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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이 책 내에서 몇 번을 반복해서 밝히기를, 이 책의 내용들은 아직까지는 뇌 안에서의 모든 활동을 완벽하게 분석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기에 그저 추측과 근거를 통해 우리를 설득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허나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저자들의 주장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리라 믿는다. 책의 제목인 <사고의 본질>이 암시하듯, 이 책은 우리의 사고가 본질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는지를 이야기한다. 바로 유추다. 비슷한 것들끼리의 유사성을 찾고,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고, 그렇게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온갖 사고들을 유추로 묶을 수 있고, 이 유추로 묶이는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사고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아기 때의 아주 미약하고도 간단한 유추로부터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가며, 우리가 어떻게 감각과 언어를 통해 관념들을 배워나가고, 이 관념들이 또 어떤 식으로 서로 묶여나가며, 일반적으로 "안다"고 일컫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아기가 어떻게 "어머니"라는 말이 자신의 어머니만을 가리키는 말에서 일반적으로 자식을 갖고 있는 여성을 가리키도록 뜻을 확장해나가고, 추상적으로 무언가를 만든 사람이라는 의미로 "어머니"를 사용하는 (예를 들어서, 음악의 어머니 헨델)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는지. 이 과정에서 아기는 자신의 어머니와 다른 여성들로부터 유추를 하고, 어머니 같지만 어머니는 아닌 아버지를 보며 또한 차이점을 깨닫고, 어머니라는 개념이 또 언어 속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보며 둘 사이의 공통점을 유추한다.



꼭 아기 때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문 손잡이를 보지만, 대체로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우리가 수많은 문 손잡이들을 보면서 머릿속에 이미 유추를 통해 어느 정도 "문 손잡이"라는 범주가 만들어졌고, 그 범주와 지금 눈 앞에 있는 문 손잡이 사이의 유사성을 보며 둘이 비슷하겠구나, 하고 무의식적인 유추를 하는 탓이다. 물론 이런 유추/범주화는 꼭 올바른 정답만을 내오진 않아, 때때로 별 생각 없이 소금통이라고 생각한 설탕통을 요리에 넣어 간을 망치는 경우와 같이 잘못된 유추를 할 때도 있다. 이 때도 유추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사고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물론 언어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언어철학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대체로 모국어)가 다른 언어에서는 A와 B로 다르게 지칭하는 것을 하나의 단어로 묶어서 부른다면, 저 두 가지를 비슷한 것으로 유추하기가 더 쉬운 식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번역에서 뉘앙스를 살리는 것은 순수한 내용만을 살리는 것과 사실은 구분될 수 없는데, 이 뉘앙스야말로 독자에게 퍼뜩 무언가를 유추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주는 핵심적인 촉매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라는 말을 단순히 팔십칩년 전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일부 내용을 빼먹은 번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유추가 우리 사고의 본질을 차지하고 있다면, 단지 어릴 때의 학습과 일상적 사고 뿐만 아니라 학문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할 게 뻔하다. 어떤 유추는 학문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데에 지속적으로 학습자를 방해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유추는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지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전자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들은 나눗셈이라는 연산을 배울 때 있어 이것을 일상적인 개념 중 분할과 연결지어둔 탓에 대체로 나눗셈의 결과가 원래 결과보다 더 커지는 상상을 쉽게 하지 못한다는 걸 지적하고, 후자를 설명하기 위해 어떻게 아인슈타인의 연구가 특이한 실험 결과에 대한 색다른 해석에서, 물리학 전체에 적용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진화하는 데에 유추가 도움이 되었는지를 서술한다. 그러면서 학문을 배울 때 우리는 오히려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개념들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개념으로부터의 올바른 유추를 할 수 있도록 집중하고 이 유추들로부터 추상적인 개념들을 이끌어내 그 개념들 사이의 유추로 도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수학을 공부하다가 처음으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다른 분야 사이의 연결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미분과 적분이라는 두 연산을 당연히 서로에 대한 역연산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적분이라는 개념은 수천 년 간 쭉 이어져왔지만 미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고, 그나마도 완전히 독립적인 것들을 다루는 것들이라 여겨졌다는 걸 안 이후에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를 보자, 이 정리가 어떻게 그 전혀 다른 분야의 개념들을 완벽하게 이어냈는지, 그리고 그 이음새가 너무나 절묘해 현대에 수학을 배우는 학생 입장에선 둘이 원래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는 상상조차 쉽지 않은지 깨닫고, 학문의 즐거움이란 이런 곳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기에 책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