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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심문관 전설은 15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됩니다. 예수가 그 곳에서 나타났는데 병자를 치유하는 등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대심문관에게 발각되고 체포되고 맙니다.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자신의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을 설파하며 이것이 반역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악마에게 3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이 3가지 시험만큼 인간의 욕구와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대심문관은 말하며 예수가 인간을 너무나도 고평가하고 사랑했기에 이 3가지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바로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요. 그러나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너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선사했으나 난 그들에게 자유를 대가로 빵을 주겠다며 그리고 케사르의 검을 쥐어 그들 위에 군림하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많은 이들을 위해서요 마치 공리주의의 최대 다수의 행복이 떠오릅니다. 대신에 행복을 대가로 그들에게 자유를 받겠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를 화형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에게 침묵을 일관하다가 키스를 하였고 대심문관이 예수를 풀어주며 이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이 전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반 가톨릭적 사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 당시 권위적인 모습을 케사르의 검을 쥐었다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평론가들은 이 이야기가 정부, 전체주의, 사회주의, 맑시즘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구요. 한 저자는 대심문관이 말하는 세상이 가톨릭시즘보다는 무신론적 유물론적 사회주의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단지 미래의 사회주의의 악한 현실을 드러내고 예언했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소련 해체후 그 당시 소련 고위 간부들이 정교회 예배를 몰래 드리고 정교회 행사도 종종한 것을 알고나서 예수가 대심문관에게 키스하고 대심문관이 예수를 풀어주는 장면을 보니 저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결국.. 인간의 선한 도덕성은 유클릿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닙니다. 실제로 도는 전설도 아니구요 그냥 이반이라는 대학생이 만든 소설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 이반을 보고 니체가 떠올랐습니다. 이 전설을 창작한 이반은 공리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유로 그리스도적인 사랑을 부정하며 이렇게 말하죠 멀리있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아주 가까이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결국 도덕을 부정하고 자신이 곧 신, 인신이 되고자하며 “모든 것은 허용된다.”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마치 니체의 초인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결국 이반은 침대 위의 악마를 만나는 등 망상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의 비극은 조시마조프 장로가 평하듯, ‘그와 같은 고통에 괴로워 할 줄 아는 고귀한’ 마음이 그와 같은 결론과 타협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선한 도덕성과 삶의 의미에 대한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책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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