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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갤에서 우연히 보고 제목에 끌려서 선택한 책이다.


저자는 마커스 드 사토이라는 수학자다. 옥스퍼드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초대를 역임한 "대중의 과학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Simonyi Professor for the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의 후임직을 맡고 있다.(주1) 그는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서, 이 책에서는 수학보다는 주로 과학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도 저자의 또 다른 전문분야다.


이 책은 서문인 'The Known Unknowns'라는 챕터로 시작한다.(럼스펠드의 명언을 기억하실지?) 에피그래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따 왔다. "모든 인간은 알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다."(주2) 맞다.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학"자로 끝나는 단어들만 나열해 봐도 우리의 얼마나 온갖 것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지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동인에 대해서 흥미로운 개인사를 이야기하는데, 번역하여 인용한다.


"알려진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어린 시절의 오만에 대해서 고백해야만 하겠다. 만약 어떤 사람의 두뇌로 새로운 지식에 달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면, 그들의 머릿 속에서 작동했던 증명은 나의 머리속에서 역시 작동해야만 할 것이다.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수학, 그리고 우주의 신비를 파헤칠 수 있을 것이라고, 혹은 최소한 인간이 아는 만큼은 알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그 믿음엔 금이 가기 시작했고, 나는 어떤 것들은 영원히 나의 이해를 벗어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나의 두뇌는 현대의 과학에 알려진 것들을 이해하는 것들을 따라 잡을 때에도 자주 벅찬 한계를 느낀다. 척척박사가 될 수 있는 시간은 바닥나 가고 있다."[1]


다들 그렇다. 우리는 원대한 꿈(혹은 환상)을 품고 어떤 탐구 혹은 학습에 나섰다가, 어떤 시점에서 (예외 없이)벽을 느끼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내 머리로는...', 혹은, '우리 인간의 두뇌로는...' 하지만 그 척척박사의 환상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자신이 인간의 한계의 예외없는 대상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게 만든다. 어쩌면 그 한계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계는 엄연히 있다. 그것을 더 진지하게 마주해 봐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앎과 인간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7가지의 주제를 선정했다. 그는 다음과 같다.


카오스: 결정론 하에서 미래를 완전히 예측할 수 있을까?

미시적 한계: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입자를 알아낼 수 있을까?

양자역학적 확률: 정말로 우리의 지식은 양자역학적 확률에 의해 제한될까?

거시적 한계: 우주가 무한한지, 유한한지를 알 수 있을까? 다중우주의 존재를 알 수 있을까?

시간: 시간을 이해할 수 있는가? 빅뱅 이전(그것이 정의될 수 있으며 존재한다면)은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있을까?

의식: 의식은 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수학적 진리: 참을 수학적 증명을 통해서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영원히 알 수 없는 진리가 있을까? 수학적 증명은 정말로 엄밀하며, 인간의 오류에서 자유로울까?


저자는 자신의 질문들을 정리한 뒤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주로 같은 학교–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들인데, 다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다.)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질문을 던진다. 인터뷰이들은 설명을 하면서 그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다. 저자는 그러한 견해를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이제 그 다음은 독자의 견해를 덧붙일 차례일 것이다.)


혹시 주제가 너무 어려워 보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 이 주제들은 기술적이고 전문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논의에 필요한 핵심적인 내용들이 예시와 함계 쉽게 설명된 뒤에 그 주제들을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얼마나 알 수 있을까?라는 인식론적 동기와 물음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복잡한 내용을 너무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그래서 그걸 우리가 정확히 어디까지 알 수 있는데?'라는 물음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도발적인 서문에 고무되어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지만, 읽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친숙한 내용들이었고, 저자가 그것을 다루는 방식 또한 그닥 체계적이지도, 딱히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아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7가지 주제들 중에서 6번까지 읽었을 때에는 내용 반박을 정리해 가면서 비판적인 감상문을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자 본인의 전문분야(수학)인 마지막 7장에서 그런 생각이 뒤집어 졌다. 6장까지는 전부 나의 지식의 범위 내, 나의 사고의 범위 내였다면, 7장에서는 내가 몰랐던 지식,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전개되는 사고를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막판 스퍼트를 이어가면서 훌륭하게 마무리된다. 용두사동용미(龍頭蛇胴龍尾)라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었던 또 다른 수확은, 나의 후학다식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넓고 얕게 아는 것은 싫다. 좁고 깊게 아는 것도 싫다. 넓고 깊게 알고 싶다. 이런 어리석은 집착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문에서, 그리고 본문에서 여러 번 말하듯이, 저자와 같은 성공적인 학자도 역시 그렇다는데, 내가 뭐 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불합리한 집착을 어느 정도는 놓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 외에도 중간중간 건져갈 만한 내용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 역시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감상문을 마무리하기에 마침 좋은 문구가 있기에, 인용하며 마친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논리철학논고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라는 유명한 문구로 결론짓는다. 나는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의 삶과 같은 패배주의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대단원의 문구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부분에서 우리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1]

(주1) 도킨스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경계를 조금 누그려 뜨려도 좋다. 그는 도킨스만큼 적극적, 공격적으로 종교를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불가피하게 말해야만 할 때에는 비종교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하지만.

(주2)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으로 많은 것을 설명했던 철학자다.(물체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그에게는 물체의 "본성"이다.) 그가 말하는 "본성"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본성보다 더 큰 무게가 놓여 있을 것이다.

[1] M. Sautoy, What we cannot know (HarperCollins, 2016,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