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유주, 「한탄」
그는 54세였고, 정신은 온전했고, 몸은 썩어가고 있었다. 그는 죽었다. 젊어서 죽은 사람의 특징이 있을 만한 나이도, 젊어서 죽은 자들에 대한 슬픔이 생길 만한 나이도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막연한 슬픔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54세에 죽었고, 그에게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이 없었다. 그를 기억할 사람도 없었다. 그는 이미 죽었으므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죽음은 모든 사물, 사람, 자기 자신,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참하게 슬펐다.
2. 김남숙, 「제수」
나는 간판 불을 끈다. 아비숑, 이라고 쓰여 있는 출처 없는 단어의 불빛이 완전히 사라진다. 새벽 두시 사십이분, 구화동 2225번지 골목의 마지막 불이 꺼진다. 간판을 끄면 더이상 객실 손님이 오지 않는다. 물론 손님이 오더라도 방이 없다고 그들에게 대충 둘러댄다.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는다. 완전한 새벽도 완전한 밤도 아닌 시간, 나는 네시까지 제수를 기다린다.
3. 송지현, 「구석기 식단의 유행이 돌아올 때」
우리가 그 사건을 목격한 것은 우연이었다.
모든 우연이 그런 식으로 발생하겠지만 새벽 3시에 갑자기 맥주가 마시고 싶던 것은 우리에겐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 일단 봉규도 나도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그날 우리는 다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평소에 맑지 않은 정신으로 무언가를 의논하는 것을 싫어했다.
4. 박성원, 「고백」
우리는 화장실에서 만났어. 정말이지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었찌.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출입구는 하나였어. 내가 소변을 본 다음 손을 씻고 있는데 한 여자가 비틀거리며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더군. 나는 기분 좋게 취해 있었어. 문밖에선 Wallace Collection의 「Daydream」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말이야. 한 시간 전에 신청했던 노랜데, 지금에서야 나오다니, 빌어먹을.
5. 우다영, 「밤은 빛나는 하나의 돌」
약속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는데도 어쩐 일인지 그는 특별히 나를 힐난하는 기색 없이 맥주나 마시자고 했다. 나는 너무 완벽하게 늦어버린 나머지 미안함과 초조함을 넘어 어느 정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오늘 처음 만난 그가 권하는 대로 그 가정집을 개조한 조용한 카페에 앉아 맥주를 좀 마시다가 이내 한잔 더 하러 나가자는 제안을 멍하니 수락했다.
6. 양선형, 「해변생활자」
해수욕장이 폐장했다. 무수한 발자국이 모래톱 위에서 허물어졌다. 바람이 미장 삽처럼 백사장을 평평하게 쓸고 다녔다. 그동안 그는 해안 안쪽에 위치한 여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성수기는 끝물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밀려들었고 갑작스레 빠져나갔다. 그들은 날짜에 쫓겼으며 휴가에 어울리는 기억을 차지하기 위해 웅성거렸다. 사진을 찍었다. 뒤처진 아이들이 저절로 미아가 되었다. 유실물 보관소에는 하루마다 무수한 물건이 경매 품목처럼 등장했고, 앞다투어 폐기되었다.
7. 최제훈, 「마계터널」
시작은 마케터 민철이 "백 프로, 진짜, 레알" 목격담이라며 꺼낸 우스개였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그는 고개를 맞대고 곤히 잠든 커플 앞에 서게 되었다. 금세 좌석을 차지하는 행운은 기대하기 힘들었지만 다정한 커플의 모습이 지친 퇴근길을 잠시나마 위로해주었다. 특히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침이 유려한 자유 낙하를 거쳐 살포시 오므린 남자의 손바닥에 고이는 광경에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천생연분이구나.
8. 정영문, 「어떤 불능 상태」
겨울이고, 겨울과는 상관없이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몇 시간 후 깼다. 시계를 보자 새벽이었다. 동이 트려면 좀더 기다려야 했다. 취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몸 안에 거의 그대로 있는 취기는 내용물이 쏟아져나온 구멍난 자루처럼 여겨졌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자 거실 바닥에 있는 네모난 작은 탁자에 빈 맥주병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탁자는 혼자 사는 사람이 별로 먹을 것이 없게 조촐하게 차린 식사를 하기에 알맞은 작은 크기였다. 여느 때보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았다.
9.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밤새 글을 쓰다 늦잠을 자버렸다. 대충 세수만 하고 가방을 들었다. 엄마는 아마도 짜증을 꾹꾹 눌러가며 병실에서 성경을 읽고 있을 터였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엄마와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계단을 내려오다 습관처럼 흘끗 우편함을 바라봤는데, 서류봉투가 꽂혀 있었다. 꺼내서 만져보니 두툼했다. 발신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뭐지, 하는 마음에 봉투를 뜯어보았따. 누렇게 바랜 종이 뭉치가 나왔다.
10. 서이제,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껏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살아왔는데, 정작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좋은 사람이란 대체 뭘까, 어떤 사람일까.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어 일단 종로3가역 1번 출구 앞에 멈춰 섰다.
채식을 시작한 것이 실수였을까.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종로3가역에만 가면 어쩐지 소 혓바닥 냄새가 났다. 뭐랄까. 그곳에서는 비릿하고 퀴퀴한 냄색 ㅏ났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그 냄새가 소 혓바닥 냄새일 거라고 확신했다.
다 맞춘 사람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맞추는 독붕이들이 많이 있었네;
11번은 누구임? 김쿠만인가 ㅋㅋ
노코멘용 ㅋㅋ
우다영 좋다
역시 독갤대환장 작가
정영문 나쁘지 않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