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여

대지는 이미 격류의 생리 속에 있다

이를테면 습원의 땅 아래로부터 솟아오르고 있는

죽은 자들의 신음

죽은 자들의 흰 손

나는 지금 그것을 확실히 듣는다

확실히 본다

기나긴 굴욕의 시간의

그 깊은 대지의 아래로부터

그들은 무엇을 외치며

무엇을 잡으려 하는 것인가

나의 육체는 지금 민감하게 그들의 혼에 감응한다

계속 감응하면서

나는 일체의 것을 버리려고

보라

묘석 위의 거미도 이미 정지했다

거미의 침묵은 세계의 파멸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저주의 외침을 올리는 떡갈나무들

뒤틀려 구부러진 가지는

팔랑팔랑 흔들리며

투명한 잎맥은 미래의 시간의 죽음을 고지한다

나는 보았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담록색의 소나무겨우살이가 되어

가지로부터 가지에 떠돌고 있는 것을-

그리고 점점이 혈흔과 같이 핀

해당화 꽃-

작은 새들도 이 역류의 계절 속을 날려고는 하지 않는다


놋카마푸(일본 홋카이도 네무로 일대)의 언덕에 잠든 동족이여

나의 혼은 지금 당신들을 위해 있다

땅 속 저주받은 동족을 위해서만 있다

어째서 교활한 인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능하랴

교활한 인간들을 위해

어째서 미래의 시간을 파는 것이 가능하랴

나의 피는 지금

당신들이 있는 언덕의 한 지점에서

피로 물들여진 과거의 시간을 향해

한없는 역류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보인다

대지의 카무이(신)를 위해 싸운

당신들의 불꽃의 칼날이

지금도 이 땅 속에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

설령 이 신령한 기운에 가득 찬 언덕을 파헤친다 해도

당신들의 저주의 불꽃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풀잎도 당신들을 위해 슬퍼하며 떨어

작은 새들도 당신들의 분노를 위해 날갯짓한다

놋카마푸 곶에 철썩철썩하고 부딪혀오는 유리색의 파도

모아장쿠루

드높은 신이여!


곶은 정숙한 가운데에 있다

때때로 이상하게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때마다 나의 온갖 세포가 신령한 기운에 전율하며 약동한다

돌연 내가 선 발 밑의 풀무리에 

엄청난 목이 무너져 떨어져내린다

깨달았다

그 맑은 눈 아래에는

피의 꽃이 피어

베어져도 더욱 계속해서 외치는

푸르고 흰 불꽃

잡아 찢긴 무수한 손이

세계의 미래를 긁어서 쥐어뜯는다


일찍이 사람은 진실을 전한 일이 있는가

일찍이 사람은 진실의 길을 걸은 적이 있는가

나는 단지

학살당해

대지에 봉인된 당신들의

통곡에 가득찬 소리를 느낄 뿐이다

파멸을 예감하는 짐승처럼

나의 혼은 떨며

나의 육체는 떨며

나의 손은 거칠게

당신들의 슬픔에 닿으려 애쓴다

드높은 

후치카무이여

놋카마푸의 언덕을 역류하는 불꽃으로 감싸

내 육체를 불태워라!

내 혼을 남김없이 태워라!


<놋카마푸의 언덕에 불을 지펴라> 제 2부에서 발췌


이 시는 1789년 일어났던 쿠나시리-메나시 봉기를 배경으로 한다. 홋카이도가 공식적으로 일본에 편입되는 것은 19세기 중후반에 들어서이지만, 전국 시대부터 에도 막부 시기에 걸쳐서 일본인들은 홋카이도 남부 지역을 점거하기 시작했고, 에도 막부 시기 '마쓰마에 번'은 아이누와 교류하며 성장해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충돌이 있었고, 이는 후일 식민정책의 시작점이 된다.


'골든 카무이' 등을 통해 아이누에 대한 관심이 나름 생겨나고 있는 와중인데, 아이누의 역사는 상당히 비극적이다. 그런 점에서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