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만두이미지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ffa11d02831046ced35d9c2bd23e7054e3c2c8567a93822c8a2f0eaf7f8d76f8b1a50eee6772c7951d3041dd9db9a193efadd9715b170b10b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한다. 다양한 경험들은 대부분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의 경험이, 한 사람이 사고의 폭을 확대시킬 수 있다. 데미안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확신으로의 길이다. 


인류가 문명을 이룬 뒤로 항상 특정 사회의 주요 이념이 있었다. 서양 중세의 기독교나 조선의 성리학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의 통념과 배치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동체에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을 가지고 있엇음에도 배척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숨기고 공동체에 동화되어간다. 


하지만 공동체의 배척을 받으면서도 자기확신을 가지고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데미안은 이러한 사람의 대표격인 인물로 그의 사고는 차원을 달리한다. 단순히 사고의 폭이 넓은 것이 아니라 차원 자체가 다르기에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소설 속 특정한 사건 이후 그에게 점점 관심을 보이게 되며, 결국 사고의 차원을 넘는다.


사고의 차원을 넘고, 그러한 사고에 대한 자기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아집과는 다르다. 다양성 안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길러진 사상은 주변 사람을 매료시킨다. 그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공동체의 실속 없는 사상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거의 전부에 가까운 사람이 자기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결국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한 일들이 근원이 군중심리에 기반해 일어났음을 상기해 보면,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큰 어려움 없이 데미안과 주인공이 말하고 느끼는 바를 몰입해서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다행스러운 점이다.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사고의 차원을 넘을 수 있는 초보적인 준비는 끝난 것이다. 사고의 차원을 넘을 수 잇을지 없을지는 필자도 모른다.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의 차원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역시 여러분의 삶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주리라 필자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