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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는 특이하다. 창세기, 출애굽기처럼 서사와 역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와 교훈을 담은 이야기도 아니고, 선지자들과 사사들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도 아니다. 그러나 삶에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왜 신이 있다면 ‘선한 사람들’ 이 고통을 받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길지 않다.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던 욥을 두고 사탄과 신이 내기를 한다. 신의 입으로 직접 온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이라는 욥에게 사탄은 ‘그건 당신이 그를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게 하기 때문’ 이라고 말하며, 이에 그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욥의 재산과 가족들을 칠 권세를 얻는다. 한순간에 모든 자식과 모든 재산을 잃은 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신을 경배한다. 사탄은 기죽지 않고 욥의 몸을 칠 권세마저 얻어, 욥의 온몸에 종기를 내린다. 온몸을 기왓장으로 긁던 욥을 보고, 평생 함께한 아내조차 욥에게 신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 말한다. 위로하러 온 친구도 그 처참한 모습에 7일간이나 말없이 옆에서 울며 위로할 뿐이다. 욥마저 ‘내가 태어난 날에 세상이 멸망했다면, 내가 어머니의 젖을 빨지 않고 죽었더라면’ 이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나 욥의 친구 중 하나가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다’ 라는 인과응보적인 논리로 욥에게 딴지를 걸자, ‘전지전능한 신의 심판을 받았으니 너의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는 친구들과 ‘내가 잘못이 없는데 왜 고난을 받았냐’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한다. ‘왜 잘못 없는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라고 한탄하는 욥과 이를 신성모독이라고 다투는 친구들과의 언쟁에 지나가던 사람마저 이 아사리 판에 난입한 와중에, 정말로 그들 가운데 신이 나타나버린다.
욥기의 결론과 한계는 여기에서부터 나온다.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의 믿음이라는 확실한 답을 준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 그리고 성경이라는 위대한 책이 악의 문제와 침묵하는 신에 대해 어떠한 답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허무한 결론이 없기 때문이다. 욥기의 답에는 우선 신은 전지전능하고, 감히 인간 따위가 신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신이 욥에게 말한다. ‘네가 나의 권능을 가늠할 수 있느냐? 네가 내가 만든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느냐?’ 욥을 비롯한, 어떤 인간이 신의 저 물음에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신의 물음은 계속된다. ‘욥아, 사내답게 나와서 내 물음에 답해라. 네가 스스로를 선하다 말하여 내 판결을 꺾고 나를 악으로 만드는 것이냐?’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욥은 이전보다 몇 배의 풍요를 얻는 것으로 욥기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신을 믿는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때로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다짐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지 못한다. 결국 인간은 신을 가늠할 수 없고, 때문에 신이 판단하는 선악과 인간의 선악은 다르며, 신의 계획 아래 인간에게 내려지는 고난 또한 인간의 관점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무작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 묻는다. 전지전능하나 나를 내가 알지도 못하고 원하지는 않는 계획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신을 믿어야 하나? 신이 생각하는 선악을 인간이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이것이 인간의 기준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 속에 침묵하는 신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는가? 또한 욥처럼, 신이 직접 악에서 떠나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 사람들에게도 고난을 내리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대답은 당연히 ‘알 수 없다’로 끝난다. 아무리 인간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공격해도, 신은 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너희가 나를 가늠할 수 있느냐’ 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똑같이 말할 차례이다. ‘우리가 당신을 믿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인간의 기준으로 어차피 가늠할 수 없는 당신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까?’ 물론 믿을 사람은 믿는다. 그것이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는 신앙생활인 동시에 믿는 사람들에게 욥기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의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악에 대한 신의 침묵, 선한 자의 고난에 대한 회의감을 감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추 - dc App
헉 완전 빨리읽으셨네요. 감사합니다
토막상식 하나 늘었다 개추 정리도 ㅆㅅㅌㅊ - dc App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엔도 슈사쿠 침묵이 떠오르는구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책 추천해주시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신과 사탄의 내기에서 파우스트를 생각하기도 한다네요
나도 그생각함
욥기 다음이 시편이더라. 믿음 다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 이런거 보면 성경 배치도 상당히 체계적임
구약 신약 모두 배치는 정말 체계적으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신약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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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펀치 콘)
(이것은 성령께서 높이 평가 콘)
잠언이 재미있지 솔로몬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기념하기 위해 반지를 제작하였는데 세공사가 각인에 뭐라고 쓸까고민하다 왕에게 물었더니 -이도 곧 지나가리라. 세기라 하였다 이 말은 즉슨 고통을 참고 이겨내라는 뜻이 아닌 자만에 빠져 타락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었더라
맞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종교는 정신병이다 - dc App
누군가에겐 정신안정제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