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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아랫 글은 한 10년 가까이 전에 지금과 같이 막장화되기 이전의 도서갤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린 거임. 참고로 미야기 아야코 작품은 국내에도 조금은 나와 있는데, '화소도중', '교열 걸', '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 이 세 작품임.

미야기 아야코는 2006년 에도 시대의 유곽 요시와라의 기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작 소설 '하나이도츄(花宵道中)'가 R-18 문학상을 받으면서 데뷔하였으며, 주로 소녀틱한 감성에 의해 순정만화와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몽환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이기도 한 세계관을 구축, 소녀 심리를 잘 묘사하는 부류의 소설을 많이 쓴 작가이다.

'태양의 탑'은 2009년 발매된 작품으로, 그 설정부터 상당히 독특하다. '에이다이인(永代院)'이라는 가문이 있다. 그 저택은 도쿄 한복판에 위치해 있지만,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상류계층 이외의 일반 시민들은 그 누구도 그 존재를 모르는 베일에 싸인 가문이다. 에이다이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왕국이며, 거주하는 사람 모두가 폐쇄적인 사회 시스템 하에 있다. 에이다이인의 당주는 '요시츠구(由継)'라는 이름을 이으며, 수십 명에 가까운 정처와 첩들을 거느린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며, 그 아이들은 일본국의 호적에 등록되지 않는다. 서민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존재조차 모르지만, 상류층 사이에서는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으며, 이들 일족은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이 소설은 다섯 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장마다 주인공이 바뀌는 연작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첫 장은 수많은 첩실의 소생 중 하나인 고마야라는 소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우선 첫머리에 고마야의 시점에서 본 에이다이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여 소설의 설정을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주지시키는 부분이 꽤나 능숙하다. 그 내용은 겐지모노가타리의 변주에 가깝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주인공 히카루 겐지는 어려서 모후를 잃고, 기리쓰보 천황의 총애를 받고 자라난다. 그는 어머니를 꼭 닮은 새로운 부황의 후궁 후지쓰보노미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그 사이에서 불륜의 자식을 낳게 된다. 그것이 바로 레이제이(冷泉) 천황으로, 기리쓰보 천황은 제위를 겐지의 배다른 형인 스자쿠에게 물려주면서 그 다음 제위에 오를 동궁의 자리에 레이제이를 선택한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기리쓰보가 이들의 불륜을 알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명쾌하게 알 수 없지만 알면서도 후지쓰보와 겐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를 묵과했을 가능성도 은근히 암시된다. 

이 장의 내용은 이 겐지모노가타리의 내용과 상당히 닮아 있다. 고마야는 어려서 어머니인 오리에를 잃었다. 새로이 아버지인 요시츠구의 후처로 들어오게 된 불과 여섯 살 연상의, 어머니를 꼭 닮았다는 마리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그 사이에서 불륜의 자식인 이즈미(泉水)가 태어나게 된다. 요시츠구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이즈미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몰래 고마야를 불러 그 사실을 통지하면서 다음 대의 후계자로 고마야의 이복 형인 와곤(和琴)을 지명하겠지만, 이즈미가 15세가 되어 성년으로 인정받게 되는 즉시 와곤을 죽이고 이즈미를 그 다음 후계자로 삼으라는 밀명을 내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겐지모노가타리의 스토리보다도 더욱 파국으로 치닫는 형태인데, 이런 중세의 궁정 스토리 같은 내용을 현대 사회에 걸맞게 변주해내는 능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은 고마야의 배다른 누나인 아오이(葵), 세 번째 장은 고마야의 배다른 형이자 아오이의 친 남동생인 와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궁정 사회와도 같은 에이다이인 속에서 이복형제란 혈연이라기보다 제치고 없애야 할 경쟁자이자 적에 불과하다. 에이다이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외출이 엄격하게 통제되기에 이 폐쇄된 환경 속에서는 근친상간적인 감정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아오이와 와곤은 비록 육체관계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강한 연모와 집착을 가지게 되었고, 이 사실을 눈치챈 요시츠구에 의해 아오이는 이른바 '유배', 즉 폐쇄된 여학교에 보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조차 에이다이인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고, 마침내 아오이는 이복 언니에 해당하는 미야코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세 번째 장에서 와곤은 마침내 요시츠구의 이름을 이을 후계자로 지명되어 '서쪽 집'에 방문하게 되는데, 이 곳에서 기이한, 외부와는 격리된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얀 피부의 여자'와 '블랑'이라는 기이한 소년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네 번째 장인 '태양의 정원'에서 스토리는 급격히 전개된다. 앞의 세 장과는 16년의 시차가 있다. 이번에는 에이다이인과 관계가 없는 한 중소 잡지사의 기자인 야마시타와 카키오의 시점이다. 카키오는 우연한 기회에 에이다이인의 여학교에 관련한 단서를 잡게 되고, 이미 16년 전에 에이다이인과 관련해서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이 있었던 야마시타와 함께 그 단서를 하나하나 파헤쳐나가 마침내 이들의 실체를 밝혀내, 고발 기사를 쓰게 된다. 그 과정을 보면 암묵적이면서도 강압적인 개입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들은 거기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마침내 진실을 밝혀내게 되나, 그 결과는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마지막 장인 '성모(聖母)'에서 마침내 에이다이인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사실이 밝혀진 뒤 흥미와 호기심 본위 반, 혹은 '평등사회'의 구호를 내세우는 정의감 반이 섞인 서민들이 '폭도'가 되어 에이다이인을 습격하고 숲에 불을 지른다. 아버지인 고마야에 의해 살해당한 와곤의 뒤를 이어 요시츠구가 된 이즈미는, 사죄를 구하는 야마시타와 대치하면서 신에 대한 관념을 묻는다. 결국 이들의 습격은 며칠 못 가 수그러들지만, 결국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권위를 잃게 된 에이다이인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숨은 비밀이 상당한 반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이들 일족은 결국 하나의 상징적인 '신'이었던 것이다. 작품 초기의 '에이다이인'은 단순히 강력하면서도 기존의 도덕에서 일탈되어 있는 대재벌 혹은 명가 정도로 생각되었지만, 네 번째 장에서 밝혀진 이들의 정체는 그 이상이었다. 이들은 상류계급 사이에서 '신'의 일족으로 떠받들어진다. 에이다이인과 혼인관계를 맺은 가문의 사업은 번창한다. 에이다이인 가문의 피를 이은 자를 죽인 자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입는다. 에이다이인을 모독한 자는 응징을 당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사실은 아오이를 죽인 미야코의 본래 가문인 '오쓰(大津)' 일가가 차례로 사고사, 병사 등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마리에의 아버지가 이들을 믿지 않았다가 사업에 실패하여 망한 회사의 직원들이 마리에의 집안을 습격한 사건 등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말 신이었던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작중에서 보면 이들 일족은 일견 판타지적인 비현실적인 측면을 보이면서도, 묘하게 현실감을 드러낸다. 마치 일본에서 평상시에는 존재감이 없으면서도, 그 의식 속에 강하게 세뇌되어 있는 황실이라는 존재와도 흡사하다. 그 존재를 믿는 사람 사이의 견제와 공포, 경외심 등이 그 모든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마 작중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에이다이인의 존재는 그런 것이었을 터이다. 마지막에 야마시타에게 요시츠구가 된 이즈미가 '에이다이인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발전시켜 왔다. 이제 의지할 곳을 잃게 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그런 것일 터이다.

여담이지만, 에이다이인 가문은 마치 일본의 천황가를 빗댄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작중 겐지모노가타리의 구도를 빌려온 1장의 부분을 언급했거니와, 이 소설에는 그 밖에도 일본신화를 모티브로 한 내용이 많다. 가령 '흰 피부의 여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요시츠구의 아이로 낳아 왔던 알비노에 가까운 장애아로 비치는 '흰 아이', 즉 '블랑'은 그야말로 일본 창세신화인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처음 낳았다가 너무나 기괴한 모양새에 질려 배에 태워 흘려보내버린 '히루코'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또 마지막 장에서 '서쪽 집'이 시마네 현에 있다고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시마네 현은 역시 일본 신화에서 중요한 장소인 '이즈모 타이샤'가 있는 곳이다. 또 '유배' 장소로 선택되는 여자 학원은 아무리 봐도 과거 일황가의 미혼의 황녀가 이세신궁에 보내져 일정 기간 동안 봉사해야만 했던 '사이구(斎宮)'와 흡사하다. 일본의 고,중세에서 모티브를 따 와서 현대에 궁정 스토리에 가까운 설정을 재현한 작가의 능력이 상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 이 소설은 작가의 전작 '비의 탑'과 연관되는 부분이 많은데, '비의 탑' 에서 '과거 계단에서 떨어져서 죽은 아이가 있었다'는 얘기가 언급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미야코에 의해 떠밀려 죽은 아오이에 관한 이야기일 터이다. 또 '비의 탑' 마지막에 미시마 재벌이 망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아마도 에이다이인의 몰락과 연관된 부분이 아닐까. 떡밥 회수와, 스토리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작과의 관련성을 넣어 전작부터 읽어온 독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추가해주는 배려 또한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소설은 소재에서부터 상당히 취향을 타는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현실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터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현대 사회에 있을 리가 없다'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부터 이 소설에 대한 몰입감은 떨어질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지나치게 만화 같다고 비판할 수 있는 부분도 곳곳에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텍스트로 읽는 만화와도 같은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이런 폐쇄적이면서도 농밀한 분위기의 설정을 즐길 수만 있다면, 이 소설은 분명 스토리 전개면에서 뛰어난 소설이기에 읽을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취향은 타지만, 꽤나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의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도 느꼈고, 구성 면에서도 꽤 괜찮은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참고로 이거 번역이 안 되어 있다. 아무래도 인기 작가는 아니다 보니까. 좀 마이너한 일본소설 읽고 싶은 일본어 가능한 사람에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