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나는 문학 작품 속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약자와 강자, 선함과 악함, 사상, 성별, 가치관 등의 단 하나의 차이만으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등장인물들의 모양새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마냥 아름답거나,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옳은 것이 늘 승리하지도 않고, 단 하나의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요소가 상이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정반대의 결말을 맞이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옳고 그름과 선악을 절대적인 가치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현실의 사람들은 대개 마냥 악하지도 않고, 마냥 선하지도 않은 적당한 도덕성과 적당한 성품을 지닌 경우가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경우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괜히 선과 악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면모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 속 등장인물을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다.
내 취향에 대한 더한 오해를 빚기 전에 해명하건대, 나는 정확히는 구도 자체가 이분법적인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분법적인 구도가 전반적인 작품에 절대적인 법칙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분법이 작품 내에 공고히 존재하더라도, 이를 거스르는 인물이 단 한명이라도 등장함과 동시에 비중 있게 다뤄지는 작품들은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 편이다. 이분법은 인공적일지언정, 그만큼 작가의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고 손쉽게 나타낼 수 있는 방법도 달리 없음을 십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서 드러나는 선악구도는 심각하게 절대적이며 인공적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엄연히 내 불호의 영역에 위치해 있다. 주인공 오뒷세우스의 편에 선 사람들은 선, 오뒷세우스에게 대적하는 사람들은 악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독자에게 트로이 진영과 그리스 진영 사이에서 생각할 여지를 주는 『일리아스』와는 정반대로 독자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여지를 너무나도 적게 제공하는 편이다. 그러나 내 원론적인 취향에는 비껴간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오뒷세이아』의 고정된 선악구도는 내 취향을 가볍게 ‘따위’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장점을 쥐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내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 역시 이 확실한 장점에 대한 것이다. 이 장점은, 어떤 면에서 봤을 때 그 대단한 『일리아스』보다도 현대인들인 우리에게 더 확실한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오뒷세이아』의 선악이 확실하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자면, 이 작품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그 당시의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옳고 그르게 여기던 행위라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의 ‘선’을 담당하는 주인공 오뒷세우스가 환대 문화를 긍정하고, ‘악’을 담당하는 구혼자들과 폴뤼페모스가 환대 문화를 깔보는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환대 문화를 중요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아들이자 아테나 신의 비호를 받은 텔레마코스가 어머니 페넬로페에게 활의 소관은 남자이자 집의 주인인 자신이며 베틀 등의 집안일은 어머니의 소관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당대 가부장적이었던 사회를 암시한다. 주인공인 오뒷세우스와 그의 편을 들어주는 이들이 『오뒷세이아』 내에서 교만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악‘으로 대표되는 이타케의 구혼자들이 사회상에 반하는 행동만 연거푸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사상과 행동은 그들에게 임의로 지정된 이분법적인 성향에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고대 그리스의 사회상을 선악구도를 통해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나타내었다는 사실에 비롯된 『오뒷세이아』의 장점은, 작가인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시대에 대한 문헌이 터무니없이 적게 남아있다는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과 결부되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어린 시절 접한 동화책들은 대개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결말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옳고 그름에 대해 확실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자연스럽게 심어주기 위함이다. 동화책과 어린 아이들의 관계를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현대인들에게 빗대면, 호메로스를 고대 그리스에 대해 무지한 현대인들에게 『오뒷세이아』를 통해 그 시대에 대한 이해력과 판단력을 자연스럽게 심어준 위인이라고 여겨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일리아스보다 재밌음?
난 일리아스가 더 재밌었음 일리아스는 읽은지 오래되서 따로 쓰진 않았지만
오뒷세이아는 문명인의 초기 생각들이라 할법한 행동들이 엿보여서 좋음. 다른 여자(심지어 요정인데도)가 있어도 무조건 고향으로 회귀하는 거라던가, 가장이라는 오디세우스의 위치가 가진 권력이라던가, 부부가 지내는 침실의 은밀함과 고요한 비밀이라던가 등등
마지막에 페넬로페가 침대로 오뒷세우스 떠보는 부분부터 작품이 끝날 때까지의 여운이 진짜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