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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음
비문학이긴함
'왜 사는가?' 참으로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다. 우린 이 질문에 대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시시때때로 나타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럴 때면 혼자 생각도 해보고 책도 찾아 읽어보지만 정답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삶의 목적, 의미란 게 있어봐야 뭐 달라지는 게 있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그 정도 목적과 의미는 그때그때 내가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목적과 의미는 무엇과 비교하든 민망할 정도로 초라한 현재의 내 존재 앞에 바스러진다. 물질적 측면만 따져봐도 돈도 없고, 외모도 빼어나지 못하다. 그나마 몸은 튼튼하지만 넉넉히 잡아도 10년이면 어느 곳이든 고장 나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10년 동안 이런저런 목표를 이루면서 건강도 지키고 나름의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수십 년이 지나면 침대 위에서 골골거리며 인생무상을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고, 한 백 년쯤 지나면 내 존재는 그런 인간이 있었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카뮈가 말했듯, '공허가 무엇인지 가늠해 보고 싶거든 이천년 후에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만들어낸 의미와 목적'은 그저 무의미의 심연에 침잠할 뿐이다.
이 책은 이런 고민에 대해 어느 정도 대답한다. 보다 정확히는 같은 고민을 가진 존재로서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고 하는 게 알맞겠다. 저자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탐구하지 않고, 방향을 선회해 '질문' 자체에 대해 파고든다. 이런 관점에는 어느 정도 대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고, 마지막에는 시인한다. 이렇게 대답은 무한하게 유보되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짚어내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내포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의 이런 질문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관점을 취하면서도, 우리의 삶은 중요하고도 유의미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여기서 좀 더 파고들면,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무의미,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견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데 우리 삶의 의미는 왜 중요하며, 그것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왜 슬퍼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렇게 한 바퀴 돌아서 요점을 잡아낸다.
정확한 지적이다. '인생 의미 없다'라는 자조 섞인 한탄에 내포된 모순을 정확히 잡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대답도 뭣도 아니고 단순한 모순일 뿐이지 않은가? 삶의 의미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이런 모순이 조금 발견된다고 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큰 설득이 되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제공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말이 맞다 쳐도 결국 내 삶이랑 내 삶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밖에 더 돼?' 그렇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생각한 만큼 비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좋아서 방방 뛸 일도 아니지만, 슬퍼할 일도 분명 아니지 않은가.
이제 다시금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그래서 뭐?' 당연한 귀결이다. 뭔가 딱히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무의미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부재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글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카뮈의 영웅적 반항은 과히 낭만적이다. 불교의 무아 사상은 세속적인 우리에겐 요원해 보인다. 저자는 여기서 다소 생소한 이름인 철학자 네이글의 대안을 제시한다. 어차피 '모든 것이 허무할 수 있는 관점' 아래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허무해지기 십상이다. 앞서 지적한 허무주의적 오류는 물론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찾아 나서는 인간의 끝없는 이의 제기도 그렇다. 심지어 인간을 하나의 먼지로 전락시키는 거대한 우주조차도 영겁의 시간 앞에 무의미할 것이다.
이 허무 앞에 저자와 네이글이 제시하는 대안은 간단하다. 그냥 픽 웃어버리자는 것이다. 헛웃음부터 나오는 이 대안은 일면 인간 본질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의심부터 하고 보면서도, 그 의심을 발판 삼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하는 인간 말이다. 책에서도 지적한 바, 삶의 무의미라는 끝없는 공허를 직면하고 있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라는 '그 무의미한' 순간순간을 온 힘을 다해 살아간다. 만약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선에서 영원이란 것이 있다면, 인간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희비극이 영원에 가장 가깝지 않겠는가. 마냥 희극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일 것도 없는 이 아이러니, 이에 대해 평소처럼 입을 꾹 다문 채 고뇌하기보다는 한 번은 웃어보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만약 나의 존재가 형언할 수 없는 한 편의 소극에 불과하다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연출되는 한 편의 기이한 개그에 불과하다면, 그에 대해서 웃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中, 미켈 보치-야콥슨
책의 메인 테마인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에 반대신론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좀 사족스러웠다. 조금 전형적인 도킨스식 신론이어서 굳이 넣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어쩌면 내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난 신론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카뮈의 의견에 동의한다.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벌받지 않고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보다 훨씬 매혹적이다' 아닐 이유가 없다. 무엇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든지 간에 그런 것은 신(=진리) 앞에서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겠는가.
책 자체는 여러모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라 마음에 들었다. 특히 네이글이라는 철학자가 흥미로웠는데, 국내에 번역된 책은 거의 없다시피 한 모양이다. 조금 아쉬운 부분인데, 뭐 살다 보면 주요 저서 한두 권 정도는 번역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인생이 "무의미"하니까 그걸 살고 있는 닝겐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거임
보통은 그게 꽤 잘 되는데, 가끔씩 그게 힘들 때 웃고 넘어가자는게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싶음
그게 힘들 땐 다시 내가 하고 있는 짓거리는 내가 부여한 하찮은 의미 외에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는걸 상기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무한순환이지 않을까? 어차피 한번 웃고 넘어가도 무한순환인가? ㅋㅋ
같은 말인 듯 합니다
힘들 때 웃는자가 '일류'다
굿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