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순서〔讀書次第〕
세상에서 아이를 가르칠 때, 아이가 말을 할 줄 알면 반드시 주흥사(周興嗣)의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친다. 글자를 달아 읽을 줄 알게 되면 이에 《사략(史略)》의 초권과 《통감(通鑑)》의 초권을 가르치는데, 많이 나아간 자는 〈서한기(西漢紀)〉에까지 이르고, 더 나아간 자는 〈동한(東漢)〉ㆍ〈촉한(蜀漢)〉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이어 《맹자(孟子)》와 《시경(詩經)》의 〈국풍(國風)〉을 가르치고, 여름에는 처음에 《당음(唐音)》의 절구(絶句)를 가르치고, 이어 《당음(唐音)》의 장편(長篇)을 가르치고, 또 오언(五言), 칠언(七言) 및 문장을 지어보게 한다.
관례를 올리고 혼인을 하게 되면 어리석어 깨우치지 못한 자는 여기서 그치고, 약간 재능이 있으면 이에 유취서(類聚書)를 섭렵하고 우리나라의 과거 답안을 읽는다. 시에서 압운을 할 수 있고 문장을 몇 줄 지을 수 있으면 곧 과장(科場)에 들어가 과거에 합격할 계책을 세우는데, 그 부형들은 기뻐 자랑하고 저들도 스스로 제 할 일을 다했다고 기꺼워한다. 이 때문에 문장을 잘한다고 칭송을 받으며 일찌감치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일지라도 고인들의 문자를 인용하면서 그것이 어느 책에서 나왔고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고, 한 편의 시문을 엮으면서 그것이 무슨 도리가 있으며 어떤 취지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는 말이라곤 장렵장은(麞獵杖銀) 따위의 가소로운 이야기이고, 견해는 홍안미록(鴻鴈麋鹿)에 불과하여 누구나 모두 그러한데, 하물며 심성이기(心性理氣)의 설과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일에 대해서는 온통 어둑하니, 한탄스러울 뿐이다.
이제 교학(敎學)의 순서를 정하여 멀리 행하고 높이 올라갈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 하우불이(下愚不移)는 본디 논할 것도 없거니와, 뜻이 있는 자라면 이것을 통해 선후본말(先後本末)의 순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소아(小兒)들이 입에 익히는 데는 《사략(史略)》 초권을 그만둘 수 없다. 하지만 가르치는 순서는 먼저 《소학(小學)》을 읽혀 입교(立敎)ㆍ명륜(明倫)ㆍ경신(敬身)이 학문을 하는 근본임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대학(大學)》을 읽혀 삼강령(三綱領)ㆍ팔조목(八條目)의 순서와 구성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논어(論語)》를 읽혀 성인의 말씀과 제자들과 묻고 변론한 것들이 모두 지극한 이치임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맹자(孟子)》을 읽혀 알인욕(遏人欲)ㆍ존천리(存天理)와 한성도(閑聖道)ㆍ벽이단(闢異端) 및 사단(四端)ㆍ양기(養氣) 등의 설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중용(中庸)》을 읽혀 성(性)ㆍ도(道)ㆍ교(敎)ㆍ치중화(致中和)가 성인의 지극한 공적이고, 일리(一理)에서 시작하여 만사(萬事)로 넓어졌다가 다시 일리(一理)로 귀결되는 묘처를 알게 한다.
다음으로 《시경(詩經)》을 읽혀 선왕의 교화(敎化)와 풍아(風雅)의 정ㆍ변(正變) 및 감발징창(感發懲創)의 기틀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서경(書經)》을 읽혀 요순(堯舜) 이래 서로 전한 심법(心法)과 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주공(周公)ㆍ소공(召公)이 다스림을 보좌한 아름다운 계책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주역(周易)》을 읽혀 길흉(吉凶)ㆍ회린(悔吝)과 진퇴(進退)ㆍ존망(存亡)의 도리 및 사성이현(四聖二賢)의 미현천유(微顯闡幽)의 가르침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춘추(春秋)》를 읽혀 성인께서 산삭(刪削)하고 포폄(褒貶)하여 천하의 사정(邪正)을 결정하여 백왕대법(百王大法)의 의리로 삼은 까닭을 알게 한다.
다음으로 《예기(禮記)》를 읽혀 경례(經禮) 삼백과 곡례(曲禮) 삼천 및 선왕과 선성이 남기신 제도와 가르침을 알게 한다.
이것이 경전을 읽는 순서인데, 《소학(小學)》을 읽을 때는 또 《효경(孝經)》을 읽고, 《사서(四書)》를 읽을 때는 또 《혹문(或問)》을 읽으며, 《주역(周易)》을 읽을 때는 또 《계몽(啓蒙)》을 겸하여 읽는다.
《춘추(春秋)》를 읽을 때는 또 겸하여 《삼전(三傳)》과 《국어(國語)》를 읽고, 《예기(禮記)》를 읽을 때는 또 겸하여 《주례(周禮)》, 《의례(儀禮)》, 《가례(家禮)》를 읽고, 또 《가어(家語)》, 《근사록(近思錄)》, 《심경(心經)》, 《이정전서(二程全書)》, 《주자대전(朱子大全)》, 《어류(語類)》,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읽는다. 두루 이해하고 그 취지를 끝까지 알며, 또한 반드시 옛것을 연구하여 앞으로 올 것을 유추하고 서로 참고하여 고증해야 한다.
또 사서(史書)를 몰라서는 안 되니, 이에 《강목(綱目)》 및 사마천(司馬遷)ㆍ반고(班古) 이하 역대의 여러 역사서를 겸하여 읽고 우리나라 역사까지 이른다.
또 문장가에 대해 몰라서는 안 되니, 이에 《초사(楚辭)》, 《전국책(戰國策)》, 《문선(文選)》, 이두시(李杜詩),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를 겸하여 읽고,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에 이르기까지 극히 넓히되 이단(異端)의 서적은 보지 않아야 하지만, 그들의 학문은 제쳐두고 다만 그 글만 보아서 문장을 짓는 데 일조하는 것도 괜찮다.
대저 그 근본을 세우고 의리를 바르게 하며 견해를 넓힌 연후에 마음에서 취하고 손에 집중하면 호탕하고도 성대하게 쏟아지는 것이니, 한유(韓愈)가 이른 바 “인의(仁義)로운 사람은 그 말이 애여(藹如)하다.〔仁義之人 其言藹如〕”라는 경우이다. 저 과문(科文)은 바로 여사(餘事)일 뿐이니, 어찌 반드시 심력(心力)을 허비하여 남을 흉내낼 필요가 있겠는가. 종국에는 공교로움을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교롭게 될 것이다.
옛날 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수(歐陽脩))이 계자법(計字法)을 만들고 정단례(程端禮)가 분년법(分年法)을 만들었는데 후학들이 그 말을 따랐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다만 차례만 정하여 선후의 순서를 잃지 않게 하느니만 못하다. 그 성취가 이르고 늦거나 높고 낮음은 사람의 의지와 재주에 달린 것이다.
오호라! 주자(朱子)는 나의 스승이다. 독서에 대하여 “몸을 바르게 하고 서책을 마주하여 상세히 글자를 보고 자세하고 분명하게 읽어야 한다. 모름지기 글자마다 또박또박 크게 읽고 한 글자라도 틀리거나, 소홀히 여기거나, 크게 보거나, 거꾸로 보아선 안 되고 억지로 암기해서도 안 된다. 오직 많이 읽어 자연히 입에 붙어서 오래되어도 잊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고인들이 말한 “천 번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讀書千遍 其義自見〕”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또 말하기를 “독서에는 삼도(三到)가 있으니,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마치 성현을 마주한 듯 단정히 정좌하면 마음이 안정되어 의리를 쉽게 궁구할 수 있다. 많이 읽기만을 탐내어 힘쓰거나 대충대충 넘어가고 건너뛰어서는 안 되며, 읽기를 마치자마자 곧 이미 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문처가 있으면 곧 다시 사색하고, 사색하여 통하지 않으면 작은 책자를 마련하여 날마다 베껴 기록하여 틈틈이 곱씹어 읽고 자문(資問)한다. 까닭 없이 출입하지 말아야 하고, 소설(少說)과 한화(閑話)는 허송세월할 염려가 있고, 잡서(雜書)는 정력을 분산시킬 염려가 있으니 보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독서할 때는 마음을 비우고 눈은 높게 지니며 배포를 크게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가령 주자가 독서할 줄 몰랐다면 그만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어찌 독서의 삼척(三尺) 준칙이 아니겠는가.
혹자가 말하기를 “세간에는 허다한 책이 있는데, 어떻게 다 읽을 수 있겠소? 또 사람이 질병과 사고가 없을 수 없고, 집안일에 매이거나 하면 뜻을 온전히 하여 독서하려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요행이 과거에 급제하여 문호를 지키고 집안을 이끌어 가는 것만 못하오.”라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자포자기하고 나태한 사람이므로 요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 판축(版築)하며 독서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라 쳐도, 고인들 중에 아침에 밭 갈고 밤에 독서한 사람, 경전을 끼고 김을 맨 사람, 땔나무를 지고 다니며 암송한 사람, 질병 속에서 독서한 사람, 옥중에서 글을 배운 사람도 있었으니, 어찌 오래도록 사고(事故)에 얽매여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한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다만 의지가 없는 것이 근심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지가 중요하고, 재능은 다음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