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가지고 자라난 악은 또 나름의 성숙을 지향한다. 악이 공격성을 드러내면 사회의 대응도 적극적이 되어 분쇄 혹은 절멸의 의지로 나타나지만 그같은 사회의 대응을 견뎌낸 악은 보다 강한 내성을 얻어 더욱 굳건히 자라 가며 자신을 분식(粉飾)할 탈을 세련시킨다.
문단에 있는 선배를 만난 이후 나는 서슴없이 그를 우리 시대에 홀연히 나타난 불길한 악령으로 단정하고 그의 감시자를 자임했다. 그의 악이 그 정도로는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예감, 아니 무언가 더 끔찍하고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일을 저지르고 말리라는 확신으로 일종의 소명감까지 느끼며 스스로 그 일을 떠맡은 것이었다.
나는 방금 담당한 사건의 피의자보다도 면밀하게 살피고 신상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가 발표한 모든 글들, 그리고 그에 관한 모든 글들이 수집되어 분류되고 그 선배 외의 몇몇 새로 알아 둔 문단 쪽 사람들과도 수시로 만나 그의 근황을 들었다. 덕분에 나는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면서도 그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되어 갔다.
그뒤로도 한동안 그의 악은 한 허무적 탐미주의자, 혹은 한 탐미적 허무주의자의 탈 속에서 번성하였다. 그가 탈 속에서 화려하게 부르짖으면 그 주위에서 떠들썩하게 갈채하는 예술하는 천민들이 아직은 약간 남아 있었고, 더 많은 시장의 천민들은 별로 위태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그 관념의 유희를 굉장한 곡예처럼 황홀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의 악이 번성하는 한 파렴치한 엽색(獵色)의 식단도 풍성했다. 자랑스레 휘젓고 다니는 색주가는 기본이었고 손쉽고 뒷말없는 유부녀는 속되게 표현해 간식이었다. 더욱 악의 섞어 말하자면 신선한 후식도 그 무렵의 그에게는 흔했다. 시인의 허명에 조급했다가 화대(花代)도 없이 몇 달 침실봉사만 한 신출내기 여류시인이 있는가 하면 뜻도 모르고 관중의 갈채에만 홀려 있다가 느닷없이 그의 침실로 끌려가 눈물과 후회 속의 아침을 맞는 얼치기 문학소녀가 있었고, 그 자신이 과장하는 시인이란 호칭에 눈부셔 옷 벗기는 줄도 모르다가 살이 살을 비집고 들어서야 놀라 때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없는 여대생도 있었다.
그게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한 남자의 엽색행각을 시시콜콜히 들추는 것은 점잖치 못한 짓이거니와 자칫 사생활 침해의 우려마저 있다. 그러나 범죄를 구성한다면 그 감시자를 자임한 자에게 고발의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그가 자신의 성적인 행실 때문에 공식적ㅇ로 기소된 일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그게 그의 무죄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는 실제로 그 방면의 고소고발을 몇건이나 당했는데 그걸 간섭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근년 그 자신의 손에 의해 작성된 그의 연보다.
‘……그해에 나 아무개를 사칭하고 여교사를 농락한 뒤 돈까지 갈취해 간 사건이 있었다. 소문을 듣고 그 일대를 뒤졌으나 끝내 잡지 못했다. 그뒤에도 전국 여기저기서 가짜 아무개 소동이 있었다…….’
그 밖에 어떤 자전적인 글에서는 자신이 바로 그 가짜를 잡은 얘기까지 장황히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있다.
해방 뒤 이 나라에는 가짜 스코틀랜드 백작까지 있었지만 가짜 문인이 있었다는 말은 그의 연보나 자서전 이외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거기다가 그 소동이 있었다는 60년대 중반만 해도 그의 지명도는 전국적으로 가짜가 돌아다닐 만큼 높지 못했다.
그전에도 그 뒤로도 그보다 지명도 높은 사람이 수없이 많았는데 어째서 그들에게는 한번도 그 같은 가짜소동이 없고 그때만 해도 그리 대중적이지 못하던 그에게만 집중적으로 가짜소동이 일어난 것일까. 나중에 더 유명해진 뒤에도 반복된 적이 없는 일이, 그것도 그가 했음직한 죄목만 골라 그의 이름을 사칭하며 일어났을까―여기서 적어도 그 일부는 실제로 그 자신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혹이 일게 된다. 죄가 모두 친고죄적 성격이라 뒤가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란 추측과 함께.
하지만 60년대 후반이 되면서 그의 악운에도 피로와 파탄의 기색이 숨김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가 십여 년 간 써온 탈은 낡아 빛을 읽고 문단에서도 그의 실체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에서였건 그와의 교유에 말려든 문단의 명사들은 하나 둘 등을 돌렸으며 일견 화려해 보이던 여성편력도 그 무렵에는 이미 그의 뜻같이 못했다. 사기나 혼빙(婚憑) 또는 준간강의 요건을 구성하지 않고는 어렵게 돼가는 듯했다.
남발하여 희석된 글과 지켜지지 않는 약속 때문에 그를 거절하는 잡지사와 출판사가 생기고 여러 가지 낭패한 소식들도 간단히 들렸다. 어디선가는 좋지 못한 행실로 술상을 덮어쓰고, 도 어디선가는 그 동안 단짝으로 어울려 다니던 문사에게까지 된통으로 얻어맞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유부녀를 집적이다 눈이 뒤집혀 덤비는 그 남편에게 쫓겨 밤중에 담을 넘는 걸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가 북채만한 여동생을 데리고 나타나 칼을 빼들고 설치는 청년 앞에 볼품 없이 꿇어앉아 싹싹 비는 꼴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명사 사냥’ 시절과는 동떨어지게 그쪽에서 적극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도 있었다. 전 같으면 스스로 찾아가 교유를 구했던 어떤 명사의 출판기념회에 찾아가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린 일이었다. 그 명사는 외국의 명문 대학에서 당시만 해도 이 나라에 몇 없다는 철학박사를 따운 장안 명문가의 자제일 뿐만 아니라 ‘사상계’의 정진적인 적장자(嫡長子)를 지향하는 어떤 문학 전문지의 발행인이었다. 그런데 그 명사가 서구에서 갈고 닦은 새로운 이론으로 바야흐로 첫 평론집을 펴내고 자축하는 자리를 그가 뛰어들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내게는 완전한 파탄을 느끼게 하는 그의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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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서문 정도는 그렇게 쓸 수 있겠지만 소설 전체가 저런 식이라면 독자에게 외면 받지 않을까? 한자를 지양하려는 시도에 공감하진 못하겠다. 어딘가 무가치해 보여.
위의 순우리말은 문장마다 긴데도, 가독성을 해치지 않고 수월하게 읽히군요. 그래도 소설 전체를 저리 쓰기는 꽤나 어려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