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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 한민족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험준한 산지가 대부분이고

충적토 평야라고는 - 다른곳에 비해- 조금 넓은 들판에 불과한 것들밖에 없는 곳에서(지형)

장마전선과 태풍이 잊을만하면 찾아와 물 폭탄을 쏟아붓는 곳에서(기후)

유목 약탈족과 해구들이 식량과 자원을 찾아 급습하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격전장에서(지정학)

다른 작물도 아닌 벼농사(주 식량)를 고집하며 한반도에 주저앉은 씨족들의 후손이다. 


-이철승, 쌀재난국가 


좋은 책이라고 생각안하고 비추천함


예전에 82kg 김지영 관련 비판에서 사회학과 특유의 도식화가 심화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저 책도 동일함


하지만 저 구절 만큼은 촌철살인임.


하인리히 야콤의 <빵의 역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음


인간은 기후를 바꿀 수 없다. 기후는 운명이다. 

당신은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에서 태어났는가? 적도 근처에서 태어났는가? 

아니면 북극권 내에서? 지구에는 다섯 가지의 주요 기후가 존재하며 당신이 태어난 곳의 기후가 

당신의 생각, 행동, 식습관, 관습, 국가의 인구 분포, 정치, 경제, 수도의 위치를 결정한다. 

(중략)

실제로 모든 것을 정복하는 것은 바로 기후이다. 기후의 결정사항에는 간청이나 호소가 통하지 않는다.


- 하인리히 야콥, <빵의 역사> p.523


이 책은 추천한다. 


한국사의 역사적 의의를 찾자면 


여름에는 아프리카 출신들도 런하고, 겨울에는 북유럽은 가볍게 제압하고

일년 강수량의 3분의 1일이 여름 한철 한달도 채 안되는 기간에 쏟아져서 홍수나기 일쑤에

정작 비가 필요한 봄, 가을에는 비가 안오는 미친 기후에


국토 7할이 산인 좁아터진 나라에서 

농사짓고 조선시대에 인구 천만까지 길러내는 저력의 역사라 할 수 있음


참고로 만주는 겨울날씨가 아예 시베리아랑 자웅을 겨루니까 단군 그 새낀 부동산엔 소질이 없는 새끼였음


가끔 에도시대 일본이 동시대 조선보다 인구도 많고 부유했잖아. 무능한 헬조선 이러는 놈들이 있는데


호남평야가 3,500 제곱킬로미터고 일본 간토 평야가 1만 7천 제곱킬로미터임. 부양력이 비교가 되겠냐


심지어 호남평야는 조선 이전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그 곡창지대도 아니었음


삼국시대에는 군산이 아예 바다밑에 잠겨있었고, 만경은 어촌, 익산에도 바닷물이 들어차서

익산 천도를 고려했던 백제 무왕은 부여에서 익산으로 배타고 갔을 확률이 높음


죽자사자 삽질해서 조선말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거랑 유사한 모양까지 만들어냈는데

김제-만경 하류는 조선말까지도 뻘밭


고종때 지도에도 낙동강 하류 삼각주(김해평야)랑 부산 강서구는 바닷물 밑

밀양이 밀물때 몰려오는 짠물에서 완전히 해방된건 낙동강 하굿둑 세워지고 난 다음


고려시대에는 한반도 전체 인구가 중기 300만, 후기 500만 정도로 아주 아주 거칠게 추정되며

현재까지 유일한 고려시대 촌락 그림인 <독화로사도>를 참고하면 고려 시대엔

수리시설 대대적으로 구축할 역량이 없어 강가에도 잘 안살고 물 끌어다 쓰기 쉬운

계곡, 구릉, 산골짜기 주로 살았던 걸로 역시 아주 거칠게 추정되고

 

염해가 심한 바닷가 땅은 버려짐

고려 후기에는 왜구 침입이 너무 심해서 역시 방치되고 

고려말 피해 다 복구하고 해안가 땅들 제대로 일구기 시작하는게 조선 성종때쯤   


조선 역사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조선시대 기후, 지형을 잘 살펴보면 왜 그럴수밖에 없었는지 다 이해가 갈거임


중세시대 농업사는 여말선초 농업사 전문가인 위은숙 선생의 책이 괜찮음


위 선생은 5인 가족 자영농이 1년을 빚안내고 먹고 살 정도로 농업생산량이 성장한 시기를 

고려 후기로 봤는데 그럼 대체 그 전의 농민들 삶은 어땠을까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