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전에]
니체 플로우차트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철학자들의 의견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하지만 어느 정보도 없어서 니체에 접근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어.
나는 그걸 어느 정도 막고 싶었고, 이렇게 글을 남기려고 함.
일단, 이렇게 철학자들이 의견이 갈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일단 이것부터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생각함.
니체의 저작 중 출판된 것과 출판되지 못한 유고들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철학자들은 이런 기본적인 곳에서부터 네 가지 접근으로 갈라졌다.
첫 번째 접근은 니체의 출판된 저작들이 더 깊고 정밀한 글이며, 출판되지 못한 유고는 출판된 곳에서 충돌이 일어날 때만 써야 한다는 것임.
두 번째 접근은 하이데거 학파에서 유행한 건데, 니체의 출판 저작들은 집의 현관 수준의 표면적 설명일 뿐이며 니체의 진정한 철학은 유고에 담겨져 있다는 것임.
세 번째 접근은 앞의 두 의견의 절충인데, 출판된 저작과 출판되지 않은 저작을 함께 보고 우선순위를 판단해서 니체에 대한 일관적인 해석을 찾아보자는 것임.
네 번째 접근은 데리다 학파에서 유행한 건데, 그것이 출판되었든 출판되지 않았든간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니체의 모든 텍스트가 다차원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임.
너네들은 이 넷 중에서 뭐가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다들 생각이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극단적인 접근은 네 번째라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질 거 같다.
누군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또 한 철학자를 오독한다고 쓴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나는 네 번째가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플로우차트는 네 번째 접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임.
데리다가 대체 어떤 말을 했길래 그 학파가 이런 극단적인 접근을 시도했느냐.
데리다를 향해 "상대주의자"나, "정체성 정치가 생겨나게 한 주범" 같은 비난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데리다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아이디어는 이거인 거 같아.
"해석을 종결할 수 있는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에 대한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진짜 좋은 책, 진짜 위대한 텍스트는 해석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텍스트들일수록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게 열어준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파네스로 갈라진 것처럼, 칸트의 철학이 에른스트 카시러와 하이데거로 갈라진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피터 해커와 코라 다이아몬드로 갈라진 것처럼.
그리고 성경처럼.
철학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들은 의견이 갈라지게끔, 해석이 다양하게끔 길을 열어주지.
그런 면에서 니체의 저작은 아주 위대한 것이야.
성경 다음으로 이만큼 의견이 갈라지는 텍스트는 없기 때문이다.
일단, 첫번째, 니체 플로우차트에 대해, 난 이런 목표를 세웠음.
제1목표는 니체를 어떻게든 일관성 있는 이론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임.
이 목표에 해당되지 않은 부분들은 설명이 빈약할 수 있음.
특히, 니체의 예술철학과 문학적 면모를 최대한 멀리 두었어. 그게 최선이라고 봤어.
제2목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최대한 철학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임.
그 이유로 문학으로서의 차라투스트라와 철학으로서의 차라투스트라를 분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음.
제3목표는 관점주의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임.
그럼 이제부터 시작할게.
[2. 니체 플로우차트]
지평
지평이란 "읽으면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좋지만, 안 읽어도 되는 것"임. 그래서, 안 읽어도 돼. 참고로 두면 돼.
스피노자 - 에티카
니체 전 시대에 니체와 비슷하게 생각한 철학자가 4명쯤 있다. 그 넷은 바로 스피노자, 키르케고르, 막스 슈티르너, 에머슨임.
니체가 그 사람들을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는 서로 갈리지만, 아무튼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좋은 사람들임.
스피노자는 니체가 2차저작으로 읽었다. 니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철학의 선구자가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스피노자를 두고 규폐증으로 켁켁거리는 철학이라고 했지만, 아무튼 꽤 고무적인 사례임.
기독교의 신이 포함되는 신인동형론 비판, 선악 구분에 대한 비판 등 꽤 비슷한 구석은 많음.
에티카 자체는 읽기 어려우므로, 2차 저작을 읽는 것이 좋음.
키르케고르 - 공포와 전율
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자로 많은 책에서 니체와 자주 엮임.
그의 책 중에서 공포와 전율이 가장 좋다고 봤는데, 윤리적 삶에서 벗어나라는 말이 가장 니체와 가까웠기 때문임.
여기서 윤리적 삶이라는 건 인간적인, 사회생활로 자기 할 일을 하는 삶이라 생각하면 됨.
그는 이 책에서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라는 개념을 다루는데, 간단히 말해 너가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그 전까지 사람들이 말했던 모든 명언들과, 모든 지혜들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말임.
이런 사회의 보편적인 것에 대한 도약 개념이 니체와 많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막스 슈티르너 - The Unique and Its Property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슈티르너의 철학에 접근하기 힘들다.
번역이 안 되어 있다. 철학사 책에서도 안 나온다.
그런데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에서 니체와 슈티르너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그래서 아예 버릴 순 없다.
마르셀 뒤샹이 자기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영향받은 책이라고 하니까, 한번 읽어보던가...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ax-stirner-the-unique-and-its-property
영어로는 공짜다.
에머슨 - 자기 신뢰
"에머슨 - 나는 어떤 책에서도 그처럼 내 집과 같이 편안하게 느낀 적이 없었고, - 아니 찬양하지 말아야겠다. 나와 너무 비슷하다."
니체는 에머슨을 굉장히 좋아했으며, 둘은 굉장히 비슷한 사상을 가졌다.
에머슨의 에세이는 아주 짧고 쉽다.
현대지성에서의 번역본이 가장 좋은 거 같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분명 니체는 고대 그리스 쪽의 문헌학자였는데, 좀 이상하게도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 별 이야기를 안 했다.
니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날 이상하게 볼 것 같지만,
정말 전집을 찾아봐도 플로우차트에 넣을 수준이 되는 철학적 분석은 들어가있지 않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중에서 무조건 헤라클레이토스 쪽이지만 그 사람을 설명한 글은 별로 없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중에서 당연히 에피쿠로스 학파 쪽이지만 에피쿠로스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다룬 글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 읽으라고 할 순 없고...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게 이거임.
유고에서 아리스토파네스를 위버멘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읽으면 좀 도움이 될 거임.
쇼펜하우어 - 행복론, 인생론
솔직히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관계가 대체 어느 정도인건지 난 모르겠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칸트를 어느정도 읽어야 하니까 이거를 골랐다.
파스칼 - 팡세
니체의 책이 읽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뭐냐.
하나 하나 따로 떼서 읽으면 명료하지만, 이를 전체적으로 보려는 순간 서로 충돌하고 정반대가 되는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진 글이기 때문임.
왜 니체는 이런 아포리즘으로 자신의 철학을 써냈는가.
프랑스 도덕주의자, 혹은 프랑스 아포리즘 철학자들로 불리는 사람들을 따라했기 때문임.
라로슈푸코, 니콜라 샹포르, 파스칼, 몽테뉴, 라 르뷔예르, 퐁트넬 같은 사람들... 들어본 적 있음?
아무튼 이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건 파스칼의 팡세임.
도덕의 계보 정도를 제외하면 니체의 책은 다 아포리즘이기 때문에 이거에 익숙치 않는다면 팡세를 읽는 게 좋을 거야.
1단계
박찬국 -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니체의 말을 따라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를 다룬 책.
니체를 제대로 다룬 책 중 가장 쉬운 책인 거 같다.
도덕의 계보 "첫 번째 논문" (훑어 읽기)
우상의 황혼 "4가지 커다란 오류" 파트 (훑어읽기)
니체를 아포리즘, 즉 명언의 뭉치들로 이해하는 대신 어떠한 이론으로 읽고 싶다면,
이 부분만큼 중요한 부분이 없다고 봐.
이 부분만큼은 니체가 정말 다른 문헌학자만큼, 분석철학자만큼 논리적이고 학문적이었어.
박찬국 - 그대 자신이 되어라
박찬국의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가 인생론적이라면,
이 "그대 자신이 되어라"는 니체의 아포리즘을 분류하며 "니체의 철학은 무엇인가"를 다룸.
유명한 명언들에 대해 알맞은 발췌를 하고, 그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하므로 읽는 게 좋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훑어 읽기)
니체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이 입문용이기보다, 니체의 핵심 개념을 위해 마지막에 읽어야 할 책이라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어.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해.
하지만, 너무 유명하고,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걸로 시작했어.
만일 이것을 문학적으로 읽는다면 그리 큰 일이 아니지 않을까?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들한테 이 책만을 나눠주었다고 하고,
카를 융도 학창시절 당시 이 책을 통해 니체에 입문했어.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도 니체의 다른 책, 예를 들어 "즐거운 학문"이나 "우상의 황혼" 대신 이 책만을 추천 리스트에 올렸단 말이야.
접근성을 생각해 봤을 때 이 책의 유명세를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해.
읽고 싶은 사람은 이때 읽는 게 좋을 거라고 봐.
그 대신에, 꼭 다시 읽어야 한다고, 니체의 철학을 어느정도 파악한 뒤에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2단계
정동호 - 니체
니체를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많은 2차저작 중에 이 책이 가장 학문적이었음.
정동호는 니체 특유의 과도함과 날뛰는 문체를 최대한 억제한 채 담담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게 내 목적과 부합했음.
니체의 저작들...
차라투스트라를 읽기 위해서는 어떤 니체의 저작들을 읽어야 할까?
이 문제를 중심으로 읽는 순서를 정했어.
차라투스트라를 대비하기 위한 두 책은 "선악의 저편"과 "즐거운 학문"이야.
"선악의 저편"은 차라투스트라 이후에 어떤 철학이 있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즐거운 학문"은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해설이라 할 수 있어.
그리고, "선악의 저편"을 읽기 전에 "도덕의 계보"를 읽는 게 좋아.
"도덕의 계보"는 굉장히 중요한 강점을 가지고 있음.
니체의 저작들 중에서 오직 "도덕의 계보"만이 그 책에 대한 요약이 가능함.
"첫 번째 논문은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고 두 번째 논문은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고 세 번째 논문은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음.
"비극의 탄생"도 좀 튀는 부분이 있고, 순서가 어느 정도 잡혀 있는 "선악의 저편"도 이렇게 말 못함.
그리고 "우상의 황혼"이라는 책이 있는데, 출판된 책 중에서 니체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고, 차라투스트라를 읽은 뒤에 이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있음.
하지만 이 책을 차라투스트라 전에 읽어도 여기 있는 철학적 내용이 무엇이고 니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음.
그래서 순서를 이렇게 정했음.
"도덕의 계보" - "선악의 저편" - "우상의 황혼" - "즐거운 학문".
이렇게 읽으면 차라투스트라를 대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거야.
힘들다면
이렇게 해도 힘들 수 있거나, 니체의 말이 너무 과도하다고 보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럴 때 도움을 주는 책을 제시하겠음.
"다이너마이트 니체".
고병권의 책이고, "선악의 저편"에 대한 2차 저작임. "선악의 저편"은 니체의 저작들 중 드물게 어떤 순서가, 어떤 흐름이 있는데, 니체 특유의 과도함이 그것을 가리고 있음. 이 책은 그 혼란을 줄여주고 흐름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음. "선악의 저편"이 힘들면 이 책을 읽어.
"아침놀".
이 책은 좀 특별함.
윤리학과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는 한 독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칸트, 밀, 루소, 토크빌, 롤스 같은 사람을 자주 읽다가, 사람들에게 많이 언급되는 니체를 보기로 결정했어.
그렇게 다른 철학자의 글들에 익숙한 사람이 "도덕의 계보"부터 봤더니 이 책이 너무 과도한 거임. 니체 중에선 가장 평범한 편인데도 과도하다고 느껴지는 거야. 그리고 그가 선악을 다루는 이론은 너무 독자연구 같은 거야.
또 한번 니체가 칸트를 어떻게 비판했는지 보고 싶어서 "우상의 황혼"을 봤더니 이게 진짜 철학자가 할 행동인가 싶을 만큼 의미없는 비난에 가까운 글들만 가득한 거임.
이 독자는 이런 경험으로 니체가 아주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
이런 독자들을 위해서는 무슨 책을 추천해야 할까? 바로 "아침놀"임.
도덕의 계보가 형식이 가장 평범하다면, 아침놀은 내용이 가장 평범함.
니체의 가장 명료하고, 가장 차분한 책 중 하나임. 현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는 과잉된 니체의 이미지를 가라앉힐 수 있는 책임.
그렇다고 이 책이 니체를 제대로 담지 않은 건 아님. 당시 시대의 도덕 개념을 비판하는 것은 여전하고, 선악의 비판, 심지어 인권 개념의 비판까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음.
"도덕의 계보"의 첫 번째 논문마저 과도하다고 생각되면 이 "아침놀"의 제1권을 읽는 것을 추천함.
"아침놀"을 다 읽었다면, 원래 니체가 둘을 합치려고 했던 "즐거운 학문"을 그 다음에 읽는 것도 한 방법임.
당신은 차라투스트라를 꼭 읽어야 하는가?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본 인문학 교수들이 쓴 책이 있는데, 거기서 "읽지 말아야 할 책" 리스트를 만들었음.
사드의 "소돔의 120일", 바타유의 "눈 이야기"와 함께 당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 리스트에 속해 있었음.
그 이유는 아무리 봐도 그 책의 위험성, 과도함 때문일 것임.
그들은 차라투스트라에서 문학적 메타포로 범벅이 된 한 부분을 인용한 뒤, 이 책을 진정 어떤 철학적 뜻을 가진 텍스트라고 볼 자신이 있냐고 질문했음.
차라투스트라는 위험하고, 과잉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어찌 보면 읽을 필요가 없기도 함.
지금 한 번 니체의 유명한 명언을 한 번 생각해봐.
그 명언이 과연 차라투스트라에서 나온 걸까?
너가 "괴물, 심연" 명언을 생각했다면, 그것은 "선악의 저편"에서 나옴.
너가 "죽이지 못하는, 강하게" 명언을 생각했다면, 그것은 "우상의 황혼"에서 나옴.
너가 "신은 죽었다", "아모르 파티" 명언을 생각했다면, 그것은 "즐거운 학문"에서 나옴.
유명한 니체의 명언 중 차라투스트라에 나오는 건 없다시피 함.
진짜 깊게 읽을 작정이 없다면, 굳이 읽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야.
3단계
(펭귄클래식 홍성광의 차라투스트라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홀링데일의 서문만 읽고 다시 반납하기)
조금 잔인한 방법이지만 홀링데일의 서문은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는 데 정말 좋은 텍스트임.
박찬국 - 차라투스트라, 그에게 삶의 의미를 묻다
고명섭 - 니체 극장 중 제3부 "차라투스트라의 탄생"
차라투스트라를 읽기 직전에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이 두 책이 서로 상보적인 것 같아 이렇게 추천한다.
사실 원래는 박찬국의 책만을 추천하려 했지만, 원래 책이 아닌 강의록을 써낸 것이고 그 때문에 내용이 좀 빈약한 것 같았다.
박찬국의 책은 차라투스트라의 비정치적인 면을 담고, 어린아이-낙타-사자 등의 차라투스트라에서 나오는 비유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고명섭의 책의 제3부는 차라투스트라의 정치적인 면을 담고, 힘에의 의지(권력의지), 영원회귀라는 차라투스트라의 철학적 측면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깊이 읽기
이정도쯤 되면 읽어도 좋을 거 같다.
아직 남았는데, 두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꼭 두개 이상의 번역본으로 읽었으면 한다.
번역가의 입장에 따라 번역이 달라지다 보니, 한 번역본에서는 "진리에의 의지는 힘에의 의지의 승화이니 니체는 긍정하고 있다"라는 입장으로 번역을 해두고, 다른 한 번역본에서는 "니체는 진리에의 의지를 기존 철학자의 폐단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라는 입장으로 번역을 해두는 등, 상황이 많이 안 좋다.
정말 걱정된다면 영어판을 두고 부록처럼 봤으면 함. 펭귄클래식 홀링데일 역으로는 교보문고에서 7900원밖에 안 한다.
둘째, 제1부부터 제3부와, 제4부를 구분했으면 한다.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책은 제1부와 제2부가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제3부를 만들었고, 이렇게 총 3부로 책을 출판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또 더 많은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 제4부를 만들었고, 그렇게 차라투스트라는 출판되었다.
제4부가 가장 과잉된 작품이고, 가장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제1부부터 제3부까지를 훨씬 공을 들여서 읽은 뒤, 마지막에 흘러가듯 제4부를 읽는 것이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함.
(니체 성숙기 6부작 중 남은 것, 그리고 비극의 탄생 읽기)
니체 성숙기 6부작이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을 말함.
이 책이 그의 철학적인 부분을 잘 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붙혀짐.
지금 이 플로우차트 순으로는 "아침놀"은 읽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모두 읽지 않았을 것임.
"아침놀"은 전에 설명했으니 넘어가자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처음으로 그의 아포리즘이 뚜렷하게 나오는 책임. 니체의 책 중에서 이 책과 가장 가까운 건 "선악의 저편"이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선악의 저편"이 더 잘 읽혀지는 것은 아니라 선택하지 않았음.
그리고 이 책들에 더불어서 "비극의 탄생"이 있음. 이 책까지가 유명하므로, 정말 니체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이것을 다 읽으면, 마지막에 쓰려고 한 유고를 제외한다면, 니체의 철학을 거의 전부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임.
꼭 읽을 필요는 없음.
(여기서 질문이 나올 것 같음. "안티크리스트"와 "이 사람을 보라"는 왜 빠졌는가? 이 책들은 너무 내용이 과도하다고 학자들이 생각한 것 같음.
내 생각으로는 솔직히 말해, "이 사람을 보라"로 니체를 처음 시작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좀 안 좋은 첫인상을 줄 것 같다. "왜 나는 이토록 현명한지, 왜 나는 이토록 영리한지, 왜 나는 이토록 좋은 책들을 쓰는지,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철학자의 겸손함이란 덕목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이것은 좀 심할지도 모르겠다.
안티크리스트를 읽고 싶으면, 꼭 성경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사도 바울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 이 책을 읽기 전에 바트 어만의 "예수 왜곡의 역사"를 읽었으면 함.
니체 KGW 전집 중에서 제3권에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이 있는데, 이거는 유고 중에 꽤 괜찮음)
(우상의 황혼 - 깊이 읽기)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난 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좀 더 책의 내용을 잘 알게 될 것 같아서 넣어두었다.
꼭 다시 읽을 필요는 없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백승영 - 니체 유고 pdf
(니체 유고 19, 20, 21)
(권력의지)
인터넷에서 pdf 형식으로 나와 있는 백승영의 글이 있어.
니체 유고, 그 중에서도 흔히 "힘에의 의지"라고 불리는 19,20,21권을 설명함.
아무리 봐도 19,20,21권을 읽는 대신 이 pdf파일을 읽는 게 나을 거 같음.
왜 그런지에 대해 설명하겠음.
"힘에의 의지"는 니체가 만드려고 했던 책임.
니체는 자신의 철학에 대해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하려는 책을 이 "힘에의 의지"에서 만드려고 했고, 그래서 문학적인 측면보다 철학적인 측면이 더 많이 강조되어 있음.
"선악의 저편"이 출간된 뒤 이 "힘에의 의지" 작업을 시작했는데, 총 4권으로 만들자고 계획을 세웠음. 제1권은 "유럽의 허무주의", 제2권은 "최고 가치들에 대한 비판", 제3권은 "새로운 가치 정립의 원칙", 제4권은 "훈육과 사육"이라고 제목을 지었음. 쉽게 말해 허무주의, 가치의 비판, 가치의 전도, 영원회귀를 설명하려고 한 거지.
그렇게 계속 작업하려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맘. 이름을 바꿔서 지금까지 쓴 것만이라도 출판하려 했지만, 그것도 포기함. ("힘에의 의지"에서 좀 따로 떨어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파트를 "우상의 황혼"과 "안티크리스트"로 출판하려는 작업은 그의 죽음 이후 이루어짐.)
니체가 미친 뒤에 그의 작업에 대한 편집은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가 했는데, 이 사람이 반유대주의 나치주의자였음.
엘리자베스 니체는 이 유고를 자의적으로 편집함. 그녀는 분류된 니체의 체계를 따르지 않거나, 글의 꽤 많은 부분을 책에 포함시키지 않거나, 남은 것도 변형하는 일을 벌여놓고는 "힘에의 의지"라고 출판해버림.
그런 사실이 잘 안 밝혀졌으므로 "힘에의 의지"가 출판되었을 때 니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음. 특히 보임러라는 사람의 해석이 유행함. 그에 따르면 니체의 출판 저작들은 집의 현관 수준의 표면적 설명일 뿐이며 니체의 진정한 철학은 유고에 담겨져 있다고 말함. 하이데거가 이 해석을 그대로 따름.
그러다가 엘리자베스 니체가 그 문서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야스퍼스 등의 니체 학계에서 점차 퍼지기 시작했고, 50여년 뒤인 1954년 슐레히타가 조작된 체계를 완전히 해체한 뒤 문헌학적으로 시기순으로 배열한 슐레히타본을 출판함. 이 때문에 유고 논쟁이라는 것이 일어났고, 의견이 반반으로 갈라짐.
(여기서 힘에의 의지를 지지했다고 해서 다 나치는 아님. 칼 뢰비트가 중요한 지지자였음)
슐레히타는 세 가지 주장을 함. 첫째는 니체의 유고는 시기순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유고가 아닌 출판된 저작들이 철학적으로 더 의미를 갖는다는 것. 셋째는 엘리자베스 니체가 변형한 것을 수정해야 하므로 여기서 끝내면 안되고 작업을 더 해야 한다는 것.
이것으로 논쟁이 심해진 뒤, 이탈리아에서 시기순으로 분류하되 출판된 저작과 유고를 함께 보자는 취지로 니체 전집을 만들자고 제안함. 이 제안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힘에의 의지" 부분 유고에서 엘리자베스 니체가 변형한 것도 원래대로 되돌리게 됨. 이 전집을 KGW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의 니체 전집은 바로 이것을 번역한 거임.
이제 거의 어떤 니체 학자도 "힘에의 의지"를 지지하지 않음.
하지만 "힘에의 의지"의 출판은 아직 하고 있음. 독일에서 12판을 찍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권력의지"라고 번역됨.
이 이야기가 어떤 관련이 있느냐?
19,20,21권은 이 이야기때문에 읽기가 많이 힘듬. 체계가 없고 오직 시기순으로 배열했기 때문에, 현재 내 목표, 어떤 철학적 체계를 원한다면 어쩌면 "권력의지"를 읽는 게 더 걸맞을 수도 있음.
이렇게 둘 다 어느 정도 읽기 꺼려지는 점이 있어서, 난 그냥 차라리 이 유고를 잘 설명한 백승영의 pdf를 읽는 것을 추천하는 거임.
정말 읽고 싶으면 19,20,21권을 읽는 것을 추천함.
그 외 참고하면 좋은 중요한 2차저작
이 플로우차트에서 박찬국이 좀 많이 언급되었다고 느낄 거야.
니체만큼 의견이 갈라지는 철학자가 없는데, 그나마 박찬국의 저작만이 그걸 버티고 보편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랬음.
박찬국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좋은 니체 책을 쓰는 사람이 4명 있는 거 같음.
정동호, 백승영, 김정현, 고병권.
정동호 등 - 오늘 우리는 왜 니체를 읽는가
정동호의 "니체" 말고 이것도 있음.
"니체"처럼, 국내 니체 연구 결과를 보여줌.
백승영 -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정동호의 "니체"가 차분하다면, 이 책은 활발하게 씀.
웃기거나 쾌활하지는 않지만 아주 정열적으로 수업 내용을 가르치는 교수 같이 글을 썼음.
니체를 어느 정도 읽은 뒤 읽는 게 좋음.
백승영 - 니체, 철학적 정치를 말하다
니체의 정치철학적 이론을 그의 텍스트에서 분석하는 책.
아마 한국인이 쓴 니체 2차저작 중에서는 가장 어려운 책 같다.
김정현 -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니체를 비판한 사람으로 루카치가 있는데, 정말 어디에서도 루카치가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이 책이 그것을 다뤄줬고, 이러한 니체와 다른 철학 간의 관계에 대해 잘 다룬 책이다. 니체와 페미니즘 간의 관계는 이 책에서 다룬다.
고병권 - 언더그라운드 니체
고병권의 책으로 "다이너마이트 니체"도 있고 이 책도 있다.
이 책은 서광, 즉 "아침놀"을 분석한다.
홀링데일 - 니체 - 그의 삶과 철학
아마 가장 좋은 니체 전기.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Rick Roderick이라는 철학자가 니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필요는 없다고 해서, 이렇게 참고로만 두겠음.
네하마스 - 니체: 문학으로서 삶
내 목표와 전혀 달라서 이렇게 참고로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철학적인 부분이 있다. 네하마스는 니체의 메타포를 분석하며 그의 핵심 개념인 영원회귀가 메타포일 것이라 설득하고 있다. "나의 삶은 똑같이 동일한 방법으로 반복될 것이다"란 주장, 그리고 조금 약한 주장으로 "나의 삶은 똑같이 동일한 방법으로 반복될지도 모른다"라는 두 우주론적인 주장과 다르게, "만일 삶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오로지 똑같이 동일한 방법으로 반복될 것이다"라는 사고실험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은 철학적 목표인 5장과 6장을 먼저 본 뒤 처음으로 돌아가 남은 부분을 읽는 방법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명섭 - 니체 극장
플로우차트대로 읽었다면 제3부를 읽었을 것이다.
전기의 역할도 하지만, 철학적 내용이 아주 알차다. 꼭 필요한 부분만 설명해서 좋다.
니체에 대한 비판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최우선으로 두는 게 좋을 거 같다.
드물게 관점주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다.
김진석 -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박홍규 - 니체는 틀렸다)
니체와 현대 사회가 가장 충돌하는 부분은 민주주의임.
김진석의 책은 이것만을 중점으로 다루므로 좋음.
박홍규의 책은 워낙 평가가 안좋아서 안 읽으려다가 한번 읽어봤는데, 4부, 5부, 7부에선 좀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나머지는 안 읽어도 된다.
살로메 -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루 살로메라면 읽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음.
읽으면 안되는 책
니체 자서전 - 나의 여동생과 나
[3. 여기서 끝낼 수 없다]
잊혀졌던 철학자, 니체
흔히 베르그송을 보고 "잊혀진 철학자"라고 하더라.
베르그송의 낙관적 철학관이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효용성을 잃어버렸다고 예전에 평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더 적합한 표현은 "잊혀졌었던 철학자"일 거다.
들뢰즈와 같은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되살리고, 일리야 프리고진과 같은 과학자들이 그의 시간 개념을 재평가하고, 한국에서도 계속 번역본이 나오는 등 역사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볼 때 그는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니체가 정확히 이런 상황이었다.
니체가 죽고, 그의 여동생과 나치즘 철학자들이 니체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그의 철학은 히틀러를 위버멘쉬로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의 철학도 잠시 끝나버렸다.
사람들은 니체를 파시스트로, 광인으로 보았고, 좋게 보아도 시인일 뿐이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는 "잊혀진 철학자"가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사람이 20세기를 뒤흔든 철학자가 되었는가?
바로 "니체의 아이들" 때문임.
니체의 아이들, 즉 니체를 해석한 여러 철학자들은 니체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면서 다른 해석을 하게 되었음. 그렇게 니체에 대한 평가는 정치철학자에서 비정치철학자로, 시인에서 철학자로, 전쟁과 전체주의의 철학자에서 차이와 개체의 철학자로 바뀌게 되었다.
니체를 이렇게 "바꾼" 철학자와 그 책은 다음과 같다.
1950년 월터 카우프만의 "Nietzsche: Philosopher, Psychologist, Antichrist",
1961년 하이데거의 "니체",
1962년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등등.
특히 들뢰즈의 책이 프랑스 철학계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니체를 다시 해석하는 논문들과 책들이 매우 많이 나오게 되었고, 니체는 다시 부활했고, 니체는 20세기를 다시 뒤흔들게 되었다.
이를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쓰는 방법"에서 볼 수 있어. 인용하겠음.
"어느 테마에 관한 아주 중요한 저술들이 우리가 모르는 언어로 쓰여 있다면 그 테마에 관한 논문을 쓸 수 없다. 어느 학생이 독일어를 아주 잘하는데 프랑스어를 모른다고 한다면, 비록 니체가 독일어로 저술을 했을지라도, 니체에 관한 논문을 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10여년 전부터 니체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몇몇 재평가들이 프랑스어로 저술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니체를 읽기는 했는가?
이제 이렇게 되니까, 니체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도 갈리게 되었음.
니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길로 가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게 되었음.
위에서 말한 월터 카우프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분은 니체가 정치철학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인간에 대해서도 아주 많이 말하고 있음을 깨달은 사람이었음.
2차 세계대전 이후 니체를 철학적으로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정치철학자로 본 것을 생각하면, 월터 카우프만은 이것을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거임.
내가 생각할 땐 이런 이유로 좀 심하게 비정치적인 해석을 한 거 같음.
그의 해석, 주장을 추리자면 이런 게 있음.
"니체는 정치를 아예 생각에 두지 않았다."
"니체는 민주주의를 긍정하고 있다."
"니체의 위버멘쉬라는 개념은 시대 앞의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위버멘쉬가 될 수 있으며, 니체는 오히려 이것을 바라고 있다."
"영원회귀를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안된다. 단지 인생의 모든 일이 반복된다는 뜻만을 가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문학적인 가치가 있을 지 몰라도, 장황하고 과장이 심한 못쓴 글이라 해야 한다."
이 주장을 거부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 것임.
위에 제시한 모든 주장에 대해 그에 반대되는 주장이 있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여기서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니체를 읽기는 한 거냐?"라고 하면 어떨까?
정말로 니체를 안 읽은 사람처럼 주장했기는 했다.
하지만, 루카치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니체의 민족주의적인 발언과 여성혐오적 발언, 반유대적 발언을 강조하며
그의 철학을 "열등한 종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적 착취"라고 폄하했다.
이 사람은 니체를 읽기는 한 걸까?
에른스트 윙거라는 사람도 있다.
그는 니체가 20세기의 기술문명의 발전으로부터 나오는 힘에의 의지를 드러낸 철학자라고 봤다.
그는 힘에의 의지가 전쟁터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위대한 전사가 되었을 때 가장 잘 나타나며, 이렇게 힘에의 의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개체를 거부하고 전체주의와 규율에의 의지를 강조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람은 니체를 읽기는 한 걸까?
슈펭글러라는 사람도 있다.
그는 역사학자로, 니체의 철학에 아주 경도되었다. 그는 역사를 니체주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역사를 과학처럼 시기별로 나누기보다 반과학적인 괴테의 형태학을 본받아 문명의 발생과 쇠락을 유기체처럼 발생·성장·노쇠·사멸로 나누어 해석해야 한다고 봤고, 니체의 니힐리즘을 받아들여 20세기 서구 문명은 문명 몰락의 결정적인 요인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얼마 안 있어 사멸할 것이라고 봤다.
이 사람은 니체를 읽기는 한 걸까?
홍성광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번역한 사람이다.
그는 2011년 구판 "도덕의 계보학" 해설에서 니체가 위버맨쉬를 지칭했을 때 그것은 스티브 잡스와 안철수 같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이 사람은 니체를 읽기는 한 걸까?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그들은 확실히 니체를 읽었다.
문제가 되는 건 "이 사람은 니체를 읽기는 한 거냐?"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다른 철학자도 이러지 않지만, 니체에 대해서만큼은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역사적 니체와 철학자들의 니체
나는 이것을 어떻게 이 플로우차트에 반영할지 감이 안 잡혔음.
다른 철학자들과 다르게, 니체만큼은 니체의 저작들만을 읽어선 안될 것 같고, 무조건 니체를 해석한 사람들 즉 니체의 아이들의 철학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가로막았음.
나는 이것을 예수를 통해 해결해보려 했음.
신학에서는 "역사적 예수"라는 단어가 있음.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지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라는 건 대체 뭘 의미할까?
이 단어는 계몽주의 이후의 신학에서 나온 말인데, 간단히 말해 신학적이고 신성시되었던 성경에다가 인간적인 역사학의 비평을 그대로 대입하는 것을 말함.
그때 당시에도 굉장히 논란이 많았고, 현대에도 그런 논란은 여전함.
또한, 그렇게 역사적 비평학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역사적 예수에 대한 해석이 극단적으로 갈려지는 등 사실상 제대로 된 모델을 만드는 데 실패했음.
하지만 이것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 많아. 크로산, 불트만, 바트 어만, 슈바이처가 그런 사람들의 예시야.
크로산 같은 사람들은 그 당대에 대한 비평학과 고고학, 성서학, 문화학, 사회적 환경 분석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역사적 예수 연구에 집어넣음으로서 "비유를 많이 제시한 견유학파처럼 살아간 사회적 혁명가" 따위의 예수의 모델을 만드려고 시도했음.
불트만은 이에 비해서 더 차분했음. 이 분도 역사적 예수 연구를 정말 많이 했지만, 역사적 예수 관련 문서들을 아무리 찾아본다해도 초대 교회에 의해 변형되어 도저히 역사적 예수의 직접적인 문헌까지는 도달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의 인격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을, 성경의 독자에 대해선 실존적 도약을, 예수의 말씀에 대해선 케리그마(선포)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음.
그리고, 이것보다 훨씬 더 역사적 예수에 무지한 사람들이 있음. 그런 사람들은 역사적 예수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예수의 신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음.
현재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사람들보다는 역사적 예수와 신학자들의 예수를 구분하고, 그러는 대신 그 둘의 조화는 시도해야 한다는 평가가 많아.
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해석이 극단적으로 갈려지는" 것에서 니체의 모습을 보았음. 그리고 이것으로 내 의견을 만들게 되었음.
나는 니체를 "역사적 니체"와 "철학자들의 니체"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함.
니체를 더 자세하게 보려는 생각은 "역사적 니체"를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의 암호와도 같은 아포리즘들을 생각할 때 역사적 니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가지론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함.
그 대신, "철학자들의 니체", 20세기를 뒤바꾼 니체를 해석한 철학자들, 니체의 아이들을 따로 두고, 플로우차트 역시 따로 두어서 이 철학자들의 니체를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함.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4단계, 철학자들의 니체 단계임.
공포와 전율<< 절판이라 못읽은게 ㄹㅇ 아쉽네 스피노자에 대해서는 니체가 넘 웃기게 까서 ㅋㅋㅋ
우선은 도덕의 계보부터 해서 성숙기 6부작 읽고(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쿤데라도 이 6부작을 상당히 칭찬한 거로 기억) 네하마스 읽고 해야겠다. 다시 정보글 써준 거에 감사를 보냄 ㅊㅊ
2부 -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299153
감사합니다
아침놀조차 너무 과잉된 거 같으면 뭘 읽어야 함
선악의 저편이 그나마 차분하게 느껴졌긴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