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동이 번역한 민음사판 헤밍웨이 단편집을 보면 작품 자체가 작가 인생이 반영된 작품들이 많아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잊을만하면 튀어나 온다. 전자는 회화, 후자는 투우용어가 많은데 어쨌든

김욱동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그대로 음차하고 해석은 주석으로 달았음


원문을 최대한 충실히 반영하는 번역이며 독자가 주인공이 지금 외국어로 대화중임을 명확히 알 수 있게해줌


원문에 외국어가 등장할 경우 번역자는 3가지 번역 전략중에 하나를 택해야 함


외국어 중심 전략, 목표어 중심 전략, 절충적 전략.


외국어 중심 전략은 원문의 외국어를 그대로 표기하거나 우리말로 음차해서 본문의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

독자가 등장인물이 외국어로 대화중임을 명확히 알 수 있음


목표어 중심 전략은 외국어의 흔적을 날려버리고 목표어(우리의 경우는 한글)로 제공하는 전략

앞쪽에 우리는 XX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식의 언급이 없다면 독자는 인물들이 다른 언어로 대화중임을 모를수 있음


절충적 전략은 두개 짬뽕. 외국어를 표기하고 괄호나 주석으로 번역을 제공하거나

반대로 번역을 달고 괄호나 주석으로 외국어 표기를 지원하는 전략


헤밍웨이 단편집의 김욱동은 이쪽이었고 보통 목표어 아니면 절충적 전략을 택함

절충적 전략에서 외국어 표기를 얼마나 드러내느냐는 번역자 재량임. 포인트다 싶은 몇개만 제시할 수도 있고

우직하게 싹다 표기해줄 수도 있음



예를들어 <제인 에어>를 보자.


영국인이 프랑스에 가진 선입견을 모아 놓은 아델은 엄마가 프랑스인이고 영어가 서툴기 때문에 프랑스어 많이 쓰고

덕분에 가정교사가 된 제인과 후견인 로체스터도 프랑스어 쓰게됨


독갤에서 많이들 추천하는 을유 역본 제인 에어 14장 끝부분


장미빛 드레스와 구두를 선물받은 아델이 기쁘게 달려와 재롱부리는 장면을 보면


"옷이 예뻐요?" 그녀가 앞으로 뛰어나오며 말했다. 구두는요? 그리고 스타킹은요?

가만, 춤을 춰 볼게요."

- 조애리 옮김(2013), 제인 에어, 을유문화사


원문에서 아델의 대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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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ce ma robe va bien(옷이 예뻐요)?"

“et mes souliers? et mes bas? Tenex, je crois que je vais danser."

(구두는요? 그리고 스타킹은요? 가만, 춤을 춰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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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프랑스어다. 어린 아델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배경부터가 프랑스어가 더 익숙할 수 밖에 없음


아델의 프랑스어는 캐릭터에 사실성을 더해주는 장치이자

로체스터에겐 파리에서의 방탕한 생활을 상기시키는 역할이며

작중에서 무절제, 방종, 겉치레로 나타나는 프랑스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환기시킴


을유의 조애리 역은 이 프랑스어를 싹 날려버렸고 주석도 일절 달지 않았다. 이 부분엔 별도로 프랑스어를 한다는 언급도 없어서

독자는 아델이 영어를 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음


다른 역본에서 이 대목을 살펴보면


대교베텔스만의 나선숙 역은 프랑스어 원문을 표기한 뒤 괄호치고 해석


펭귄의 류경희 역은 프랑스어를 음차한 다음 괄호치고 해석


시공사의 햇살과나무꾼이 역은 한글 번역만 적었으나 페이지 하단에 주를 달아 프랑스어 원문을 제공해서

독자들이 프랑스어 임을 명확히 알 수 있게 조치했음



로체스터는 자신의 망한 파리시절 연애담을 이야기할때 프랑스어 단어가 튀어나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 해주는 효과를 노린 서술이고

부도덕적인 이야기를 할때도 일부러 프랑스어를 사용해 거리를 두는 연출이 나와 과거를 숨기고 신사다움을 유지하고픈

로체스터의 심리를 대변함


설정 자체가 영어 잘 못하고 문장 전체가 프랑스어였던 아델과 달리


로체스터의 프랑스어는 프랑스 단어나 의성가 영어 대화중에 드문드문 끼어들어가 있는 형태라서 번역 전략이 달라짐


펭귄은 일부 프랑스어 단어만 음차해서 괄호치고 뜻을 적고

시공사 역시 일부 프랑스어 단어만 음차해서 주석을 달았음


펭귄과 시공사 모두 프랑스어 단어를 모두 음차하진 않았고 대교는 을유역과 동일하게 밀어버림



제인이 프랑스어 하는 대목을 보면


아델이 오랜만에 집어 돌아온 로테스터에게 선물을 달라면서 제인 선물은 없냐고 묻는 대목이 있음

을유 조애리 역 제인 에어에선 다음과 같음


-

그가 컵을 받자. 그 순간 아델이 내 말을 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작은 상자 속에 에어 선생님에게 줄 선물은 없나요?"

(원문은 ‘N’est-ce pas, Monsieur, qu’il y a un cadeau pour Mademoiselle Eyre dans votre petit coffre?

하지만 을유 조애리 역으로는 프랑스어란걸 알 수 없다.)


"누가 '선물' 이야기를 한거요?"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선물을 기대했소. 에어 양? 선물을 좋아하오?" 그러고는 검은눈으로 화난 사람처럼 쏘아보았다.


(중략)


"오, 지나치게 겸손할 필요는 없소! 아델을 살펴봤는데 정성껏 아주 잘 가르친 걸 알겠소. 그 아이는

똑똑하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데 단기간에 아주 크게 나아졌소."


"주인님, 제게 '선물'을 주신 셈이네요. 감사합니다. 그 말씀은 선생들이 가장 원하는 보상인걸요.

학생이 나아졌다는 칭찬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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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스터는 흔히 여자들에게 하는 비싸고 화려한 물질적인 것을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까칠하게 나오는데 제인은 교사로서 능력과 성실함에 대한 칭찬이야말로 선물이라고 받아치는 장면이다.


아델이야 대사가 전부 프랑스어지만


영어로 잘만 대화하던 제인과 로체스터가 중간에 '' 표시한 부분의 선물이라는 단어만 cadeau. 영단어 presents가 아니라

프랑스어를 씀


비싸고 화려한 물질적인 요소를 뜻하는 로체스터의 cadeau가

제인에게선 유능함과 성실함에 대한 칭찬을 뜻하게 됨


로체스터 꼬인 심사와 제인이 어떤 사람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데다

똑같은 cadeau가 아델, 로체스터, 제인 각자 에게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짐을 보여줘서 인상깊은 대목


영어와 다른 프랑스어 어감으로 선물의 의미를 한결 강조하는 효과가 있음


이지만 을유 역으로 읽는 독자는 작가가 그런 장치를 뒀는지 안뒀는지 알 방법이 없음.



다른 역본들도 선택지가 각기 다름


대교 역본은 을유 역과 마찬가지로 걍 선물


펭귄 역본은 아델과 제인의 cadeau는 카도라고 음차했는데 카도가 뭔지 말을 안해줘서 추정해야됨

그리고 로체스터의 cadeau는 여기서도 그냥 선물


시공사 역본은 또 기묘한게


아델의 cadeau는 선물이라고 적으면서도 앞에 무슈를 음차하고 주석으로 프랑스어 원문을 붙여서 프랑스어 임을 명확히 알려줌

그리고 로체스터와 제인의 cadeau는 카도라고 음차하고 프랑스어로 선물이라는 뜻이다라고 주석달아줌

역자는 로체스터와 제인의 cadeau가 품은 서로 다른 의미에 주목했고 아델의 cadeau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



대교, 시공사,펭귄 역자들은 캐릭터 별로 번역 전략을 다르게 짰음


아델의 프랑스어는 외국어 중심 전략이든 절충적 전략이든 프랑스어를 드러내려 하지만

로체스터와 제인, 특히 로체스터의 불어는 전반적으로 목표어 중심 전략, 일부에 한해 절충적 전략을 택함



물론 자비심 없이 프랑스어를 지워버린 역본이 있음. 메이저 출판사 기준으로 2개 있는데


하나가 을유 조애리 역이고

다른 하나는 2003년 을유번역자 조애리 선생 본인이 그때까지 나온 제인 에어 역본중에서

가장 원문 형식을 잘 살려내고 있다고 평가한 민음사 유종호 역본


충격과 공포의 민음사 파리대왕 역자 맞음.


꼬맹이들이 할아버지로 보이는 파리대왕과 마찬가지로

제인 에어에서도 젊은 아가씨를 40 넘긴 아줌마처럼 보이게 만드는 희대의 틀딱번역을 했음

프랑스어도 당연히 깔끔히 지워버렸지


허나 당시 번역본 점검에 나섰던 조애리 선생은 제일 나은 역본으로 평함


2000년대 초반 한국 번역시장 진짜 노답이었던게 분명하다.


그리고 작품속에서 작가가 세심히 신경쓴 안배였던 프랑스어를 전부 날린 조애리 역이 과연 독갤 1픽 번역본이 될 만한지 의문임

가만보면 독갤픽 그거 걍 감으로 다 찍더만 



이상의 글은 이하 논문을 참고했음을 밝힘


원은하, 진실로, 2020, 문학 작품의 다언어(multilingualism) 번역 전략: 『제인 에어』의 프랑스어를 중심으로, 번역학연구 vol.20

조애리, 장정희, 2003,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번역본 점검, 안과밖:영미문학연구 vol.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