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만두이미지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ffa11d02831046ced35d9c2bd23e7054f3c2e8b67a9ec3ddbe4372f637ecbe3ae1027240db7c0ec862086d79dce6f3d3ec24dc06ae2841e97919fefda946af5887f6477dbfed8fe

마션 리뷰(고증과 유머의 골때리는 조화, 인류의 선함을 유쾌하게 풀어내다.)
아르테미스 리뷰(디씨급 드립 + 할리우드 SF 영화 =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헤일메리 리뷰(선의는 공포를 이겨내고, 우정은 더 큰 선의를!)


언젠가 하겠다고 한 건데 이제서야 하게 됐다. 각 작품에 대한 리뷰는 이미 했으니 상세한 언급은 피하고, 되도록 세 작품의 비교와 앤디 위어가 세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앞서 밝힐 건 내가 앤디 위어의 팬이라 사실상 애정 어린 헌사에 가깝지 각잡고 이것저것 다 끌어와 비교하고 해석하는 게 아니란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앤디 위어에게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 하면 이렇게 꼽아볼 수 있겠다.

SF, 유머, 인간성

세 가지가 사실 독립적이지 않고 다 어우러져 있지만,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SF부터다. 위어는 에셒 작가로 마션, 아르테미스, 헤일메리 모두 에셒 소설이다. 배경은 각각 화성, 달, 그리고 타우세티(대충 우주)이다. 근데 뭐 배경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고, 에셒 작가로서 위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내가 장르의 계보에 대해 빠삭하지도 않고 별로 관심 있어하지도 않아 얼마나 정확할지 모르겠으나, 위어의 소설이 하드SF가 아니면 뭐겠냐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유는 ‘고증’에 있다. 물론 에셒인 만큼 위어만의 공상이 섞여있다지만, 그 공상은 철저하게 검토되고 계산됐으며 나름의 증명을 거친 상상이다. 공상이 공상이 아니게 된 셈이다. 마션에선 생존을 위한 칼로리 계산부터 식물을 기르는데 흙 만들고 물 만드는 과정이, 아르테미스에선 달이란 특수환경에서의 환경 구성이, 헤일메리에선 우주선보단 외계생물의 형태, 진화 과정이……. 유머에 가려져서 그렇지, 위어의 소설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철저한 과학적 고증은 위어의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그 힘은 정말 있을 법한 현장감을 제공해준다. 사실 그것보다는 영화제작하기 좋게 고증을 다 해뒀다는 게 더 큰 것 같긴 하다. 아르테미스나 헤일메리도 영화 제작에 들어간다니. 개인적으로 SF로서의 매력은 헤일메리가 제일 크고, 마션이 그 다음, 아르테미스가 후순위다. 이 순서는 각각 다루는 소재가 인류에게 얼마나 해명됐는지를 따지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미지의 영역인 외계인을 다루는 헤일메리가 1등, 탐사가 활발히 이뤄지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은 화성이 2등, 그리고 둘에 비하면 제법 아는 것도 많고 친숙한 아르테미스가 3등.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고증의 수준은 세 작품을 비교해서 우열을 나누는 게 우스운 일이다.

하드SF하면 떠오르는 철저한 고증은 사실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가독성 말아먹는 주범이기도 하고, 지루함으로 손꼽히기도 하고. 공대생, 혹은 물리학도만을 위한 헌정 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한 이미지가 바로 하드SF의 고증이다. 하지만 위어의 소설에선, 마션에서도, 아르테미스에서도, 그리고 헤일메리에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SF소설이 가지는 고증의 단점을 유머가 상쇄하니 말이다.

위어의 유머는 탁월한 수준이다. 일단 첫문장으로 유명한 마션만 해도 위어의 유머가 얼마나 웃긴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마션의 첫문장은 마션 전체 유머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ㅎㅎ 다만 위어의 유머는 흔히 문학에서 다뤄지는 고품격 유머는 아니다. 쿤데라나 오헨리 같은 농담이나 유머 센스를 기대했다간 ‘경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르테미스에선 점심 나가서 먹을 게 분명하다. 분명히 말하겠다. 위어의 유머는 가볍고 통통 튀며, 무게감을 잊게 만든다. 절대 고상하거나 품격있지 않다. 경쾌하고, 유쾌하며, 통쾌하기도 하다.

다만 위어의 첫작인 마션을 기준으로 봤을 때, 마션보다 수위가 센 게 아르테미스, 마션보다 순한 게 헤일메리다. 뒤집어 말하면 유머의 농도는 아르테미스가 제일 짙고, 마션이 그 다음, 헤일메리가 제일 옅다. 특히 아르테미스의 경우 위어가 브레이크를 부러뜨렸나 싶을 정도로 수위가 남달라서, 헤일메리의 유머를 봤을 때 아르테미스 때문에 제재를 먹었나 싶을 정도였다. 아르테미스는 유머 수위 때문에 남들에게 쉽게 추천 못 할 수준이란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마션은 화성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원래 가지고 있던 유머 센스가 극한의 상황 가운데 고갈되는 연출이 보이고, 아르테미스는 오히려 극단적인 수위의 반대급부로 진지한 연출이 나왔을 때에 감동이 극대화된다. 헤일메리의 경우 순박한(?) 주인공의 센스를 엿보며 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위어의 유머는 사실 유머 원툴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소설에서 다양한 역할을 떠안고 있다. 고증 파트 안 지루하게 하기(마션과 아르테미스에선 이 역할이 돋보인다), 가독성 100% 끌어올리기, 인물의 매력 전달하기, 쉽게 전달하기,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고 무거워지기 전에 환기하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위어가 연출하는 인간성을 엿보는 것이다.

위어는 SF라는 가장 현대적인 장르를 채용하고 있음에도 갈등의 구도는 지극히 고전적이다. 마션에선 화성에서의 생존이라는 인간과 자연의 투쟁이 주를 이루고, 그리고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인류의 필사적인 노력이 나온다. 아르테미스는 다소 복잡해보이는 갈등이지만 인간과 인간의 갈등이란 점에선 역시 고전적이다. 헤일메리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한 인간의 투쟁이란 점에서 여기서도 인간 대 자연의 구도가 나온다.

마션은 인류를 향한 믿음과 인간의 생존의지, 그리고 한 인간을 향한 인류의 선의지가 감동을 일으키고(+동료애는 덤이다), 아르테미스에선 가족의 존재와 가족애를 다루며(+자잘한 우정은 덤이다), 헤일메리는 종을 뛰어넘은 우정과 인류를 향한 한 인간의 선의지를 다룬다.(+인류의 생존을 위한 극단적 선택은 덤이다) 위어 3부작에선 ‘악한 인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아르테미스에서 마피아 좀 나온 게 전부고, 그마저도 주요인물은 이해관계에 얽혀있어 나쁘다고 단정짓기 힘들다.

바꿔말하면, 위어의 우주 3부작에서 인간은 “제법 괜찮은 존재”로 나온다는 것이다. 마션은 거진 인간찬가 수준으로 봐도 좋고, 아르테미스나 헤일메리에선 인간의 부정적인 면모도 제법 다루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선할 수 있다./그럴지라도 우리는 선하다.”가 기저에 깔려있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훈훈한 결말을 가지고 있고, 코 끝 찡하게 감동적이기도 한데, 이는 위어가 인간의 선함을 설득력 있게 긍정했기 때문이다.

가만보면 위어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넘사벽 스펙을 가지고 있다. 마션만 해도 식물학자에 공돌이고, 아르테미스는 재능충에 용접공, 헤일메리는 생물학 아웃사이더에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부총괄(…)이다. 그들이 가진 능력만 보면 탈인간급인 것 같은데, 사실 그렇게까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위어의 유머 덕이다. 그의 유머 센스가 이들에게서 인간성을 보여주고, 약점을 거리낌없이 조명한다. 마션에선 와트니의 실없는 농담을 통해, 아르테미스에선 인간적인 실수들을 통해, 헤일메리에선 겁쟁이스러운 모습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조명한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인간의 선함을 긍정하는 것이다. 위어의 세 작품은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지극히 현대적인 고증과 서사, 지극히 고전적인 구도와 주제의식이 모두 인간을 제법 그럴듯하게 긍정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 생각에 위어는 앞으로도 인간을 멋지게 긍정하고,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유쾌하고 재치있게 써낼 것이다.

+)여담으로 아르테미스는 마션과 헤일메리에 비해 엄청 동적이다. 바꿔말하면 마션과 헤일메리가 정적이라는 얘기기도 한데, 갈등의 구도가 달라서 생기는 당연한 차이다. 그리고 이게 제법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있어선 아르테미스가 스릴러 뺨치는 전개를 채용해서 할리우드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제대로 전달해준다. 유머의 수위도 그렇고 등장인물의 pc함도 그렇고, 여러모로 아르테미스는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위치가 조금 특이하기 때문에 위어를 읽을 독자라면 아르테미스를 먼저 읽기보다 마션이나 헤일메리를 먼저 읽는 걸 추천한다.(개인적으로 마션이 좋은 기준점이다)

++)각각의 작품들의 단점은 이렇다.
마션: 유머 코드가 안 맞는 순간 끔찍한 유머+지루한 화성 생존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림.
아르테미스: 드립이 거진 욕설에 섹드립이라서 불편할 수 있음.
헤일메리: 주인공이 답답할 수 있음. 유머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지루할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