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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어느덧 2년을 꼬박 채워 가는 팬데믹 사태의 한복판에서 가장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이어가는 철학자 중 한 명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지젝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라깡, 헤겔, 마르크스를 철학적 사유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과 한 토론에서 피터슨의 얕은 깊이를 들추어냈다는 것뿐이다.
내가 처음 읽은 지젝의 저작은 전작 『팬데믹 패닉』이었다. ‘패닉’이라는 제목처럼 지금보다 훨씬 급박했던 사태 초기에 급하게 씌어진 책이어서 그런지 조금 난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철학자들이 원래 그러하지만 지젝은 특히 알아먹기 어렵게 글을 쓰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팬데믹 패닉』과 지금 이야기하려 하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이론적 정합성이 아닌 대중을 독자로 상정한 에세이들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글 자체가 읽기 버겁지는 않다. 그러므로 내가 팬데믹과 관련한 지젝의 근작을 연달아 읽으며 뻑뻑함을 느꼈다면 그건 지젝의 탓이라기보다는 지젝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내 탓이라고 봐야 하겠다. (굳이 지젝의 탓을 하자면 가독성과 적정한 분량에 신경을 쓴 나머지 오히려 그가 취하고 있는 스탠스의 근거가 되는 사상적/이론적 접근이 얄팍해졌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으나, 그건 이 책의 성격을 고려할 때 중요한 지적은 아니다. 지금은 신중한 미네르바의 부엉이보다는 목소리를 내는 철학자가 필요한 시점이니까.)
몇 달의 텀을 두고 나온 두 권의 책에서 지젝은 팬데믹 사태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줄곧 일관된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 이때 우리는 어떤 삶의 강령을 채택해야 하는가? 마스크를 쓸 것인가, 벗을 것인가? 지젝은 의료가 자유를 박탈한다는 아감벤의 주장을 멋들어지게 되받아친다. 지젝의 말마따나 아감벤과 같은 좌파들이 부르짖는 자유는, 결국 지금 이 시기에는 트럼프와 같은 극단적인 우파의 자유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 지금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사람들은 아감벤이 바라마지않는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만 하는 허울뿐인 자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의 연대는 대면이 아닌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고립이 곧 연대인 상황에 우리는 놓여 있다.
그러나 아감벤과 지젝을 위시로 하는 팬데믹 시국에서의 자유와 관련한 논쟁은 단순한 의학적 판단의 적실성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을 묻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몇몇 전문가들의 진단은 진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위 명제여야 한다. 팬데믹은 우리가 살던 세계가 이미 건강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계기일 뿐이다. 지젝은 이 점을 계속해서 일깨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린다. 우리가 배치한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는 그러하다. 백인보다 흑인이, 부자보다 빈자가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 철학자는 정치에 대하여 침묵할 수 없다. 지젝은 오늘날 전 세계의 정치 지형을 주도하고 있는 양극단, PC주의자와 트럼프류의 외설주의자들을 고루 공격한다. “좌파의 도덕적 분노는 우파의 위반에 대한 욕구를 먹고살며, 우파는 좌파의 도덕적 분노를 먹고산다.”
이 책은 지젝이 그리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나는 지젝이 바라는 사회상이 어떤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겠다. 지젝이 말하는 공산주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강력한 사회 시스템의 구축을 역설하는 지젝의 목소리는 때때로 그가 비판하는 PC주의나 트럼프주의만큼이나 극단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팬데믹 이후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는 “알지 않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기꺼이 지금의 위기를 바로 보려는 의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오 팬데믹 패닉도 읽었구나. 잃시연이랑 이어지는 내용 있음??
잃시연 읽었으면 굳이 안 읽어도 될 듯. 대체로 비슷한 내용인데 잃시연이 좀더 최근에 씌어졌다는 정도...
ㅇㅎ
독후감 올려야하는데 빨리 읽어야겠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