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박인환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종의 노정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과 초연(硝煙)이 가득 찬
생과 사의 경지에 떠난다.
달은 정막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루운
자유의 성채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 시집 <박인환 선시집>에서, 1955 -
- 이 시집을 내고 난 다음 해에 시인은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생전 유일한 단독시집이다.
이 시는 6.25 때 종군기자로 참전한 시인의 경험이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기며 퇴각하는 자와,
일체의 불순한 욕망을 배제하고 자유의 성채를 위해 전쟁터로 향하는 자.
이 시의 주제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무엇으로 해석되든 시의 무게감은 변함없다.
이만한 중량감을 우리들 정신에게 던져주는 시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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