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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하지만 모든 유한 귀족이 권태에 빠지고 타락하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퇴폐적인 쾌락에 빠지는 대신, 해양생물학 연구에 전념했고 그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신체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을 내던질 필요가 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인위적 목표를 세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했던 것과 똑같은 에너지를 쏟아 가며, 자신의 전부를 바쳐 목표 달성을 추구한다. 그런 식으로 로마 제국의 귀족들은 문학에 열정을 쏟았고, 몇 세기 전의 유럽 귀족들은 고기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음에도 사냥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것이다. 어떤 귀족들은 정교한 방식으로 부를 과시함으로써 신분 경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히로히토 같은 소수의 귀족들은 과학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39. 우리가 "대리 활동"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목표를 갖기 위해, 또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충족감"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 목표를 지향하는 활동을 뜻한다. 어떤 활동이 대리 활동인지 알아보는 간단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X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는 사람이 있다고 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자. 만약 그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바쳐야만 했다면, 그리고 그런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여러 가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방법으로 활용했다면, 목표 X를 달성하는데 실패했을 때 그가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겠는가? 만약 대답이 "아니오"라면, 그 때 목표 X를 추구하는 것은 대리 활동이 된다. 히로히토의 해양생물학 연구는 분명히 하나의 대리 활동이 된다. 히로히토가 생필품을 얻기 위해 과학과 무관한 일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해도, 그가 그 일에서 재미를 느꼈다면, 그는 자신이 해양생물의 해부학과 습성을 모른다는 이유로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반면에 (예를 들어) 섹스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대리 활동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과의 성적 관계를 전혀 가지지 않고 평생을 보내야 한다면, 설령 그 문제만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해도, 여전히 박탈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과도하게 섹스를 추구하는 것은 역시 대리 활동이 될 수 있다.)

40. 현대 산업사회에서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는 최소한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간단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훈련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충분하며, 직업을 계속 가지고 있으려면 그저 제 시간에 출근하고 적당히 열심히 일하면 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적당한 지능,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순한 복종이다.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 준다. (물론 생필품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최하층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주류 사회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가 대리 활동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연구작업, 스포츠 기록 경쟁, 인도주의 활동, 예술 및 문학 창작, 회사 내에서의 직위 상승, 신체적 필요를 한참 넘어서는 돈과 물질적 재화의 획득, 그리고 비백인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하는 백인 활동가처럼 활동가 자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를 떠들어대는 사회 운동이 포함된다. 이런 활동들이 언제나 순수한 대리 활동으로 머물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단순히 추구해야 할 목표가 필요하다는 욕구 이외의 다른 욕구들이 활동의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학 연구는 부분적으로 특권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고, 예술 창작은 감정을 표현하려는 욕구에 의해서, 민병대 운동은 적대감에 의해서 유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활동의 상당 부분은 대리 활동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마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얻는 "만족감"이 돈이나 특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41.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리 활동은 진짜 목표(즉,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가 이미 채워졌을 경우에도 여전히 달성하기를 원하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만족감이 떨어진다. 이는 대리 활동에 깊이 몰두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만족할줄 모르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돈에 눈이 먼 사람은 끝없이 더 많은 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과학자는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문제로 달려간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는 언제나 보다 멀리, 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자신을 몰아친다. 대리 활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루한" 활동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그런 활동에서 얻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사회가 생물학적 욕구를 채우는 데 필요한 노력을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축소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자율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 대신 거대한 사회적 기계의 부품으로서 기능함으로써 만족시킨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사람들은 자신의 대리 활동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실용적 목적성 없는 독서행위야 말로 대리활동의 정의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