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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호킹은 우리시대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다. 지난 20년 동안 누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스티븐 호킹이 누군지는 안다. 리처드 파인만이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관심없어도 특수 제작된 휠체어를 타고 있는 호킹의 모습은 꽤나 유명하다(봉고를 연주하는 파인만의 사진이 떠오르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혹자는 장애 이후 별 다른 연구 활동 없이 대중 과학서 저술과 강연에만 몰두하는 그를 대중저술가나 강연가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생물학계를 대표하는 것만큼이나, 스티븐 호킹은 대중들에게 현재의 물리학계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덧붙이자면, 칼텍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들을 다룬 미국드라마 <빅뱅이론>The Big Bang Theory 에서는 어느 시즌에선가 정기적으로 직접출연하다.)
- 그런 스티븐 호킹이 쓴 대중과학서다. 책의 제목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A Briefer History of Time은 1988년에 처음 출간된 책의 제목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과 아주 약간만 다르다. 이 책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의 역사]는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천만부 이상이 팔렸다. 허나 출간 이후로 다양한 나이와 거주지, 직업을 가진 독자들에게서 [시간의 역사]의 가장 중요한 개념들을 좀 더 명확하고 쉽게 설명하는 책에 대한 요구가 반복되어 왔고, 그 결과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가 탄생했다.
-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진 책들이 그러하듯, 이책 또한 결코 짧거나 쉽지 않다. 물론 [시간의 역사]에 비해 책의 분량이 짧아졌고, 과학저술가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 한 명이다)의 도움으로 원색 도판이 삽입되어 좀 더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의 역사]와 비교할 때만 사실이다. 200쪽을 조금 넘는 분량은 크게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책을 읽는 순간 생각이 바뀐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내용과 당최 나가기 힘든 진도에 꽤나 힘이 들 것이다. 무한한 수의 거대한 거북이들이 평평한 판을 떠받히고 있는 우주에서 시작해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를 지나 근대 물리학으로 나아간다. 갈렐레이와 뉴턴 역학 까지는 어느 정도 견딜만 하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만 이수했다면 여기까지는 무리없이 따라올 수 있다. 다만 5장 상대성이론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등가원리, 흑채복사, 적색편이, 중성미자, 암흑에너지 등 분명 어디선가 꾸준히 들어 왔고 뭔지 대충은 알지만 정확히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든 친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빅뱅과 양자역학이 나오면 길은 둘 중 하나다. 양자역학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어서 한숨 돌리고 가거나, 점입가경 첩첩산중이라 그냥 책을 덮거나. 첫번째 길을 통과한 운 좋은 독자들도 양자중력이론과 시간여행, 통일장이론이 나올 때부터는 그 행운마저 모두 바닥난다. 이후로 네 개의 기본힘과 초끈이론,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까지 다룬다.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력으로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위 내용들을 모두 이해했다고 말할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독자도 백이면 백 전공자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현대 우주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현대 물리학에 관한 개략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을 읽는 것보다 유투브에서 강연을 찾아본다든지 대학에 개설된 교양강의를 듣는 것이 물리학 각 분야에 좀 더 명확하고 쉬운 출발에 도움이 될 듯하다. 이중슬릿실험에 관해서는 유투브에서 dr.quantum이 소개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DfPeprQ7oGc 이나 미국의 EBS라 할 수 있는 PBS에서 만든 https://www.youtube.com/watch?v=8ORLN_KwAgs 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책을 찾는다면 초끈이론과 그 배경이 되는 차원에 관해서는 [엘러건트 유니버스], 양자역학의 역사와 개괄은 [퀀텀 스토리]에서 찾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의 장점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짧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같은 양장판이긴 하지만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는 가볍게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반면, 앞에 소개한 두 책은 그 두께만으로 독자의 손길을 거부한다. 수식이 전무하다는 점도 굉장한 장점이다. 보통의 대중 과학서적들이 '대중'의 기호와 수준에 전혀 걸맞지 않게 수식과 도표, 그래프로 중무장하고 있다. 이를 생각해보면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에 나오는 수식이 너무나도 유명한 E=mc^2 정도 밖에 없다는 점은 정말이지 엄청난 유인책이 아닐 수 없다. 현대 물리학과 현대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빼놓지 않고 다룬다는 점 또한 큰 장점이다. 앞에서 소개한 두 영상이 뛰어난 시각효과와 쉬운 설명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쉽고 명확하게, 또 기억에 남도록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영상이 다루는 주제가 현대 물리학에서 꽤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부분일 뿐이다. 여러번 강조하지만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은 현대 물리학과 우주론을 포괄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을 읽고, 읽는 도중이나 다 읽고 난 후에 드는 의문들은 다른 책이나 강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현대 물리학과 우주론에 관한 가장 믿을만한 안내서임에 틀림없다.
- 이 책의 장점을 설명하는데에 이책은 최신 우주론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물질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는가에 관한 저자의 철학적 관점을 심도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겠다. 하나의 통일장 이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주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다. 통일장 이론은 창조자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통일장 이론 자체를 창조자라고 할 수 있을까? 창조자는 우주에 다른 영향도 미치는가? 과학자들은 우주의 규칙을 기술하는 이론들을 발견하는데 몰두한 나머지 이런 질문들을 제기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왜? 라고 묻는 일을 업으로 삼아 온 철학자들은 과학이론들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다. 18세기 철학자들이 과학을 포함한 인류의 모든 지식 체계를 자신들의 연구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190세기, 20세기의 철학자들에게 당시의 과학은 너무나 수학적이고 전문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과제가 언어분석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스티븐 호킹은 엄청나게 문제적인(철학자들은 영역의 확장 혹은 재탈환에 기뻐할 것이고, 어떤 과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할 만한) 발언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머지않아 모든 사람들이 그 이론의 대략적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철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모두가 우리와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한다며느 그것은 인간 지성의 궁극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신의 마음에 관한 내용이다. 과연 호킹의 말대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모두가 우주의 존재 이유에 대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을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완전한 이론에 대한 이해가 토론회 초청장의 기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 책의 마지막 장인 12장'결론' 뒤에는 세 과학자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붙어 있다. 아인슈타인과 갈릴레이, 뉴턴 순으로 각각 3쪽 가량의 짧은 글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과학자 3명을 뽑았다기엔 그 내용이 마뜩잖다. 아인슈타인 꼭지에선 그의 정치적 행동과 시오니즘에 대해서만 다뤘고, 갈릴레이 꼭지에선 근대 과학 탄생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치하하는가 싶더니 뒤로는 쭉 당시 교회와의 좋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마지막 뉴턴에선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아이작 뉴턴은 호감가는 인물이 아니었다."로 시작해서 "그 직위에서 그의 신랄하고 교활한 재능은~심지어 몇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로 마친다. 중간에 위치한 내용들이 동료 학자들과의 논쟁(물론 뉴턴 입장에서 흑역사로 기록될만한,)임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런 글을 책의 마지막에 넣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이들 과학자의 생애와 성취에 관한 탁월한 이야기는 공저자인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가 쓴 [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를 참고하면 좋을듯하다.(이 책에 관한 탁월한 리뷰를 링크한다. 글쓴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도 밝혀둔다.)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d=reading&no=22754&page=1&search_pos=&s_type=search_name&s_keyword=용산03
- 불과 150년, 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몇 권의 책을 통해 당시의 최첨단 과학이론과 최신 이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한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특정 영역에 관한 탁월한 이해 없이는 학술지에 실리는 최신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하자들끼리도 각자의 영역이 점점 더 높은 탑을 쌓아 (정치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쉽사리 넘볼 수 없게 되었다. 전문 연구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비전문가, 비전공자들은 그저 손놓고 바라보면서 과학기술이 따다주는 과실만 누리면 되는 것일까?
- 정현이 호주오픈 4강에 오르면 전국민이 테니스 규칙을 검색하는 것처럼 자연과 우주에 관한 가장 중요한 규칙이 발견되는 시대에 그에 관한 규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60년 전 리처드 파인만이 했던 말처럼 "여전히 발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행운아이다. 우리의 발견들은 아메리카의 발견과 비슷한 것으로서 오직 한 번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연의 근본 법칙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이다. 메시와 호날두, 페더러와 나달과 조코비치만의 시대가 아니다. 물론 네이버 검색 몇 번만 하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정현의 경기와는 달리 최신 자연 규칙을 온전히 이해하고 향유하려면 지난한 노력과 지루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면 이 책이 꽤나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재규어라 가능했지 하. 하. 하.
잘 읽었어. 짧은 버젼은 말고 이전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전공 이전에 읽었어서 그런지 대략의 개념 외에는 잘 이해는 되지 않았던 것 같네. 뭐에 대해서 말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게 정확히 어떻다고 말하는지는 이해가 안 됐다고 해야 할까.
요즘은 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은 본문에서 소개한 책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고. 스티븐 호킹은 수식을 배제하면서 어려운 최신 물리학 지식들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서스킨드는 이 책에서 수식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설명하는 대신에 그 수식을 최대한 쉽고 직관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풀어 가면서 설명하는 길을 택했더라고. 너무 많은 얘기를 전부 다 해 주려는 대신에 몇가지 중요한 얘기들을 가지고 하나 하나 깊이 이야기하려는 듯한.
서스킨드 본인은 '전공으로 물리학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물리학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공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싶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겠지만 그 내용들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하거든. 개념을 하나 설명하면 중간중간에 이해도를 체크하는 물음을 던지는데, 그러한 물음들이 또 굉장히 물리적 직관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고. 비전공자에게는 부족한 기술적인 부분을 채워 주고, 전공자들에게는 전공공부에서 놓치기 쉬운 포괄적인 이해도를 커버해 주는 좋은 책인데, 안 읽어 봤으면 한번 읽어봐.
그리고 리뷰 잘 썼네. 특히 마지막에 현재 시사랑 연결해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부분도 좋고. 이런 비문학 리뷰가 더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네.
레너드 서스킨드 책 좋아했는데 풍경landscape 에 관련해서 좀 이해하기 힘든 얘기를 하는구나 싶었음. 다시 보니 번역이 이상한거 같기도 하네. 한 번 읽어보겠음 땡큐!!
+ 역자 후기에서 레너드 믈로디노프를 처음 만난게 [유클리드의 창]이라고 했는데 나도 같은 경험이라서 별 것 아니지만 기뻤음.
시간의 역사 대갈 터진다
좋은 글 감사. 완전한 이론의 발견이 철학의 회복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부분이 인상깊네. 나 역시 철학자들이야말로 과학의 최전선을 이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을 회복시키고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함. 인간과 사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받아들여 사회과학이 탄생했고, 자연과학의 엄밀함에 끊임없이 근접해 가려고 하듯, 인문학 역시 인문과학으로 재탄생 내지는 진화할 필요성을 정말 절실히 느낀다. 영미철학을 비롯한 여러 분과에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것 같긴 해
현재 "철학이 뭘 하느냐"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철학만의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겠지. 철학이 철학으로 남기 위해서는 오히려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최신 이론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18세기까지 철학자들이 철학자일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통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지금처럼 과학이 심화된 시대에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그러니 철학자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의 수준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게 사실인 듯 함.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 전공자들이나 철학자들이 과학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는게 급선무인 것 같음. 언제까지 자신은 수학에 맞지 않는 사람, 과학에 맞지 않는 사람, 글 읽는게 적성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울타리속에 가둬서는 안되는 것 같다. 수학은 사실 모두가 배울 수 있는 것이고,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이야말로 적극적으로 과학을 배워야 하지 않나 싶다.
인간원리 부분이 궁금하네. 인터넷에서 대충 읽어본바론 너무 기독교색채가 짙어서 호킹까지 맘에안들게 되었는데.
인류원리 인간중심원리는 사실 그냥 넘어가도 상관 없어 보이긴 함. 왜 라는 질문에 굳이 답해야하나? 그것도 과학자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호킹은 존나 유명한 무신론자임. 전부인이랑도 거기서부터 틀어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위대한 설계 라는 책도 씀. - dc App
혹시 우주에 관해서 관심이 많으시다면 '코스모스' 책이나 다큐를 보셔도 좋습니다. 눈도 호강하고 정신도 호강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