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칠 수 없는 기억>
남자들이 사회 나가 하는 단골 얘기가 군대얘기라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는 군시절의 기억이 없는 것이다.
다만 기억나는 건 미치도록 힘들었고 미치도록 좆같았으며 미치도록 죽고싶었다는 것뿐이다. 그런 이유일까, 내 뇌는 어쩌면 좋은 추억이 되었을 수도 있을 군시절때의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지금도 눈을 감고 상상하면 마치 생동감있는 영화를 재생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한 가지 기억이 뇌리에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좆같은 군시절 유일하게 행복했던 기억이기 때문일까, 아니 오히려 더 좆같으면 좆같았지 절대적으로 불행하기만 했던.. 지금 남아 있는 유일한 기억 하나.
도대체 왜 이 기억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기억들은 싹다 지워버렸는지.. 오히려 군시절 겪은 모든 좆같음을 남겨두고, 유일한 이 기억만 지워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더 이로웠다고 생각이 들.
선택적 삭제를 잘못한 내 뇌가 원망스럽게만 느껴지는, 지금 남아 있는 해병대 시절의 유일한 것.
무더운 여름이렸으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맘때 쯤.
저녁시간이었으리랴, 밥 한 톨이라도 절대 남기지 말라는 해병님 명령을 항상 가슴에 품고 식사를 임했던.
아쎄이 티를 조금씩 벗어나 점점 해병 문화에 적응한 만큼 해병님이 신신당부했던 명령은 점차 희미해져 갔기 때문일까, 그날은 무슨 자신감이였는지 고추장멸치볶음의 양념을 그대로 츄라이에 남긴 채 식사를 끝마친 것이다.
츄라이에 묻은 양념조차 혀로 설거지하라는 해병님의 명령을 어겨버린 것이다.
조일구 해병님은 고추장멸치볶음 양념보다 더 씨뻘걷게 상기된 용안으로 목대에 핏줄을 곤두세우시고 포효하셨고, 오랜 해병 생활의 기백이 담긴 워커발로 내 조인트를 일격으로 강타하셨다.
끄헉끄헉 간신히 모가지로 세어나올뻔한 신음을 해병정신으로 억누른채 당장이라도 끊어져버릴 것 같은 무릎을 일으켜세워 조일구 해병님의 포효에 화답하듯 목청껏 죄송하다고 울부짖었다.
순간 식당 모든 이들의 시선은 우리에게로 쏠렸고 이따 보자는 말과 함께 조일구 해병님은 화를 억누르시고 뚜벅뚜벅 퇴식대로 향하셨다.
죽고싶었다.
아파서? 수치스러워서? 아니
하늘과도 같은, 심지어 부모형제보다 극진히 모셔야 할 해병님의 목숨과도 같은 명령을 잊었다는 내 자신에게 실망스러워 죽고싶었다.
그날 밤, 모두가 취침에 든 시각 조일구 해병님께선 나에게 전신 탈의 후 워커와 팔각모만 착용한 채로 연병장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그 즉시 워커와 팔각모만 쓴 채로 연병장으로 달려갔고 그곳엔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은, 나체의 조일구 해병님이 계신 것이다.
"오늘 너에게 실망했다. 내 명령을 거역한 것? 아니 그것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넌 오늘 국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의 우리 해병대를 향한 굳건한 믿음을 져버린 것이다. 너에겐 그저 나라에서 공짜로 나오는 밥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너가 그대로 버린 고추장멸치볶음의 양념은 우리 대한민국을 일으켜세우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땀방울이었다."
뒤통수를 후려맞은 기분이었다. 단순한 고추장양념에 숨어있는 참뜻을 알아 차린 그 순간 말이다.
"대한민국은 맨 몸뚱아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 어떠한가. 모두가 따뜻하게 옷을 입고 모두가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을 청한다. 그것은 맨몸으로 맞써 싸웠던 선조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난 너의 선조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벌거벗은 채 너의 앞에 서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워커화를 신고 있고 팔각모를 쓰고 있다. 그것은 너의 선조인 내가 후대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일념 하나로 맨몸으로 일궈낸 성과인 것이다."
전율, 전율이 느껴졌다.
조일구 해병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내 심장 두근거렸고 곧이어 해병님의 우레와도 같은 포효가 고막을 강타했다
"지금부터 ! 너와 난! 연병장을 지쳐 쓰러질!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드아! 알겠나!"
"악!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조일구 해병님은 달빛을 스포트라이트 삼아 한밤의 주인공처럼 미친듯이 달렸다.
14바퀴쯤 돌았을까, 연병장엔 우리가 돌았던 자취가 세겨져 있는 것이다.
단순히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돌아 생긴 발자국이겠거니 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조일구 해병님의 발바닥에서 터져나온 핏자국이었던 것이다.
워커화도 없이 맨발로 자갈이 무성한 가시밭을 한마디의 비명도 없이 묵묵히 뛰고 계셨던 것이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이 야밤의 체력단련에 숨겨진 참 뜻을 가슴 사무치게 알아차려버린 것이다.
난 즉시 조일구 해병님을 뒤에서 껴안았고 그 자리에 엎어져 제발 그만 달려주십시오.. 제발 그만 달려주십시오... 라고.. 연신 되뇌었다.
극한의 고통에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조일구 해병님은 엎어진 채로 마치 허공을 달리듯 두 다리를 휘적휘적거리셨고 참을 수 없이 터져버린 내 눈물은 볼을 타고 조일구 해병님의 목덜미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깨달았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전율이었을까? 뭔지 모를 기분에 휩싸여 나는 그대로
(검열)
우린 그렇게 말없이 연병장에 대짜로 뻗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안정을 되찾고..
"아까 워커발로 너 조인트 깠던 거 미안하다.."
조일구 해병님이 먼저 침묵을 깨버리셨다.
"괜찮습니다 해병님.... 죄송했습니다"
땀범벅이 된 우리 몸엔 모래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까끌까끌한 모래알로 코팅된 몸뚱어리가 불쾌하다기 보단 오히려 좋았다.
(검열)
"...저에게 워커화를 신고 오라 하셨던 건 이해가 되는데.. 팔각모는 무슨 의미였습니까?"
내 질문에 조일구 해병님은 왼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시고는 대답하셨다.
"몸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열은 머리를 통해서 빠져나간다고 해... 결론은, 오늘 나와 함께 했던 뜨거운 열기. 영원히 팔각모 안에 간직하기를..."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아니, 밤공기는 어느세 우리 몸을 빠르게 냉각시켰다.
"이젠 춥다 야.. 빨리 샤워하고 자자"
(검열)
아직도 내 방 책상 한가운데에 내 팔각모가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팔각모가 아닌 것이다.
내 뇌에서 지우고.. 또 지웠는데도 용케 남아 있는 유일한 추억.
좆같고 좆같음에도.. 잊고 싶고 또 잊고 싶어도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그것은 조일구 해병님 그 자체인 것이다 아니,
그것은 사랑인 것이다.
ㅡㅡㅡㅡㅡㅡ
이런 느낌의 소설 있음?
독갤 좀 보니까 미시마 유키오라는 사람이 이런거 쓸 것 같은데 맞음?
다니자키가 더 맞을 듯
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