐길 수 있음.


정리하자면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론을 통해 감각적인 미를 예술의 본질로 여겨왔던 시대의 폐막과 함께 예술과 현실을 감각적으로는 구분할 수 없어진 시대의 개막을 선언함.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들어맞는 예술의 정의가 '의미의 구현'이라고 주장함.


이상이 <무엇이 예술인가>에 담긴 아서 단토의 생각을 아주 앙상하게 표현한 것. 실제로 책에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학은 어떻게 될 것인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어떻게 복원해야 할 것인지, 칸트의 미학과 저자의 미학 간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등에 관한 생각이 아주 풍요롭게 펼쳐져 있음.


감상이라고 제목을 달긴 했지만, 이 책에서 얻은 정보를 아주 간략하게 요약 정리하는 글이 된 듯. 아무튼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었음. 기회가 된다면 지식을 더 쌓은 다음에 재독해서 제대로 된 감상을 적고 싶음.


평점은 5점(5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