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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꿈속에서 아들이 불타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 내가 불타고 있는 게 안 보여요?”라며 고통스럽게 호소한다. 아버지가 꿈에서 깨었을 때, 촛불이 넘어져 아들의 관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한다.

다음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등장하는 유명한 사례이다. 라캉은 이 꿈에 관한 흥미로운 독법을 제시한다. 아버지의 수면이 연기에 의해 방해받았을 때, 아버지는 꿈속에서 불을 등장시켜 위화감을 제거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꿈속에 등장한 것은 현실보다 더 고통스러운 트라우마, 즉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는 진실을 거부하기 위해 현실로 깨어난다. 여기서 꿈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도피처가 되는 교차가 발생한다.

지젝은 다음의 분석을 코로나에 대입한다. 코로나는 전세계 사람이 공통적으로 겪는 악몽이다. 꿈속에서 코로나는 우리에게 호소한다. “팬데믹이 빙산의 일각인 게 보이지 않나요? 팬데믹이 전 지구적 비상사태를 예비하는 총연습에 불과하다는 게 보이지 않나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타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요?”

‘코로나’라는 악몽은 우리에게 세계를 둘러싼 각종 문제들(바이러스, 기후변화, 경제위기, 국제분쟁 등)을 제기했다. 우리는 그 심각한 문제들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 현실로 깨어난다. 바로 일상으로의 복귀(코로나바이러스가 진짜 위협임을 부정하는 일), 음모론, 인종차별주의(전염병 발생을 인종적 타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 등의 거짓된 현실이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1부 팬데믹 시대의 증상들, 2부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 결론 알지 않으려는 의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서 대강 알 수 있듯이, 코로나 자체에 집중했다기 보다는 코로나의 사회/정치적 여파에 더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1부 팬데믹 시대의 증상들에서는 농업, 기후변화, 인종차별 등 코로나와 엮인 수많은 사회적 사안들을 논의한다. 그중에서 5장 ‘사회적 거리두기의 섹스’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성행위 양상의 변화를 다뤄 흥미로웠다. <바이스 매거진>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봉쇄로 섹스 인형 판매가 날개 돋치다’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흥미로운 것은 대다수의 섹스 인형이 기혼커플에게 팔렸다는 점이었다. 두에인 러셀은 기혼커플이 격리하는 동안 섹스를 거부할 온갖 구실이 없어지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부부간 성욕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섹스 인형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를 통해 팬데믹의 진정한 문제는 사회적 고립이 아닌 타인과의 과도한 의존에 있다고 주장한다.


2부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에서는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기술 혁신, 백신 접종, 음모론자들에 엮인 정치적 함의를 파헤친다. 이 챕터에서는 아감벤을 향한 비판이 눈에 띈다. 아감벤은 레비나스의 ‘얼굴의 현현’ 개념을 마스크 반대 운동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마스크 쓰기를 강제하는 행위는 진정한 의사소통을 방해해 시민의 정치 참여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프로이트를 빌려 아감벤의 주장을 반박한다. 프로이트는 상담을 진행할 때 내담자를 소파에 눕혔다. 그가 내담자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은 것은 얼굴이 가장 근본적인 허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젝은 아감벤의 주장이 레비나스의 단편적인 개념에 치중했을 뿐, 진정한 타자윤리는 맨 얼굴이 아닌 마스크를 쓴 얼굴에 있음을 지적했다.

결론 <알지 않으려는 의지>에서는 코로나를 둘러싼 반지성주의를 언급한다. 지식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방식을 제한할 경우 오히려 바이러스에 관해 너무 많이 알지 않으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코로나의 악몽에서 벗어나 안락한 일상으로 돌아오려 한다. 그 움직임이 방역수칙 위반, 음모론, 인종차별 등으로 구체화된다. 지젝은 이와 같은 행위들을 비판하며, 코로나라는 ‘진실된 악몽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지젝이 ‘팬데믹의 삶을 노래’하는 이유이다.




각 10p 남짓의 짧은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딱히 어려운 철학 개념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갠적으로 아감벤 신작 <얼굴 없는 인간>도 같이 읽고, 둘의 입장을 비교해봤으면 재밌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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