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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이토 준지는 일본의 공포 만화가다. 그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된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로, 당시 만화방에서 책을 빌려오던 형에 의해서였다. 당시 우리집 콤-퓨타는 단 한대밖에 없었고, 학교가 끝나는 3시부터 형이 귀가하는 4시까지가 내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의 전부였다. 내가 지금의 컴퓨터와 게임 중독이 시달리게 된 이유도 부족했던 컴퓨터 이용 시간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후,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만큼 편하게 마음을 덜어내는 일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노랬던 병신 빡대가리 수준답게 숙제를 한다거나 공부를 한다는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고 그 이후 결국 잠이 드는 5시부터 11시까지는 혼자 지루함과 싸우는 일이 내 하루의 가장 큰 일과였다.
내 상상력은 남달랐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에야 망상병에 걸린 편집증 환자가 됐지만 옥상에 올라 나무로 만든 칼을 허공에 휘두르며 상상속의 괴물과 싸워 왕국을 구한 용사나 약관의 나이로 무술의 극을 깨우친 천재 무술가가 되기도 하고, 집 뒷편 공터의 높은 곳에 올라 멍하니 노을이 지는 태양을 바라보기도 했다. 학교 도서관에 뺀질나게 드나들며 책을 빌려 읽으면서 여러번 다독아상을 받았다.
이렇게 말하니까 멀리서 보면 감수성 풍부한 순수한 소년모습이지만, 현실은 TV 광고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정도로 바보상자를 끼고 살았고, 친구도 없는 아싸새끼라 혼자 노는 시간이 유독 많았을 뿐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그런 나에게 형이 가끔씩 빌려오는 단행본식 만화는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 파피용의 기아나 형무소 책장에 꽃혀있을 법한 먼지덮힌 책들의 아닌, MSG를 듬뿍 친 자극적인 음식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괴짜 가족. 한마 바키. 지옥선생 누베, 투 러브 더 트러블. 반항하지마! 마법선생 네기마!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드는 모험과 전개! 파괴! 학살! 선정성!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져 있었다. "그 새끼.." 가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 -지옥탕-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트라우마 비슷한 걸로 남아있다. 왜 어린 애새끼들에게 자극적인 걸 보여주면 안되는지 알게하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가치관이 많이 뒤틀렸다고 장담한다.
당시에 공포만화 면역이라고는 아동용으로 제작된 으악! 너무너무 무섭다! 와 반에서 풍문으로 돌던 빨간마스크, 홍콩할매가 전부였던 나에게 본격적인 공포 만화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한 달 동안 밤에 화장실을 못갔고, 망각 하는데는 1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대가리가 좀 굳어진 나이가 된 이후에 다시 이토 준지의 만화를 다시 보게 됐다. 처음에는 어렸을 때 느꼈던 찝찝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였지만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는다. 이제까지 4-5번 정도 반복해서 읽었고 인상깊었던 내용은 10번 넘게 읽었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인간 내면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만화다.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목구멍 아래에서 일렁거리는, 재치기를 아무리 해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검은 덩어리 같은 느낌이다. 피투성이의 귀신의 모습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과, 살인마에게 쫓기는 1차원적인 공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포만화다.
잔인한 것이 아니다. 무서운 것이 아니다. 기괴하다. 상상의 영역을 벗어난 생각해 본 적 없는, 아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각인되는 공포. 어떻게 보면 개그만화라고 보이기도 하는 그 캐릭터의 성격과 표정, 전개는 다른 곳에서는 못보는 오직 유일하게 이토 준지 만화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지만 책이 나온다면 반드시 보고 넘어간다.
그런 그의 단편이 나왔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서점으로 가 책을 구입했다. 포장 비늘과 광고 커버는 그자리에서 버려버리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에어컨을 켜고 엎드려 누워 스마트폰이 아닌 책장을 넘겼다.
말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런식으로 시작하는 문구를 좋아한다. 있어보이게 남에게 소개하기 편하니 말이다.
....
......
.......
사실 처음에는 여기에 "일반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라고 시작하는 리뷰를 적을 생각이었다. 근데 애초에 그럴 정도였다면 내 눈에 띄지도 않았다. 일단 많이 팔렸다는건 대중성을 띄웠다는 소리다. 베스트셀러를 거르고 인기 없을거 같은 코너의 책장 깊숙히 묻힌 곰팡내 나는 캐캐묵은 책을 찾아읽는 정도로 나는 독서에 큰 관심이 있는건 아니다. 함정에 빠질 뻔 했다. 중2병 같은 리뷰를 쓰고 이불킥 할 거리는 하나 줄인것에 대해 감사하자.
사회. 억지 웃음. 가면. 그리고 우리가 말하지 않는 우리들의 내면의 이야기.
사람의 성향에 대한 문제다. 흔히 "인싸" 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주말에 밖에 나가서 놀고 외향적이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말문을 트고, 어울리며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들은 인싸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다. 사기꾼. 연예인. 수천만 팔로우를 가진 페이스북 스타. 전화번호가 300명 넘게 등록되 있는 친구. 월화수목금토일 모두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게 사는 슈퍼인싸. 생각해 보면 주위에 많다. 그리고 마치 이 세계는 모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아싸" 의 이야기는 어떤가? 내성적이고, 사람을 대하기 힘들어하고 집에 쳐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말이다. 사회는 이들을 잘 비추지 않는다. 보이더라도 9시 뉴스나 PD 수첩같은데서나 비추지.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걸 꺼린다. 히키코모리, 왕따, 사회부적응. 억지로 끄집어내서 사회문제로 공론화하는게 아니라면 이들의 존재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세상에 이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처럼.
신. 사랑. 용기. 자꾸 경박하게 사용하니 단어의 뜻이 퇴색되어 일상적인 말이 된 느낌이지만 아웃사이더는 벗어난 사람이다. 울타리 안에서 양들과 야생 염소의 차이다. 겉보기에는 비슷하게 보일지도 몰라도 두 마리는 확실히 다르다.
세계. 이 사회가 울타리라고 생각한다. 몇몇 특이케이스로 적을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울타리 안에서 양들이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비록 좁은 울타리 속에 갇혀 풀을 뜯는 거로는 만족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야생 염소라도 말이다.
울타리 안의 양들은 얌전히 풀을 뜯어먹고 메에에 울음소리를 내고 서로의 엉덩이냄새를 맡는다. 내려오는 태양빛을 쬐다가 발정나면 근처의 암컷인지 수컷인지 모르지만 박을 구멍이 있으면 교미를 한다. 자기들끼리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지킬거 지켜가며 잘 먹고 잘 싸는것이 울타리 속에서 양떼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회는 좁은 세상이다. 법. 전통. 규율. 규칙. 말하지 않지만 서로 지켜야 하는 암묵적인 약속. 다른 집단에서 살다 온 사람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는 아프리카 토인들의 생활 방식을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과 가깝게 말하면 여행을 온 외국 사람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다른 사회에서 살다 오면 다른게 보통이니까.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대해서는 익숙해진다. 어쩌면 주인공은 "익숙해지는 것" 타성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7가지 "저주"을 심어뒀다. 존경/기대받는 것에 두려움. 남의 호의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동시에 미움받는것.주인공은 자신 속의 저주들이 무게와 목을 옥죄는 고통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건 보통 사람들도 1~2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성격이다. 보통은 유아기때 모성애를 받거나 교육, 사회화를 통해 누그러지거나 거세되는 기질이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통칭 "저주" 라는걸 우리들은 숨긴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광대처럼 굴기도 하고 주목받는 것이 두려워 일부로 바보처럼 연기한다.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라도 미움받지 않으려고 호의를 배풀고, 내키지 않은 만남에서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한다.
하고 있는 일에 제대로 끝내지 않고 도망치기도 하고, 무거운 의무감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주인공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 실격. 이것은 우리들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말한다. 깊고 또 깊은 심연 속의 이야기.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읽고 있으면 괜시리 기분이 나빠진다. 자기 자신을 "인간 쓰레기"라 부르는 주인공에게 어느샌가 공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인간 실격은 하나의 치유물 장르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경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저주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큰 고민거리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억지 웃음을 짓는 것에 피로와 스트레스를 받는다.
웃고 있는 가면을 쓰는 것. 가면을 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하루종일 웃어야 한다는 것에 안면 근육에 마비가 올 정도로 피로를 느낄 것이다.
세상에 울려퍼지는 사랑노래나 tv속의 예능. 보통 사람들이 즐겁다고 말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 마치 인파 속에서 무인도에 고립된 된 것 같은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힐링을 준다. 세상에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뿐이 아니다 라고 말해준다. 그것이 비록 상처받은 똥개들이 서로의 치부를 핥아주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몰라도 힐링은 힐링이니 말이다.
쓸 말은 많고, 하지 않은 이야기도 많지만 여기서 끝내자. 아직 3권을 안읽어서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인간 실격 2권의 독백을 인용해 글을 끝맺고 싶다.
세상에 용서를 못하는게 아니라 네가 용서를 못하는 것이겠지. 세상은 개인이다. 개인이 모여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신경쓸 필요는없는게 아닐까?
[3권]
일상에 중독된다는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시간이 감당되지 않게 빨리 지나간다. 월요일은 싫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금요일이 되는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 나에게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어떤 세대보다 많은 기회와 시간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시시하게 청춘을 끝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코흘리개 꼬맹이들에게 자랑할 만한 업적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시간 감각을 잃게 만드는 타성을 빠져나와 오랜만에 서점에 들려 인간 실격의 마지막 권을 구입했다. 11월부터 시작된 짧은 여정. 그 마지막 이야기가 드디어 끝나게 된다.
인간 실격은 나름 굉장한 반전을 주며 이야기가 끝나게 된다. 하지만 서스팬스 물도 아니거니와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는 않으니 나는 책의 다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은 주인공 요조 오바가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노년이 되는 삶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악귀와 역경으로 가득찬 수라장이 따로 없다. 주변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말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진 이 남자는 전등빛에 이끌려 눈이 멀어 다가오는 벌레들처럼 주위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만다.
여색에 빠져 방황하고, 술에 빠져 방탕하며, 부인을 버리고 다른 여색을 희롱하고, 약에 절여져 쾌락을 쫓고, 부모로서도, 자식으로도, 남편으로서도 도리를 하지 않으며 이간질 시켜 그 목숨을 빼앗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남에 믿음을 쉽게 져버리며, 정의롭지 못하며, 재능이 있음에도 그걸 쓰지 않아 녹슬게 만들고, 도망치며, 책임지지 않는다.
인간 군상의 끝을 달리는 주인공에게는 인간 실격. 인간 미만. 쓰레기라는 말이 무엇보다 어울린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주인공에게 무작정 욕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은 제대로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거나 성인처럼 평생을 남을위해 순교하며 살아온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에게 어느 순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소설을 읽든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영웅의 서사시도 아니고, 로멘스도, 역경을 이겨내 성장하는 청소년소설도 아닌 인간 실격에서 만큼은 공감은 굉장히 역겨운 일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주인공은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마귀,사탄,악귀,쓰레기, 악마. 그 어떤 사악한 악인의 이름을 대도 부족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히틀러, 스탈린 같은 이들의 학살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마찬가지로 당연히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자기밖에 없다고 치고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진실로. 주인공 요조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가?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썰렁한 개그로 위기를 넘기려고 하는 주인공의 옆모습. 해야할 일은 미뤄놓고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 만나 술에 나누는 한심한 모습. 지금을 모면하기 위해 당장 들킬 입바른 거짓말을 하고, 책임지고 싶지 않아 침묵하고, 눈앞에 쾌락에 눈이 멀어 꿈을 내팽겨쳐 버리는 그런 모습 말이다.
역설적으로도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평가로 인간 실격을 내렸지만 그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람마다 주인공에게 보게 되는 모습은 평소에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숨기고 있었던 치부일 것이다.
이 만화는, 감추고 있던 우리의 영혼의 민낯을 들춘다. 다른 이들에게 보인다면, 변명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역겹기에 마음 속 깊이 숨겨둔 치부를 말이다. 만화는 주인공 요조의 모습을 빌려 감히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이야기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책을 끝까지 읽었다면 순간이라도 느꼈던 동질감에 그를 욕하는 것에 망설이게 된다.
네 삶에 단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자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유명한 선지자가 한 말이다. 주인공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만약 한 점 부끄럼 없이 주인공을 욕할 수 있는 자라면 그는 가식의 가면을 쓰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악인이거나 자신의 삶에 티끌만큼의 부끄러움 없이 살아온 자일 것이다. 나는 내 삶에 때가 너무 많이 타서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무엇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일까? 교훈? 저렇게 살지 말아라? 철학?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냥 신변잡기 식으로 막 쓴거 아니야? 이미 나보다 더 나이많고 배우신 분들이 원하는 답을 내줬을 것이니 교과서에 어울리는 대답은 검색해서 찾아라. 나는 내가 느낀 점을 쓰겠다.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요조 오바는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슬픈 미소였을까? 만족한 미소였을까? 아님 그냥 나이먹어서 치매로 헛웃음을 지은 것인가? 작가는 일부로 이를 알아보기 힘들게 그려놨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거다.
나는 만화의 마지막장. 요조의 이 미소를 만족한 미소로 보았다. 주인공 요조는 도망자다. 아버지, 직업, 가족, 여자, 친구,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까지 정면으로 맞서는 걸 무서워해 광대를 흉내내고, 당장에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쫓아 담배와 술, 여색, 그리고 결국은 약까지. 맞서지 않고 도망치는 인생을 살았다.
가만 보면 주인공은 그 무엇도 자신이 선택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남의 의지대로 끌려다니며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도망치고 회피하고, 결국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절벽 끝에 다다라 큰 파도가 자신을 덮쳐 올때면 무방비와 다름없이 파도에 휩쓸렸고, 해류에 휩쓸리는 걸로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면 다른 이의 선의의 손길에 부축을 받고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켜도 자신에게 도움을 준 자를 버리고 또다시 도망치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곳에는 낙원은 없고, 희생없이 얻을 수 있는 것 따윈 없다. 값을 치루지 않았다면 언젠가 더 큰 댓가를 치루게 되는게 세상의 이치다.
도망치며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모든 이들에게 고통과 불행. 파멸을 흩뿌리고 다니는 재앙의 사자와 같은 인생을 살고 결국 마지막에 다다른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자기 자신에게 인간 실격을 선고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끝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을 때, 요조는 자신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이를 만나고 진정으로 친구라 부룰 수 있는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귀고 구원을 받는다. 비록 그것이 상처 입은 똥개가 서로의 치부를 핥아 주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에 다다라, 요조는 작중 유일하게 자신이 의지로 태어나 처음으로 "선택" 을 한다. 그것은 자신이 저질러왔던 과오에 대한 책임이다. 선택의 함으로서 파도는 멈췄고, 성난 바다는 잠잠해졌다. 격정의 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듯 바다도 흐르고 흐른다. 작중의 인물이 모두 나이를 먹는다.
요조의 선택은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잘못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요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짐을 다 떨쳐낸 듯이 개운해 하며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의지가 담긴 가짜 아닌 도망치지 않은 자신이 선택한 미래를 선택했고 진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와 대비하듯, 그의 친구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의지로 구원을 찾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에까지 남의 의지로 이끌리듯 휩쓸리고 있었고, 마지막까지 자신이 아닌 남에게 구원을 찾았다. 결국 친구는 선택하지 못한 채 가짜 인생으로 최후까지 후회하며 이야기가 끝나게 된다.
누가 더 윤택한 삶을 살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같은 운명을 걸어왔던 두 명 중 누가 목적을 이루고 진짜 인생을 살았는가를 관점을 두고 본다면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두 명 중 목적을 이룬 것은 주인공 요조일 것이다.
주인공이 결국 자신의 삶을 선택했으니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말년에 처지가 그다지 좋지 못한건 그냥 업보라고 생각하자. 뭐,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어린 아내에 건강한 자식도 있으니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주인공의 말처럼, 이제 잠잠해진 바다는 다시 물결치는 일 없이.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고 흐를 테지만 말이다.
왜 이토 준지가 뜬금없이 일본의 고전을 만화로 다시 그려냈는지 알 것 같다. 분위기가 비슷하다. 남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이야기를 끄집어내 이야기하는걸 잘한다. 대단한 작가다. 자존심 상하니까 언젠가 졸작이 나온다면 이 작가도 한물 갔네 ㅉㅉ 라고 비웃어줄 날을 고대하고싶다.
자, 그럼 여기까지가 인간 실격에 대한 리뷰다. 여기서부터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시대 배경이 1950년대 이전인 일본을 다루고 있는 인간 실격은 반세기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공감되는 내용이 있다. 현대 사회는 광대. 악인이 선량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 절대다수인 집단이 되었다.
우리는 위대한 호모사피엔스의 자손으로서 현재 가장 진화된 인류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진화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신념있는 용감한 자는 전쟁터에 맨 앞줄에서 죽었고 사회 구조 속에서 튀어나온 말뚝이 되어 솎아내기 당해 야비하고, 꼼수만 부릴 줄 아는 사람들만 살아남아 그 유전자를 남겼다.
소수 남은 정의로운 자들은, 비열한 자들이 다수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역설적으로 비열한 척 하는 가면을 뒤집어 쓰고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광대 춤을 추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부끄러운 치부가 들춰진다면 몸을 움츠리고 얼굴을 화끈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사람들의 대표라 큰 소리로 설치는 자들이 하는 것을 보면 누구보다 많은 오물을 몸에 묻히고 그걸 창피해 하지도 않고, 야비하고 비열한 기회주의자 같은 성격이 덕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남을 믿지 않고, 속이는 것 정도는 너무 당연해 말할 필요도 없다.
노력하는 "척". 정의로운 "척". 책임지는 "척" 그러는 사람들이 늘었다. 막상 선택을 하고, 그 댓가를 치뤄야 할때가 되면 당당했던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곤란하다는 표정 변명을 내뱉는다. 다들 흉내만 내고 있을 뿐. 신념이 사라진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기분나쁜 주위에 있을법한 쓰레기같은 인간 군상의 사람이 늘었다. 나쁜 길로 가는걸 등떠밀고 자신의 더 나은 처지에 위안을 받고, 남의 행복을 시기하고, 불행에 기뻐하며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는게 아닌 자신의 아래에 두려고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어쩌면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모두 인간 실격을 선고 받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심판을 내릴 마지막 인간성과 양심까지 내다 버렸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반면교사 삼아 열심히 살아야지 어쩌겠냐. 나 또한 어서 빨리 노력하는 "척" 현명한 "척" 을 그만둬야 하겠지만 말이다.
투러브트러블 십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