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시집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에서, 1980 -




-미국에서 의사로 근무하며, 자신의 아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어로 시를 써 온 시인,

 이 시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시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겐 전화기 너머로 대여섯 시간 동안 이 시를 읽어주며 친한 벗과 얘기하던 추억이 있다.

 오늘 같은 저녁, 온갖 계산의 자 다 내려놓고 이 시를 읽으면 행복이 따로 없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말라고 바람이, 착한 말을 걸어오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