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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들어가자 처음 배우는 게 바로 기안문 작성하는 방법이었다. 글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꽤 난감한 일이었다.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기안문에 쓰이는 용어와 특이한 문체는 더 큰 문제였다. 욕 먹으면서 배웠고, 베끼면서 문장을 완성했다. 시간이 지나자 문장들은 기존의 기안문과 느낌이 비슷해졌다. 적응한 것이다. 1년 정도가 지나자 웬만한 기안문이나 메모는 수월하게 작성할수 있었다. 늘쓰던 단어와 문장들은 기계적으로 써졌다. 쓴다기 보다는 써졌다. 


이쯤되면 문제가 생긴다. 고민이 없어진다는게 문제다. 문장에서 고민이 사라지면 말 그대로 문자만 남게된다. 물론 기안문 같은 실용문이야 뜻하는 바가 전달되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고민이 없으면 명료하고 더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없어진다. <일하는 문장들>은 문자만 남은 문장을 깨우는 책이다. 기계적으로 썼던 문장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문장 속 단어의 쓰임이 맞는지 틀린지 하나씩 짚어준다. 또 ‘왜’ 그렇게 써야 되는지를 알려준다. 그 ‘왜’는 풍부한 예시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풍부한 예시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들’ 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라는 표현과 함께 ‘우리들’ 또한 용례로 인정한다. 글은 깔끔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이란 표현보다 ‘우리’가 더 낫다. 1978년 공동번역 성서 중 마태복음에서도 ‘너희’가 주로 쓰였다. ‘너희들’은 한번밖에 쓰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나온 성서는 이마저도 없어졌다. 이처럼 <일하는 문장들>은 무심코 썼던 토시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풍부한 예시는 아까 얘기한대로  왜를 잘 뒷받침한다.


예시의 영역은 실용문에 그치지 않는다. 다음은 그 유명한 김훈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은 이 문장을 쓰기 위해 밤낮 고민했다고 한다. 김훈은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보여주는 언어라며 첫 문장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일하는 문장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의견의 근거는 흥미롭다. 그리고 타당하다. 


화자가 첫 문장에서 듣는 사람의 관심을 어디로 유도할 때에도 조사로 ‘은, 는’이 아니라 ‘이·가’를 써야 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옛날 이야기에서 첫 문장의 조사로 ‘이·가’를 붙인다.


옛날 옛날에 꼬부랑 할머니가 살고 있었어요.

옛날 옛적에 백설공주가….

옛날 옛적이 효녀 심청이가….


반면 ‘은·는’은 주어의 행위를 서술하는 데 주안점을 둘 때 붙인다.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를 ‘내가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와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중략)

이와 같은 검토를 통해 우리는 김훈 작가의 선택은 적절했으나 설명은 정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은 피었지만 다른 무언가는 피지 못했거나 시들었거나 졌거나, 하여간 ‘피었다’와 비교가 되는 어떤 상태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새삼스러운 일을 하는건 꽤 귀찮은 일이다. 무심코 썼던 문장들을 다시 들여다 보고 하나하나 맞는지 틀린지 따지는 일은 피곤하다. 하지만 그 새삼스러운 일들로 인해 단어를 재발견하게 된다. 단어를 재발견하니 문장자체에 이유가 생긴다. 문장이 튼튼히 지는 것이다. 문장이 튼튼해지면 문단도, 글도 짜임새 있어진다. 모래로 만든 성은 파도가 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글쓰기 기초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