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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투쟁이었고, 그건 사회 안에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안에서 때로는 패배자의 눈물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가벼운 승리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부딪히는 패배 모두를 겪어왔다. 그런 나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몇 년 전의 힐링 열풍이었다. 나는 힐링이 싫었다. 나에게 힐링을 이해시키려면 다음 3가지를 답이 필요하다
1. 힐링과 행복의 강요
2. 근본적인 해결책의 부재
3. 힐링이고 나발이고 위로한다는 놈들의 삶이 정작 고난이라고는 먼 나라 이야기만큼 떨어진 괴리감
나에게 뜬구름처럼 느껴지는 힐링 열풍은 얼마가지 않아 구름 한 점 없이 흩어졌지만, 최근에는 소파에 누워 세상 한량처럼 있는 사람들밖에 없는 밑도끝도 없는 표지들 단 책들로 내 삶에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때문에 오늘 낮,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눈에 불을 키고 오탈자를 찾는 검수관처럼 책을 읽어내려간 나는 몇 년전의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왜 몇 년이 지나도 나는 다시 힐링을 마주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책 자체에는 이렇다 할 느낌이 없었다. 비문학 지문으로 나올만한 책들처럼 아는 체 할 수 있는 정보도 없었고, 극적인 복선이나 감탄할 만한 세세한 묘사도 없었으며,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영혼에 울림을 주는 사연의 수필도 아니었다. 그저 삶에서 커피 한잔이 좋았다, 우울했지만 그랬기에 울었고 공허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를 찾는 것이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라는 자기위로의 문장의 연속이었다. 다만 내가 표지와 제목으로만 독서한, 때문에 쌓아진 편견과는 조금 달랐다. 먼저 저자는 충분히 사회에서, 삶 속에서 투쟁해온 사람이었고, 누구나가 겪을 만한 애상과 번뇌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인스타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열등감을 벗어나기 위해 어플을 지우는 통쾌한 해결책과, 아이가 우는 동안 칵테일 병을 깨서 저자의 무릎에 피가 나지만 몸을 씻고 남편분께 치워달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해결책을 번갈아 하면서, 끊임없이 삶 속의 고난에서 이겨내고 때로는 방관하며 행복과 자기찾기를 보는 모습은 방법에 상관없이 삶의 투쟁에서 이기려고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이 나에게 힐링과 위로의 책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나에게 진정한 힐링은, 곧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힐링은 전투 중의 휴식, 경쟁 안에서의 여유, 바쁜 일상 속에서의 짧은 커피 한 잔의 시간같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재충전이거나, 내가 가진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타파할 수 있는 혁명적인 방법론인 것이지, 우리의 삶이 경쟁과 투쟁임을 외면하는 것이 해결책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공허감이 찾아올 때 이 책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열심히 방구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이 변명의 방패가 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정말 냉정하지만 위로받고 싶으면 위로받을 자격이 있어야만 한다. 스스로 쌓아올리지 않으면서 남의 성과에 질투심과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래도 괜찮아’ 만큼 무책임한 단어가 있을까?
우리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누군가는 계속 앞서 나간다. ‘쉬어도 좋아. 내려놓아도 좋아’ 라는 힐링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하지만 다시 일어서야해’ 가 빠져있다. 무책임한 위로는 가슴을 후벼파는 질책보다 못하다. 경쟁에 지쳐 있는가? 잠시 쉬어도 좋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고달픈가? 10분이라도 먼곳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셔도 좋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으면 인정받을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예쁨받고 싶으면 예뻐져야 하는 것이 시대를 관통하는 명제이다. 부디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결국 자신을 위로해주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냉혹 하다
내가 살아오고 살아가는 삶이 그래서 이 시각밖에 없었나봐. 읽어줘서 고마워
지나치게 복잡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위치를 도저히 알 수 없으니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커피나 즐기는게 나은 세상이라 그런가
아예 경쟁이나 복잡화된 사회에 대한 해결책으로 힐링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통제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지 않는것도 힐링의 문제라 생각해. 읽어줘서 고마워
표지 보고 털이 곤두서고 제목 읽고 속이 꽉 막혔는데 독후감 보고 다 쓸려내려감 ㄱㅅㄱㅅ
읽어줘서 고맙수달
씹인정이다
읽어주고 공감해줘서 고마워
너처럼 이렇게 읽어보고 논리적으로 비판하는거 좋다. 그냥 뭔 읽어보지도 않고 어쩌고저쩌고 난 싫어~~ 이지랄 하는 새끼들도 꼴불견임
맞말추
읽어줘서 고마워
마지막 문단 가슴에 와닿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함다 - dc App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서평이라기보단 쓰고나니 이 책을 불씨삼아 힐링이라는 세태에 대한 비판글에 가깝긴하네요
책을 사주면 안된다고 봄
누군가는 저 책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지만, 소위 저런 책들 중 일부는 열풍에 편승하여 범람한다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공감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항상 힐링서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진짜 꿈으로 번들거리는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재충전을 위한 휴식을 하며 그 와중에도 야심으로 이글거린단 거임. 사실 내가그럼 힐링은 사람을 자칫하면 주저앉혀버리는 강력한 마약이라고 생각해 물론 사람마다 겪는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누군가는 작은것에 영영 넘어져 회복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저런
힐링류 읽는 사람들 중에선, 안주하기바빠서 값싼 위로받고 싶은 이들이 더 많을거라고 봐. 엉덩이를 좀 걷어차여야하는데
ㄹㅇ 정작 제대로 힐링하는 사람은 저딴걸 읽지도 않는 사람이지 힐링과 나태가 뭔지 알거든 - dc App
공감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단 너무 좋아요 - dc App
읽어주고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냉정하지만 다 맞는말이고. 이 글을 읽고 정곡이 찔렸음에도 다시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사람이 많겠지. 그럼에도 다시 힐링서를찾고... 너가말한 그 상황의 기분만을 억제하고 자기합리화 하기위해 값싼 위로의 의미로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고싶진않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의미성을 가진다고 생각해. 결국은 바뀔사람들은 바뀔테니...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 힐링류의 책을 그냥 읽고 덮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침서나 이정표처럼 확실한 행동이 실천해 나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음.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확실히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인의 투쟁의 목적은 뭐임?
투쟁의 목적을 묻는 것은 나는 왜 태어났는가라는 물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자신이 태어난 이유는 결코 찾을 수 없음. 왜냐하면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정할 수 없으니까. 무엇인가를 위해 투쟁한다기 보다는 태어났기 때문에 투쟁한다고 생각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우리는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근데 글쓴이가 얘기한 투쟁이 현 자본주의체제에서의 경쟁만을 얘기하는건지 사르트르가 얘기한 서로 주체가 되기 위해 싸우는 것을 얘기한건지가 궁금하네.
문맥상 후자인듯
글쎄.. 제가 생각하는 투쟁의 상대는 단순히 사회 안의 상대방이 아닌, 나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먼저 임용되기 위한 투쟁, 더 건강하고 배고프지 않음을 위한 투쟁 모두 상대와 방향은 다르지만 같다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님 의견이 맞음 힐링 어쩌고 하는 놈은 위선자도 되지 못 하는 사기꾼이지 현실생활이 얼마나 치열한데..... 그리고 그게 얼마나 가치있으면서도 무가치한데...... (보이는게 다는 아니지만 보이는게 전부인 느낌?) 평소에도 작성자분과 같은 의견이었지만, 더 자세한 논리를 읽을 수 있어서 난 고마움 - dc App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 자체가 투쟁이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싶다는 님에게, 멈추세우는 듯한 힐링이라는게 싫다는 거 백번 공감함.
아 글구 글잘읽었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이 왜 경쟁이자 투쟁이야. 그건 결국 니 관점이니 너한테 저런 책이 필요없다는 것 뿐이지
네 맞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관점에서 쓴 저의 서평이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