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열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시집 <사랑의 변주곡>에서, 1990 -





-실제 씌어진 연도는 1965년이다.

키에르케고르식으로 말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김수영식으로 말하면,

그 절망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지구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가지고, 권력을 누렸다 해도

반성 없는 삶은 절망이고,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요즘 돌아가는 게 딱 요 모양이다.

구원은 반성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