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세르게이>는 주인공 스테판 카사츠키 공작이 군인에서 수사로 수행자에서 부랑자로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카사츠키 공작이 겪게 되는 인간적인 고뇌와 수난의 과정 속에서 진성한 구원이 가장 낮은 곳에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임을 이미 고령의 수행자 된 카사츠키 공작의 꿈 속의 깨달음을 통해 보여줌으로서 기독교가 말하는 보편적인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완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것처럼 어떠한 인간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바꿔 말해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과 인간에게 주어진 지위는 구분된다. 인간은 고립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 속에서 자연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지위는 서로 간에 정서적인 유대감을 바탕으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인간에게 주어진 지위는 말하자면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 형식적인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이들과의 인격적인 교류를 통해 실질적 의미의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를 실제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은 외형적 유사성이나 민족성과 같은 이념이 아니라 서로를 대면할 때 상대방에게서 느끼게 되는 인간적인 감정이다.
사랑은 실천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낸다. 인간은 추상적인 것에 대한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재현이 현실을 구성하는 내용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추상적인 인식능력을 말미암아 재구성된 인간의 재현은 언제나 단편적인 인상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상은 자기에게 포착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인상의 고유한 의미 내지 존립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가치척도에 의존한다. 요컨대 인간은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는 모두 다 제각각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포괄하는 내용에 대한 저마다의 인상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지는 선행을 통해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법도를 따르는 데 있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마음속의 욕망은 무엇인가로 변화하기 위해 꿈틀거리다가 어떤 인상을 받으면 비로소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게 된다. 우리는 구체화된 욕망은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완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며 다만,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난 뒤 찾아오는 만족감으로 욕망을 잠시 동안 누그러뜨릴 뿐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욕망이 형성되면 그것을 충족하길 반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욕망은 또한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충족되지 못한 모든 욕망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오래된 격언이 있다. ‘욕망이 적으면 적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인간의 구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상술했다시피 인간의 고통은 결여된 상태로부터 찾아온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욕구가 작으면 작을수록 받아야 할 고통의 수 또한 줄어들게 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제로섬 게임이라고 가정할 때 다시 말해, 서로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대결하는 상황일 때, 내가 만약 나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누군가를 제압하게 되면 우리는 동물적인 행복을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익숙하지 않은 가르침은 외면받기 때문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자는 명분으로 다른 누군가와 ‘lose-lose’가 되자 라는 주장에 선 듯 동의하기 힘들다. 오히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 크기 덕분에 전체가 적당한 균형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 중 아무도 자신의 욕심을 먼저 내려놓길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은 ‘욕망이 적으면 적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격언에 대해 사실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상대방을 위해 내가 조금 덜 가지고 서로가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걸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법도를 따른 생활이며, 행복의 왕도라고.
// 피곤해서 끝에 좀 흐지부지해졌고 논리 꼬인 느낌도 드는데 처음 쓰는거니 이해해줘
참고로 저 책이 단편선 모음집임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 너무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ㄴ논리따라 쓴건데 왜? 어휘력 별로 안좋다는건 인정할께
저는 제 주변에서 목표를 향해 달리다가 좌절하신 분을 경험했습니다. 그분은 정말로 모든걸 쏟아부으셔서 준비하셨지만 시험에 떨어지시고 그 길은 다시 쳐다보지도 않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그분을 보면서 느낀게, 사람은 목표를 향해 달릴때 목표 달성의 순간을 꿈꾸며 가장 행복해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글을보며 욕망이 적다고 인생이 행복해질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엄청 위선적인 놈이란 생각을 했음ㅋㅋ - dc App
잘쓰는게 아니라 잘읽히는 글이 되도록 해보시길 어휘력이 부족한게 아니라 너무 어려운말을 많이씀 그런게 필요한 글같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