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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0.


도서관에서 버리는 걸 줍줍해와서 읽었다.


리영희의 자서전인데, 리영희에 대해서는 그저 기자를 했던 좌파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던 상태에서 읽었음.




1.


먼저 이 책의 정치적인 이야기를 깊게 하지는 않으려 하는데


첫째로, 이것은 자서전이기 때문에 리영희의 주관적 견해가 안 들어갈 수 없고


둘째로, 이 사람의 좌파진영에서의 입지 때문에 그 주관적 견해가 본인 행보의 합리화를 시도한다고 보여질 수 있으며(이런 수동적 표현은 싫어하지만, 사람은 정치 얘기를 할 때는 감정적이라 생각해서 수동표현을 썼음.)


셋째로, 그가 겪은 방대한 사건들에 대한 나의 지식이 매우 일천하기 때문임.




2.


의외로 이 책은 겁나 재밌었는데


일단 리영희 자체가 말을 잘하는건지...(대담을 담은 자서전이라 '대화'인 거고, 리영희는 뇌졸중 이후 집필 활동을 잘은 못하게 되었다고 함)


상대가 되어줬던 임헌영씨가 어지간히 잘 이끈건지.. 뭐..


겁나 재밌음.


더불어, 일화들 자체가 재밌음.


우리에게 낯설 수 밖에 없는 서북지방의 풍토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 때 대체로 다뤄지지 않았던 일본인들과의 일상적 관계부터


지금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풍토, 가령 그 시절의 고등학생은 상당한 지식인에 준하는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그 수준은 내가 봤을 떈 지금 대학생보다 높은 거 같음.


여튼, 그리고 그 숫자가 적어서 특권의식이 대단했기 때문에 일부러 최대한 누추하게 하고 다녔다고 함. 사나이의 기백? 벽에다 오줌싸고 일부러 옷도 잘 안 빨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경외하고... 일본의 기풍이였던 거 같다고 리영희는 술회함. 만화책에서 자주 보이던 패턴인 괴짜에 대한 애호이려나?


여튼 이런 식으로 겁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낯설어서 더 재밌는 그런 풍경들이 초반부에 펼쳐짐.



3.


본격적으로 6.25쯤 들어서고부터는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정치적 식견들이 많이 들어가기 시작함.


간단히 말하면 '나는 왜 좌파가 되었는가? 당시 대한민국 사회가 존나 부정의했고, 시대상으로 좌파의 물결이 넘쳐났었기 때문이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거 같음.


실제로 이 사람은 6.25 발발부터 7년간 군생활을 했었는데, 그 이후에 기자가 되었고(유일한 비서울대 기자)


외신부 기자를 함으로써 해외의 여러 뉴스들을 접할 수 있었기에 이런 답변을 할 수 있는 거 같음. 그 시절에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혹은 공산주의?) 갈등과 자본주의가 물러나고 사회주의가 들어서는 뉴스들을 들으면 재미가 없을 순 없을 거 같음.


환희라는 표현이 적당하달까?


인터넷 0세대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정말 그으으으으윽 소수의 시대를 앞서갈 수 있던 여건에 있던.


어떻게 보면 머리 좋은 럭키 독붕이 같은 느낌도 있음. 의외로 독서 범위가 독붕이들과 꽤 겹치는 데다가, 인터넷 재밌어하는 꼴이..(외신부 기자 생활을 인터넷 0세대로 풀이한다면)



4.


이 사람은 기자로서 영어, 일어에 능통한데다, 분석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또한 이 사람에 대한 비판자든 지지자든 신념이 매우 올곧은 사람이었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기자라는 직업은 정말 천직이 아니었나 싶음.


쪼들리는 생활 중에서도 다른 기자들 처놀 떄 이런 저런 연구를 해서 식견을 넓혀나가며 독서까지 하고 투잡 쓰리잡까지 해가면서도


촌지같은 거 안 받고 끝까지 본인 신념을 밀고 나가는 걸 보면, 그 점은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 있음.


학문적인 성격이 강한데다 군생활을 7년 장교로서 행했던 덕인지, 여러 정치인들이 이 사람으로 인해 곤란을 겪으면서도 적당히 비호해주는 에피소드들은 흥미로움.


더불어 이 시절에


그 유명한 김수영과 이어령의 문학논쟁도 있었고 거기에 선우휘가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서 그 논쟁의 결론을 짓는 칼럼으로 끝나던 것도 처음 알게 되었음.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생생하게 연결되는 느낌이라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휘는 예비군훈련을 하면서 리영희에 대해서 경악을 했다고 함. '아니!! 자네가 소령편역이었다고?!!' 뭐.. 왜 경악했는지는 안 말해도 짐작할 거라 생각함.


가령 이병주에 대해서도 그가 부호의 아들이면서 호남아라 누구나 그를 좋아했다던가, 자신을 선망하던 어떤 동네의 나부랭이가 군입대해서 쿠데타 이후 서울시장까지 먹은 덕에, 당시에 서울에 2명이 있던 볼보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큰집에 살고 돈을 펑펑 쓰고 다녔다던가..... 이병주가 김수영이 친한 걸 보고 '김수영이랑 좀 보고 싶다'라고 하니까


이병주가 시무룩해하며 '아 내가 차태워준다니까 김수영이 꺼져!!라고 한 다음에 버스 치여 죽었음..'이라고 답변해주는 건 뭐랄까... 그 시절의 풍경이 인터넷에서 누가 썰 풀어주듯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런 재미가 있었음.



5.


이 사람의 학문적 성격을 말해보자면 되게 과학적이랄지 합리적이랄지 중립적이랄지....


의외로 미국을 감정적으로 미워하지 않고, 그들의 행동과 입장을 냉철하게 분석해가면서


동시에 본인이 좋아하는 사회주의 진영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그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싫어하고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성격을 가지고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왜 미국을 싫어하고 사회주의를 옹호하는지 궁금하면 일독을 권해보고 싶음.




6.


책으로서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막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정말 좋은 거 같고


이 책과 우파진영의 누군가가 쓴 자서전을 읽고


당시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대한 연구를 보면


어느 정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자신의 식견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고(나는 걍 이 사람 자서전만 읽었음, 역사에 무지함)


나는 보통 어떤 책을 읽으면 독후감은 내맘대로 제목을 정하는데


이 책은 부제 그대로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말이 


이 책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부제를 그대로 독후감 제목으로 썼음.


일단 상기했던 이유로 매우 재밌는 건 확실하니 너무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서관에서 20p만 읽어보길 권하고 싶음.


개인적으로 이 사람이 지금 태어났으면


심리학자나 통계학자의 길을 정했으면


대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음. 


너무 늦게 인간의 속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거 같아 그 점이 아쉽고.. 냉전세대를 살아서 어쩔 수 없던 거겠지만.


하여튼 개인적으로 봤을 때 적확하게 보고 통찰하는 것에는 대가라는 말이 아쉽지 않은 사람인 거 같음.


인간적으로는 좀 피곤한 타입인 거 같지만, 마냥 미워하기엔 또 매력이 있는 사람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