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과 작품을 분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이사람은 사생활이 개차반인데 글을 기가막히게 쓰니까 우리 암묵적으로 용서해줄까?'란 말로 들린다.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하는것이다. 무서운점은 그 면죄부의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일수 있고 그날그날 대중의 기분에 따라 바뀔수도 있으며 심하면 여론을 능숙하게 주므르는 뻥쟁이 한명에 의해 부여될수도 있다는점이다. 그러한 내생각을 담아 더이상 작가와 창작물을 분리할수 없는 시대가 된 이유를 두서없이 몇자 적어본다. 


1.정보의 발달과 이미지 소비

작가를 출판물로써 접하던 시대는 지났다. 전세계에서 죄와벌을 읽은 사람중 작가의 사생활을 먼저 접하고 책을 나중에 읽은 사람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적을것이다.

반면 지금은? 유명인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반나절만에 전국민의 귀로 들어가는 시대다. 작가의 작은 언행과 행동하나가 대중에게 각인될수있는 세상이된것이다. 

이것은 대중이 작품을 소비하면서 동시에 작가의 이미지도 소비할수 있게된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가 아무리 유려한 필체로 문학을 논해봤자 대중은 마지막 줄을 읽고 글자체에 전율하기 이전에 작가의 이미지를 기억해내고 어떻게 『이런 글』이 『그런작가』에게 나올수있는지부터 찾게 되는 현상을 낳게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정보의 범람은 막지 못할것이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작가의 이미지는 어떻게든 대중에게 스며들어오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이 별개라는 말은 더욱 넌센스가 되는것이다.



2.사회가 도덕적으로 성숙했다

100년전 영국 사람에게 왜 흑인노예를 부리는데 왜 죄책감을 갖지 않느냐고 다그쳐봤자 그는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미성숙의 반증이다. 

굳이 100년전으로 넘어갈것도 없다. 50년전 하더라도 남자가 밥먹는 상에 감히 여자가 수저를 들이미는것을 죄악시했던게 한국이다.

이러한 미성숙시대에 비해 인간은 불과 몇십년만에 평등을 기반으로한 상당한 도덕적 성숙을 이루어냈다(어디까지나 비교적 측면에서)

더불어 과거에 비해 예술인의 일탈에 대한 데드라인(용납할수 있는 범위)도 상당히 좁아졌다. 이제 그들의 일탈이 데드라인을 넘어 사회적 약속을 어겼다면 좌시할 대중은 없다.

예술가들이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비논리적이자 암묵적동의가 사라진것이다. 그들도 같은 인간이며 법을 준수해야한다는것을 대중은 이미 알고 있다.

아직도 그들이 단순한 특권의식으로 점철된 일상과 작품활동을 병행한다면 외면받을수 밖에 없다. 이미 사회는 볐했다.

도덕적 해이가 용납받을수 있는 시대는 지나버렸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도 변했고 독자의 소비형태도 달라졌다.

앞으로 작가와 창작물을 분리하던 시대는 더욱 과거가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