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시간, ebs 다큐 프라임에서 <김승옥 무진>을 방영했다.
내 책에 썼지만, 나는 머리에 든 게 거의 없는, 도화지와 다름 없는 멍청이라 전날 한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다음날 그와 비슷한 문체로 글을 쓰곤 한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은 다음 날은 그래서 좀 웃기면서도 괴롭고, 페터 한트케를 읽은 다음 날은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런데 아, 이 사람은 도무지 흉내낼 수 없는 문체다 싶은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승옥이다. 김승옥에겐 노력이나 공부로 흉내낼 수 없는 감각이라는 게 있으므로.
다큐 촬영 당시 김승옥은 매주 서울과 순천을 오갔다는데, 약속이 있으면 꼭 약속 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상대를 기다린다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80의 나이, 여전히 읽히는 그의 글. 꼰대가 될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었음에도 30분을 앞서 도착하여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타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보였다.
김승옥 문학관에 들른 한 후배 소설가의 '선생님, 무진은 어디입니까' 라는 질문에 노작가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지에 무진의 여러 모습을 설명한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몇 년 전 한 젊은 작가는 김승옥의 글에 담긴 여혐 코드를 비판했다. 나는 그게 되게 비겁한 짓이라 여겼다. 60년대에 활동했던, 이제는 나이 80으로 말과 글을 잃은 노작가의 5~60년 세월을 소급하여 비판하는 게 과연 옳은가 싶었다. 반세기 전 문장을 현재의 시선으로 가하는 일방적 비판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여겨졌다.
반세기 전 문학에 깔린 여혐 코드를 비판하기 위해서 꼭 김승옥이라는 특정 이름을 언급해야 했을까. 그 비판이 시대의 흐름을 짚어야하는 평론/비평가의 글이 아닌 김승옥과는 동종의 작가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이건 선후배따위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다.
젊은 작가의 비판은 김승옥이 시대의 아이콘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학가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점에서 김승옥을 비판하던 젊은 작가에게서 저열한 유튜버의 모습을 보았다. 인기 없는 유튜버들은 자신 보다 잘나가는 유튜버들을 공격하며 소위 '떡상'을 노린다. 말과 글을 잃은 노작가의 5~60년 세월을 소급해 비판한 젊은 작가에게서 정의로운 문제 제기가 아닌 기회주의를 보았다. 젊은 작가는 거장의 어깨 위에 올라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것처럼 보였다.
김승옥은 518 이후 침묵하는 언론사에 염증을 느껴 절필을 했다. 50년 전 쓰여진 문장을 끌어올려 비판하는 젊은 작가와 시대의 부조리에 펜을 꺾은 이중 누가 더 정의로운가. 누가 더 작가의 모습에 가까운가. 도화지와 다름 없는 멍청한 내 머리로는 암만 생각해도 후자가 훨씬 정의롭다.
글은 어쩌면 쓰는 이보다 읽는 이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쓰는 사람은 하나지만 읽는 이는 여럿이라 하나의 문장에도 해석은 제각각이다.
김승옥에 대한 비판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 속에서 나쁜 짓을 하는 등장인물과 소설가를 동일 시 할 수 있는가, 등등.
문학평론가 백지연은 김승옥을 비판한 젊은 작가를 가리켜,
'ooo은 1960년대의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남성주체의 성장서사가 보여주는 폭력적 구도와, 철저하게 지워지는 피해자로서의 여성인물 형상화를 창작자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이때 논의의 배경에 깔려 있는 '근대적 남성성'의 문제나 '훼손된 여성'의 표상에 대한 비판은 성별 도식의 단일한 해석을 넘어서 당대 현실과 작품이 맺는 길항관계에서 좀더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 라고 했다. / 백지연 <페미니즘 비평과 '혐오'를 읽는 방식> 中.
나는 백지연의 이 비평을 지지한다. 김승옥을 비판한 젊은 작가는 단일한 해석을 넘어서지 못했고, 세심한 분석이 부족해보인다. 젊은 작가의 사조가 페미니즘이라는 점에서 김승옥에 대한 비판은 과도한 제 밥그릇 챙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삶의 대부분은 제 밥그릇 챙기기 싸움이라는 생각이라서, 그게 꼭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김승옥을 비판한 젊은 작가는 비평에는 이렇다할 재능이 보이지 않는 외골수로 보인다. 자신의 글은 잘 쓸지 모르겠지만, 당장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50년 후에나 읽어볼까.
그때도 그의 글이 김승옥처럼 읽힐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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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들기 전 교육방송 <김승옥 무진> 보고서 sns에 올릴려고 써본 글인데, 올릴까 말까 싶어서 여기에 먼저 올려봄.
올리면 누군가는 욕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면 좀 피곤하니까능.
개인 sns보다 디시 독갤에 글 쓰는게 더 편할 때도 있네..
암튼 나는 김승옥을 비판한 젊은 작가의 모습이 좀 유감이었어.
책 이야기 하자면, 난 <무진기행> 보다 <차나 한 잔>을 더 좋아해.
아, 그리고 백지연 비평문 좋더라.
좋은 글이네. 반세기 전 쓰여진 글을 지금의 시각으로 비평한다는 게 얼마나 의미있는 행동인지 의문임.
하이에나랑 같은 과지.
김승옥이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기 보다 김승옥이 영향 많이 받았던 일본 전후문학에 여성의 성적 일탈과 성윤리 문제가 많이 나와서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과 작가를 혼동하고 작품 속 사건을 오직 모럴과 피해자주의의 관점으로만 비판 난도질하는 것은 야만이지. 그런 류의 비판이 얼마나 졸렬한가 하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다는 거지. 야행 같은 소설도 님포매니아로만 읽더군. 분명히 권력과 군사문화에 순치된 사회와 국민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소설인데 말이지. 하여튼 작품 독해할 문학적 상상력이 없는 것들이 꼭 행동주의 도덕군자 행세하며 문학작품을 단색 페인트로 덧칠해버린다니까.
ㄹㅇㅋㅋ - dc App
ㅠㅠㅠㅠㅠㅠㅠㅠ - dc App
그 작가 이름 누군지 알려줄수 있을까 검색해봤는데 잘 안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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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화이트호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