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빈 D.얄롬 /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소설 스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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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오스트리아 빈
40세의 의사 브로이어는 인생의 절정기에 오른듯 하다. 정상에 오른 것이다.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 돈과 친구, 아름답고 매력적인 아내와 슬하의 다섯 자녀들.
브로이어가 어린아이었을 때 누군가가 그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소년> 이라고 불렀고
그는 그 구절을 좋아했다.
그때의 가능성이란 성공과 박수갈채, 과학적 발견을 뜻했다.
그는 그런 가능성의 열매를 맛보았다.
존경받는 의사이자 존경할만한 시민이고, 중요한 과학적 발견도 했다.
브로이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도 몸의 평형을 조절하는 내이의 기능을 발견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호흡기를 관장하는 과정으로 알려진 헤링-브로이어 반사라는 중요한 발견에 참여하기도 했다.
처음의 얼마간은 새로운 성공으로 인한 흥분과 의기양양함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점점 그런 환희의 순간이 짧아졌다. 일주일, 하루, 한 시간으로.
이제 그런 느낌은 너무 빨리 증발해서 그의 살갗 아래로 스며들지도 않는다.
이제 그의 목표가 사기였던 것으로 느껴진다.
삶을 위한 목적, 인생을 통해 그를 충돌질했던 보상들, 그 모든 것들이 더없이 부조리한 것처럼 보였다.
한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낭비했나 따져보며 끔찍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브로이어의 어린 시절 그 또래의 소년들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숨을 쉬었다.
유대인 빈민가에서 벗어나서 출세하길 원했으니까.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해 부와 존경을 거머쥐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람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모두 의도적으로 목표를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생의 목표는 어느정도는 그렇게 그곳에 주어져 있다.
나의 시대, 나의 국가, 나의 가족이 부여해준 자연스러운 결과물처럼.
그런 것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단단한 목표이다.
물질적인 대상에만 매달리는 느린 주자들에게는.
성공에 도달하는 순간 그곳에서 빠져나오면서 다른 목표를 설정하는 요령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러나 인생을 깊숙히 들여다볼 줄 아는 높고 넓은 시야의 소유자는 잘못된 목표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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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스물아홉 살 때 위기가 있었다.
그의 의과대학 지도교수가 장티푸스로 돌아가셨을 때였다.
지도교수는 브로이어의 위대한 스승이었고 브로이어는 지도교수의 후계자였다.
브로이어가 후임으로 선출되었어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로 함량 미달인 지명자가 선출되었다.
브로이어는 연구실을 떠나 연구하던 비둘기를 집으로 옮겨 오고 직업적인 개업의로 방향을 돌렸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학문적 출세의 종말을 뜻했다.
브로이어는 학술 논문을 저술하고 출판하는 일에 늑장을 부렸다.
교수직을 얻는 데 필요한 형식적인 예비단계들도 거부했다.
제대로 된 의학협회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정치적으로 적절한 연줄을 대지도 않았다.
이유는 몰랐다.
경쟁적인 투쟁에 미리부터 위축되었을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보다 비둘기의 평형체계의 신비와 경쟁하는게 더 쉬웠을수도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소년>은 신분 상승을 위해 드러내놓고 발톱으로 할퀴는 짓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게 브로이어의 학문적 경력의 마지막이었다.
그의 <유한성>이 드러난 최초의 상처였다. 무한한 가능성의 신화가 처음으로 타격을 받은 것이다.
그게 스물아홉 살 때의 일이고 마흔에 접어들어 제2의 위기가 온다.
갑자기 그의 인생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그의 인생이 마냥 흘러가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마흔 전에도 알았지만 마흔 살에 그걸 안다는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무한한 가능성의 소년'은 단지 행진용 깃발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능성은 환상이고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향한 대열에 갇혀 있다는 걸 안다.
부르주아 생활의 표면은 사실 죽음과도 같았다.
너무 눈에 보였다. 끝까지 훤히 보이는 삶이었다. 모든 행위의 끝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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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이어가 베네치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루 살로메'라는 여자가 찾아와서 자신의 친구 니체를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니체의 증상은 심각한 두통, 구토, 시력저하, 위장병, 불면증, 어지럼증 등으로 복합적이지만
루 살로메가 치료해 달라고 하는건 니체의 절망이다.
루 살로메의 또 다른 친구인 파울 레와의 삼각관계에서 니체가 큰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브로이어는 자신은 마음의 병은 치료할 수 없으니 좋은 온천이나 사제를 찾아가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루 살로메가 브로이어를 일부러 찾아온 데에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그녀의 오빠 예니아 살로메는 의대생이었고 브로이어의 진료실에서 실습을 했다.
오빠는 브로이어의 비공식 발표회에 참석해 브로이어가 안나 O 라고 불리는 젊은 환자에 관한 치료 사례를 들었다.
절망에 빠진 여성 안나 O를 브로이어가 새로운 치료법인 <대화요법>을 통해 치료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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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O는 브로이어가 지어낸 베르타 파펜하임의 가명이었다.
브로이어는 베르타를 치료하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의사로서의 신뢰와 의무를 저버린 적은 없다.
그녀를 볼 때마다 격렬한 열정을 느꼈지만 간신히 억제하며 치료는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아내 마틸데는 브로이어가 베르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며 원망했고 브로이어는 아내를 장애물로 여기기 시작했다.
동료 간호사 에바와의 관계도 문제가 되었다.
에바 베르거는 10년 동안 그를 위해 일했던 간호사였다.
두 사람은 일반적인 의사와 간호사 사이 이상으로 가까워졌고 직업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마틸데는 베르타와의 관계 이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곤혹스러워했다.
6개월 전 정신착란에 빠진 베르타가 브로이어의 아이가 나오고 있다고 공언한 바로 그 치명적인 날,
마틸데는 더 이상 베르타 건을 맡지 말고 에바 베르거 또한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브로이어는 심한 양심의 가책과 모멸감, 자학에 가득 차 마틸데의 모든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바로 다음 날 그는 베르타 건을 동료에게 넘겼을 뿐만 아니라 무고한 에바 베르거 또한 해고해버렸다.
에바는 그야말로 희생양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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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이어는 베르타와 니체의 증상은 다르다며 부탁을 거절하려 했다.
베르타는 히스테리와 트라우마가 원인이었고 니체의 절망은 의학적 증상이 아닌 모호하고 부정확한 관념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루 살로메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조르며 어려운 조건까지 덧붙였다.
니체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치료받으려 하지 않을테니
두통,불면증 등 육체적 증상들만 치료하는 것처럼 진료하면서 니체 자신도 모르게 그의 절망을 치료해 달라는 것이었다.
의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조건이었지만 루 살로메의 치명적인 매력은 브로이어로 하여금 그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브로이어는 니체를 만나 치료를 시작하고 나름의 전략을 세운다.
육체적 증상을 치료하면서 그 증상들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식습관, 수면시간, 생활패턴 등에 대해 물어보면서
니체의 대답에 따라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 대화를 이끌어 내려 시도한 것이다.
브로이어의 세심한 질문에 니체는 정말로 자신의 우울과 배신감 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예상밖이었다.
니체는 우울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자랑스러워했고 배신감은 극복했다며 우겼다.
자살은 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옹호했다.
나쁜 시력 때문에 다른 사상가들의 책을 읽을 수 없어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동료 관계에서 고립되어 교수직을 사임하고 자유를 얻었다고,
신경과민은 내적인 경험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고,
육체적 질병은 자신에게 축복이었으며 실존의 고통과 대면하는 훈련장이라 말한다.
브로이어는 니체가 모든 것을 뒤집는 것을 보며 현기증을 느꼈다.
니체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으로 철학적 논쟁을 펼쳐 보지만 니체는 끝내 치료에 응하지 않고 돌아가려는 결심을 굳힌다.
니체와의 논쟁에서 그의 당당함과 힘차고 눈부신 사상에 매료된 브로이어는 어떻게든 니체를 붙잡고 싶었고
치료를 강요하는 대신 니체의 구미가 당길 만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니체의 절망이 아닌, 베르타와의 관계로 인한 브로이어 자신의 절망에 대해 털어놓으면서 니체의 철학으로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여기에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이것은 제 2의 전략이었다.
브로이어와 베르타와의 관계가 니체와 루 살로메와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니체가 처한 상황을 마치 브로이어 자신의 상황인 것처럼 연기하고 고백해서
니체가 브로이어를 상담해 주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상담해주게 되는걸 노렸다.
브로이어라는 배우를 통해 니체의 내면이 무대화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으로서의 니체가 자기 치유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처음에 브로이어는 이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런데 점차 상담이 진행되면서 브로이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니체를 위해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브로이어는 대화요법의 흡인력에 놀랐다.
마음의 부담을 털어내고 가장 치욕스러운 비밀을 타인과 공유하며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고 용서까지 해주는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어떤 상담의 경우는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다음 상담을 고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브로이어가 니체를 돕고자 한다는 사실을 망각할수록 니체도 점점 그 작업에 우호적으로 변했고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니체는 결코 위로와 안식은 주지 않았다. 실존적인 문제와 대면하라며 계속 압력을 가했고
브로이어가 믿고 있는 소박한 윤리의 일관성을 뒤집어 놓았다. 이것은 브로이어에게 고문과도 같았다.
그것은 니체가 자신을 구원하려고 했던 방법들이었다.
좀더 초연하고 우주적인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의 긴 실타래 혹은 기나긴 경주나 의식의 진화의 관점에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지나친 의미 부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브로이어가 처한 상황의 중심에서 감정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것은 정작 니체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어서,
기나긴 내면의 싸움 끝에 마침내 브로이어가 절망에서 회복되었다고 니체에게 말했을때
니체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가혹하게 브로이어를 고독의 극한으로 밀어넣어 놓고는 브로이어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려 했다고.
비겁하게 웅크리고 숨어서 브로이어 혼자 위험과 굴욕에 직면하게 내버려뒀다고.
니체의 솔직함에 감격한 브로이어 역시 자신이 그동안 니체를 속여 왔던 것과 루 살로메의 방문과 부탁 등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니체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외로움을 견디고 심지어는 찬양하며 고독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조롱해 왔지만 그것은 모두 자신의 허세였다고.
사실은 두려웠다고.
자신이 죽은 뒤에 언젠가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줄 날이 온다고 아무리 확신을 해도 홀로 죽는다는 생각과 나 자신의 말이 공허하게 메아리치는것이 두려웠다고.
지금 나는 울고 있지만 슬프지 않다고.
지금 이런 나의 심정을 당신이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느꼈던 것을 당신과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 덕분에 안도하고 있다고.
두 사람이 드높은 이상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우정을 늘 꿈꿔 왔는데 당신과 함께 자아를 극복하는 과정에 참여함으로 마침내 그런 우정에 도달했다고.
자신이 기인이 아니라는 것, 자신도 남들과 따스함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당신의 그 따스함 때문에 자신은 앞으로도 계속 홀로 살아갈 테지만 그 운명을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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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물론이고 루 살로메, 요제프 브로이어와 베르타 파펜하임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와요.
브로이어가 베르타를 대상으로 한 대화치료법도 실제 있었던 일이고
루 살로메가 니체를 브로이어에게 치료받게 하려는 시도는 실제로는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그 치료가 진행되었을 경우를 상상해서 쓴 소설이에요.
브로이어가 니체의 치료를 구상하며 프로이트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꿈과 무의식에 관한 내용도 적잖게 나옵니다.
니체와 브로이어 모두 사랑에 빠져 훼까닥 간 상태에서 시작해서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들을 사로잡았던 여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두 남자의 우정이 남는게 웃겼어요 ㅋ 브로이어는 루 살
로메의 부탁으로 치료를 시작하지만 이후 중간보고를 요청하는 그녀의 요구를 환자 개인정보 보호? 라는 명분으로 거절하죠 ㅋ
19세기의 진료실 풍경이나 이런저런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법, 당시의 의료윤리 등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무엇보다 니체와 브로이어의 심리전 서스펜스가 아주 압권입니다 ㅋㅋ 본격적인 상담이 진행되면서 각자 그날의 상담에 대해 일지를 적고 다음 전략을 수립하는데 이건 무슨 상담 대결
게임 같아요 ㅋ
한창 니체 읽을 때 이 소설도 재밌게 읽엇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