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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부터 최이의 이름은 인사발령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제 관직 승진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국왕 위에 군림하는 최고통치자가 국왕으로부터 관직을 임명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겠는가. 만일 관직생활을 계속했다면 최이의 정치적 위상은 이전의 무인집권자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최이는 국가의 공적인 관료질서 밖에 초월적으로 존재했다.
최이는 문하시중이라는 수상직에도 전혀 연연해하지 않았다. 이는 그래도 수상직은 차지하고 본다는 태도를 취했던 그의 아비와는 정치적 차원이 달랐다. 그는 수상인 문하시중 자리를 다른 문신관료들에게 미련 없이 양보했다." - 본문 p 232
2권은 최충헌의 집권 ~ 강화천도 이전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어. 읽으면서 확실히 최씨가 집권했던 60년은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이 차례대로 집권했던 지난 30년과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 극단적으로는 이들의 집권을 '무인집권'이라는 카테고리에 넣는 게 합당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중방으로 대표되는 고위 무신 세력과 대립하고 경인년 무신정변 이후 기를 못 펴던 문신 세력을 중용하는 등 확연히 다른 면모가 여럿 보이더라구.
이전 집권 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또 다른 부분은, 잠재적인 경쟁세력을 체계적으로 포섭해서 최씨의 충실한 수족으로 만들거나 미연에 싹을 잘라버리는 작업에 굉장히 능했다는 점이야.
당장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만 봐도 이제 주류가 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부정축재와 가렴주구를 일삼고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등 막장 행보를 보이다가 지지세력을 모조리 잃고 무너지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지.
그렇지만 최씨는 달랐어.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10년 후에야 수상직인 문하시중에 취임할 정도로 집권 초반에는 관료제도의 인사 흐름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행보를 보이며 몸을 사리지.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본인의 집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정적 숙청이나 물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축재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최소한 '선'은 지켰다는 얘기야. 물론 기반이 공고해지고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후에는 이런 모습도 사라지지. 최충헌이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최종적으로 거느린 사병이 3천명 이상이었다는데 뵈는 게 있었겠어?
그리고 수틀리면 바로 반정부 세력으로 변할 수 있는 무인 세력(제도권 내외 불문) 및 문신 세력, 종교 세력까지 차근차근 포섭해서 통치체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기술적인 능란함과 집요함이 놀라웠어. 최씨 정권의 부패와 외세 침입 시에도 정권 보위를 최우선시하는 이기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평가해줄 만한 점이 있다면 이 지점인 것 같아.
최충헌이 국왕의 등극과 폐위를 좌지우지하던 절대권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와는 달리 어째서 직접 즉위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2권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몽항쟁과 강화도 천도 이후의 최씨 정권을 다루는 3권까지 읽어봐야 어렴풋이 실마리가 보일 듯 해.
- dc official App
최씨 정권은 일본의 막부 정권과도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음.
엄밀히 말하면 좀 다르지. 막부는 전통적인 덴노-쿠게 정부의 외부에 별도의 막부 정권이 존재(이 점 때문에 막말에 '쇼군이 덴노가 행사할 권력을 찬탈했다'는 도막파의 선전이 잘 먹혔지)했고 최씨 정권은 기존 통치질서와 철저히 영합해서 고려를 거의 통째로 들어먹었지. - dc App
그렇다면 헤이케나 도요토미 정권과 비유를 하는 게 맞으려나?
기요모리가 태정대신까지 해먹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헤이케씨가 겐페이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 중에 하나가 전통적인 귀족 세력을 포섭하지 못한 점인 걸 감안하면 헤이케는 차라리 문신들하고 척을 지고 지들끼리 해먹으려고 했던 정중부나 이의민 정권하고 비슷한듯. 굳이 따지자면 말이지.
기요모리가 무사 계급 최초로 태정대신을 해먹었지 ㅇㅇ 그렇게 듣고 보니 확실히 그쪽이랑 비교하는 게 맞아 보이네.
도요토미도 쇼군은 못 됐지만 칸파쿠나 타이코 같은 전통적인 관직에 집착한 거 보면 어느 정도 전통적인 정치 질서에 편입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태정대신도, 쇼군직도 거부하고 아예 전통적인 관료 질서 바깥에 머무르고자 했던 오다가 정말 튀어 보이지. 여러 의미로 말야.
이성계 = 신진사대부라는 정치비전 및 조력자가 있음. 최씨 정권 = 국가 이권만 탐내는 조폭, 정치 비전? 조력자? 그런 거 없음 ㅋ
거칠게 정리했지만 대충 비슷하네. 다만 고려를 잠식해 들어가는 '기술' 자체는 굉장히 세련됐기 때문에 조폭에 비유하는 건 좀 적절하지 않을지도.
ㅇㅇ 인정 최우가 문신들 포섭해서 부려먹는 거 보면 세련된 거 맞는 듯. 확실히 이전 무신집권자들과는 차별점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