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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키다 돗포는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로 알려졌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비롯한 당대 일본 소설가들은 물론이요, 일제 치하의 조선의 문인들에게도 높이 평가를 받았다. 최서해나 이광수, 아동문학의 아버지 중 하나인 방정환도 돗포의 소설을 많이 읽고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책 뒤의 해설 부분에 있는 이광수나 방정환의 평이나 인용문을 보면 이렇다.

 

(전략) 일본인의 것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와 구니키다 돗포의 작품인데 지금도 나쓰메 것은 그렇게 재독하고 싶지 않으나 구니키다 돗포의 예술만은 늘 보고 싶어요.(<삼천리> 제 5권 제 9호 1933년 9월 1일 이광수 씨와의 교담록.)

 

등불을 가깝게 달고 고 독보(獨步 - 돗포의 우리식 발음)의 병상록을 읽다가 언뜻 S의 일을 생각하고 한참동안이나 멀거니 앉아 있었다. (중략) 그리하여 독보가 말한 "밭 있는 곳에 반드시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사는 곳에 반드시 연애가 있다"고 한 그 구절 끝에 왜 이런 구절이 없는가 한다. "연애가 있는 곳에 반드시 실연 동거한다"고. (<개벽> 제 4호 1920년 9월 25일 「추장수필」)

 

그의 문학에는 모파상이나 투르게네프, 워즈워스의 작품에서 곧잘 인용된 문장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이 작가들은 그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돗포는 주로 하층민들의 삶을 풍경 속에 연결시켜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은 단편 소설들을 많이 썼다. 그의 소설은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가 되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취한 일본,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이광수의 '소년의 비애'가 구니키다 돗포의 단편 '소년의 비애'와 '그림의 슬픔'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들 중 '운명론자'와 '여난'이 가장 와 닿았던 것 같다. 운명론자는 출생의 비밀과 의도치 않은 근친상간이라는, 오이디푸스에서 시작되는 문학의 원형에 가까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야말로 운명 속에 내던져진 불행한 인생을 그린 작품이다. '여난' 의 경우 이기적인 성적 욕망과 비극적인 결말로 자기 고백적인 성격이 강하다.

 

구니키다 돗포가 37세로 요절했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의 단편들은 확실히 일본 근대문학의 여명기를 밝혔다고 할 만큼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