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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채만식의 미완성 유고를 제외하고, 그의 최후의 작품이다. 1949년 쓰여진 이 작품 속에서 채만식은 해방정국의 혼란상과 해방 이후 민중들의 혼란상과 생활고 등을 잘 녹여내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8.15 광복을 맞아 만주에서 살던 주인공 영호 일가족이 고국으로 찾아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호네 아버지인 오윤서는 일제시대 때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떠나 삶의 터전을 새로이 개척한다.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살아오던 그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해방'이 닥쳐온다. 처음에는 내 나라를 찾았다는 것이 좋아 다들 만세를 부르고 감격에 겨워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해방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영호네는 고국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만주에서 어머니를 잃고 만다. 어머니가 잠시 집에 놔 둔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만주인 강도를 만나 윤간을 당한 뒤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작중 표현을 빌자면 '비싼 해방값'을 치르고 만 것이다. 해방된 조국의 서울. 그러나 해방된 조국은 오히려 만주보다도 살기 힘든 곳이었다. 이들 전재민들에게는 해방은 그야말로 남의 일과도 같고, 자신들의 삶은 오히려 팍팍해져가기만 할 뿐이다.

 

서울에 있어봤자 더 이상 먹고 살기도 버거운 이들 일가족은, 그저 농사라도 짓고 살 수 있겠지 하는 희망에 평야가 넓다는 전라도 아무 고을에나 내려 정착하기 위해 호남선 열차를 탄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열차 안에서 정보를 얻어서라도 아무 곳에나 내리겠다는 무계획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대전에서 열차를 갈아 타던 복잡한 와중에, 영호와 영자 남매는 그만 아버지와 헤어져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영호와 영자 남매는 그 열차 안에서 도움을 주고, 적절한 조언을 해 준 신사의 권유에 의해 이리역에 내린다. 아버지가 이들 남매를 잃어버린 걸 안다면 대전에서부터 차례로 목포까지 한 정거장 한 정거장 거슬러 올라오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타당한 조언이었다. 허나 아버지는 몇 개월이 지나도록 이들 남매를 찾으러 오지 않는다. 


영호는 아마 아버지가 목숨을 잃었으리라 생각하고 절망에 빠지지만, 여관 일을 돕는 심부름꾼 자리를 얻어 틈틈이 아버지의 소식을 들으려 애를 쓴다. 영자와도 애 보는 일을 맡아 헤어져, 이미 만주에서 빨치산을 따라 나섰던 이복형 영만을 포함하여 가족이 그야말로 뿔뿔이 흩어진 신세가 되고 만다. 그 여관에는 온갖 협잡꾼과 모리배, 해방정국을 이용하여 한몫 잡아 보려는 정상배들이 바글바글거린다. 영호는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소설은 끝난다.

 

채만식은 해방 뒤에 해방정국에 대해 다룬 여러 소설을 썼다. 그 중에는 '민족의 죄인'과 같이 과거 자신의 친일행적을 반성하는 작품도 들어 있었다. 채만식은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에 협력하는 강연회에 나가기도 하고, 친일 작품을 쓰기도 하는 등 친일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이에 대해 확실하게 반성을 한 작가는 채만식 이외에 찾아보기 힘들다(물론 더 찾으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런 채만식은 해방 이후 민중들의 어려운 삶을 포착하여 그의 말년에 여러 작품을 남기기도 했고, 이 작품은 그런 소설들 중 하나이다. 단순한 소년의 역정과 성장 스토리이지만, 이 소설은 해방 직후라는 역사적인 장면을 사실적으로 포착하여 묘사하면서도 새로운 조국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아마도 영호는 그야말로 새로운 조국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