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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니 에르펜베크라는 동독출신 소설가가 쓴 <모든저녁이저물때>라는 책을 읽었다.
누군지 모르는 난생 처음 들어 본 작가이지만 배수아가 번역해서 믿고 골라봤다.
초월번역이니 뭐니 논란은 있지만 그래도 배수아가 번역한 독일어권 작가 책은 믿고 보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아무도 잘 모르는 현대 작가의 작품을 꾸준하게 번역해줘서 만족도가 높다.
그리고 소설가답게 원문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문장은 아니더라도, 원문의 뉘앙스와 특히 리듬감을 살리려는
그의 번역스타일도 내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생각해보니 정작 배수아의 소설은 하나도 읽은게 없다.
2.
책은 신기한, 낯선 형식의 책이다.
모두 5권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마다 막간극이라는 짧은 글들이 있다.
그리고 5권이 각각 끝날 때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여자는 죽는다.
그리고 막간극을 통해 주인공이 죽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녀가 다시 살 수 있었다고 하면서
다음권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고 계속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이런 식으로 1권에서는 첫돌이 되기 전에 죽었던 주인공은 2권에서는 10대까지 살고,
마지막 5권에서는 꽤 성공한 작가가 되어 90살에 천수를 누리다 죽는다.
3.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주인공의 인생이 그렇게 사소한 우연으로 혹은 극적으로 연장되어 주인공이 조금 더 인생을 살면서
그 지난한 과정을 버티면서 뭔가를 이루어냈다고 한들
주인공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기 삶의 총체적인 이해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질문의 답은
단지 인간이 더 산다고 한들 구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
오히려 자신의 삶의 총체적 이해는 인간으로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
또한 자기이 파악한 자신의 삶의 총체의 일부마자 역시 남에게는 전달이 불가능하다는 점
4.
주인공을 비롯한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특별한 호칭이 부여되지 않고,
기구한 유대인 3대 모녀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는 초반부는 그래서 이게 지금 누구의 시점인지조차 헷갈리며,
소설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몇가지 문구들은 아마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제반 배경이 없는 나로썬 나름의 추측밖에 할 수 없고, 그건 아마 작가의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쨌든 그리 친절한 소설은 아니지만,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등장인물들이 뇌까리는 음울하기 짝이 없는 사변적인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던 소설이다.
5.
인용구나 하나 남기자.
- 그러니까, 그게 위로라고 하는 말인가요?
- 맞아.
-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마저도 빼앗아버리려 하는군요.
- 내 말은 그저, 지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예전의 네가 많이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말하는거야.
-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이 더 편할거라는 거죠?
- 그러기를 바라지.
양자면 양자지 철학은 또 뭐냐 퀀텀메카닉스에서 캐절리티나 관측되는 양에 대한 개념을 말하는거?
니 아이디처럼 대충 생각나는 단어 아무렇게나 조합했을 뿐, 별 의미없으니까 거기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짓거리는 헛짓거리일뿐이다.
오 핏 좋네요
하지만 내가 아닌걸 ㅎㅎ
배수아는 번역을 자기 소설처럼 하던데.. 사실 번역 하는 소설이 대부분 배수아 소설스럽긴 해. 하지만 정영문이 번역하는 소설들은 전혀 정영문스럽지 않지
아 그럼 자기 소설도 한번 읽어봐야 쓰겄네... 번역자 정영문은 나도 좋아함..
올려! - dc Ap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