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원인론과 결과론의 논쟁을 봤다면 2편은 정신적인 자립에 대한 수직관계와 수평관계의 대립을 볼 것이다.
칸트는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이나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성년 상태라 칭하였다.
주로 부모들이 아이에게 시키는 상황에서 나타나며, 아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혼나지 않기 위해서 말을 듣는다.
반대로 부모의 입장에선 아이가 아닌 자신의 가정교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이를 자립시키지 않고 미성숙한 상태로 키운다.
그 상황이 몇 년, 몇 십년간 지속되면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있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골라주지 않으면 안되는 '결정장애'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답만해 '답정너' 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1편의 목적론으로 보자면 '나는 골라준 사람때문에 이렇게 된거야 절대 내 탓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순간적으로나마 편해지기 때문에 - 자기위안을 하니까 - 미성숙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자신이며, 누가 골라준다해도 그 결과는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칸트는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이나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성년 상태라 칭하였다.
주로 부모들이 아이에게 시키는 상황에서 나타나며, 아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혼나지 않기 위해서 말을 듣는다.
반대로 부모의 입장에선 아이가 아닌 자신의 가정교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이를 자립시키지 않고 미성숙한 상태로 키운다.
그 상황이 몇 년, 몇 십년간 지속되면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있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골라주지 않으면 안되는 '결정장애'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답만해 '답정너' 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1편의 목적론으로 보자면 '나는 골라준 사람때문에 이렇게 된거야 절대 내 탓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순간적으로나마 편해지기 때문에 - 자기위안을 하니까 - 미성숙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자신이며, 누가 골라준다해도 그 결과는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뷰보니까 읽어보고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