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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주드 로가 젊은 교황으로 나오는 본격 기독교 드라마 '영 포프'에서
주드 로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눈을 감고 모든 좋은 것들을 연상해 보십시오, 그 모든 것을 합한 것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신은 긍정 그 자체여야 한다. 감정적으로도 긍정되어야만 하고.
1.
당연히 좆간은 안 그렇다.
좆같음의 합이라고나 할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알게 된다.
말이 번지르르한 놈들일수록 감추는 무엇인가가 있는 법이고, 그 말이 번지르르한 놈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닝겐과 신은 이만큼 차이가 난다. 구성요소로 치면 정반대가 아닐까?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실상 중국의 관우처럼 신격화되는 존재가 있다.
맨날 아프고, 때리고, 화내고, 술마시고, 놀고, 뒷담까는 사나이
부정의 합이라고 할만하지 않나.
2.
그의 일기는 정말 맨날 아프고 떄리고 화내고 술마시고 놀고 뒷담깐다.
그게 아니면 일기의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맑음, 공무를 보았다.'
혹은
'맑음, 나라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읽다보면
3.
숱하게 많이 이겨나가는 전투 속에서도 담담히 그 과정만을 적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그뿐이다. 그리하여 그의 일기를 읽다보면, 그가
기뻐해야만 할 때 기뻐하고, 정말 안도감이 들 때 안도하며, 정말 슬플 때 때 슬퍼하고, 화를 내야할 때 화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적인 일은 당위로 행동하며, 사적인 일은 그 감정이 사무칠 때 감정을 표현한다.
원흉은 좆같은 놈이니까 화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내용을 일기에도 적지 않아 감정을 절제하고,
'원흉의 해괴한 짓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적지는 않는다.'
군기는 잡아야되는 것이니 말 안듣는 놈은 목베고 곤장치고, 단지 그뿐이다.
'병장기에 녹이 슬었으므로 곤장을 때렸다.' '탈영하다 잡혔으므로 목을 베어 걸었다.'
4.
그가 감정을 양껏 드러낼 땐 군인으로서 애국충정을 가다듬을 때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적을 때이다.
'놈들이 날뛴다, 통분하고 또 통분하다' ,
'어머니가 잘 계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행, 또 다행이다.'
'내가 죽고 네가 살았어야 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운동은 운동할수록 잘 하고, 공부는 공부할수록 잘 하는 것처럼
감정은 절제할수록 절제를 잘하고, 충효는 할수록 느는 것이다.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함양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절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제와 함양의 수단이 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여튼 그런 수행을 군말없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튀려고 하는 놈들이 있어서 목을 베었다. 별 같잖은 놈들이 다 지랄이다.'라고 일기에 보통 적을텐데,
자신이 바라는대로 자신을 경영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자신의 설계대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인간인가.
5.
'교과서로 공부해서 서울대를 갔어요!' 보다 더 나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키우고 그것을 10년째 해냈더니 하버드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거보다 더 나간 말이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지만, 그의 위치는 인간관계의 피곤함을 극치까지 끌어올린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는 이런 말이 있다.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대충 전체를 보기 위해 부분들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고(격물치지), 성의를 다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여 수신에 이른다는 것이다.
수신할 수 있는 사람을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라 보면, 그 수신할 수 있는 사람이 가정도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나라도 다스리고.... 나라를 운영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진정 수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릴 사람이라는 뜻이다. 격물치지가 깨달음이라면, 성의정심은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고, 수신부터 앎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그는 이번 전쟁 이전까지 수군이 아니었단 사실이다. 하지만 수군절도사에 부임되고 1년도 안 되서 그에 걸맞는 정병을 만들어내고, 놀라운 수군활용능력을 보여준다.
그릇이 되면, 알맞은 자리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걸까? 수신하면 평천하도 가능하다는 예가 될 수 있으려나?
이러한 유교적 이론을 야매로 풀이하여 그를 분석해 볼 때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인격을 미루어 그는 수신하여 제가까지는 가능했던 사람이 아닐까.
군을 다스리는 일이 최소한 제가는 되었을테니 말이다. 그의 일기에 집안일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니 군율로 미루어 제가의 경지에 달했는지를 짐작할 뿐이다.
6.
따라서 그는 신이 아니라 좆간의 굴레에서 선을 함양한다.
온갖 나쁜 것들을 자양분 삼아 꽃을 피우려 한다.
부조화를 조화시키고 나쁜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감정 절제해서 기계처럼 느껴지는 이 양반이야말로 인간관계의 달인이라는 게 역설적이다.
위에서는 임금한테 까이고
아래서는 원흉이 별 해괴한 짓은 다 하고.
얼마나 해괴한 짓인가? 전공을 날조하기 위해 자국 백성들을 죽여서 목을 수집하려던 정도? 뭐 자잘한 것들은 너무 많고.
이런 인간을 달래가며, 또 원흉만은 못하지만 그의 기준에는 못미치는 인간들을 일기에서는 뒷담해가며, 간신히 앞에서는 달래고(달랬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렇게 적었다. 안 달랬을 리가 없으므로.)
임금은 전공을 세울수록 질투하고.
몸은 맨날 아프고 '밤새 땀이 흘러 옷 두벌을 갈아입고도 바닥이 흥건했다.' '뒤를 보지 못하였다. '거동하기 매우 불편하였다.'
단합을 위해 겸사겸사 술마시고 활쏘고 무슨 부루마블 같은 놀이나 해대고...
장담하는데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므로 본인도 스트레스 풀 겸 애들도 달랠 겸, 화합도 도모할 겸 겸사겸사 모두 다 행했을 것이다.
업무량이나 그가 처한 위치나, 그의 성격상 초래할 수 있는 모든 갈등을 더 나은 화합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 일기는 그런 그의 부산물일 것이다.
무인이 이토록 길고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 일 자체가 너무나 드물다고 한다. 어쩌면 문관지망생이었던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본인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는 이 일기를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기에 드러난 그의 감정을 현실에서 분출했으면 그런 전과가 나올 수 없기 떄문이다.
'원흉 이 좆같은 좆간나새끼야, 자꾸 까불면 목을 베겠다.'라고 한 마디라도 하는 순간부터 군은 와해되었을 테니.
또한 그는 다음날 전날의 일기를 적은 걸로 나는 생각하는데, 아마 하루를 시작하며 본인의 감정을 가다듬지 않았을까 싶다.
'밤새 아파 잠을 못자다 xx시경에야 잠들었다.' 라는 내용을 적고 잠들었을 거 같지는 않으므로.
7.
참고로 그의 일기에 대한 대략적인 스타일은 이렇다.
[오후 3시 맑음, 동료를 다섯명 모아 레드 드래곤을 잡으러 갔다. 동료 다섯명은 모두 벌벌 떨었으나 호통을 치니 그제야 말을 듣는다.
먼저 궁수를 통해 어그로를 끌어 레드 드래곤을 이끌어내고 좌우에서 도끼로 날개를 찢는다.
드래곤이 날지 못한채로 이성을 잃어 날 뛸 때즘에 극대마법을 시전해서 드래곤의 목을 베어 걸었다.
잡은 고기들은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대충 이따위 식이다. 대충 보면 별 거 없는 얘기인데, 자세히 보면 뭐지 이새끼.... 싶은...
그런 그의 기록 속에서도 유별나게 부각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 해전' 부근의 기록이다.
한번 본인이 적어냈다가, 다시 좀 더 자세하게 적어냈기 떄문에 같은 기간 2개의 일기가 존재한다.
본인의 전투를 너무 담백하게 적어서 전투를 한지도 모른 채로 지나간 일기에 적힌 다른 승리들과 다르게
이 떄즘의 기록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자세하다.
전투 전전날쯤엔 '13척의 배가 왔다가 돌아갔다.'라는 식의 묘사가 있는데
가만보면 이건 그를 도발하려는 왜군의 작태일 것이다. 13척의 군함에 맞춰서 13척의 배가 왔다갔으니.
다소 지나치게 세심한 그는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일기에 적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적들의 작태에 오히려 일말의 희망마저 보았을 것이다. 오만함은 방심을 부르니까.
그는 오직 앞에 있을 목표를 위해, 그에 걸맞는 감정상태를 고양해나갈 뿐이다.
부처가 이르기를 '두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라고 했으니
화살에 맞았으면 아프다고 부르짖지 말고 후속대처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일 거고, 그런 점에서는 인간이며 신이 된 자로 불리는 성인과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인간이 경외를 느끼는 부분은 대체로 비슷한 것일지.
8.
마침내 해전 당시
12척이 존나 말을 안 들어서 대장선이 혼자 나가서 오전 내내 탭댄스를 춰가며 무쌍을 찍고 있었다고 한다.
전투 중에 멀리서 구경하는 12척을 쫓아가서 목을 벨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호각을 불러 소집을 해서야 간신히 모집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안위라는 땅개출신 장수가 더 들어가진 못하고 망설이니,
배를 붙이고
'튄다고 살 수 있을 거 같냐?'를 시전한다.
이미 200척 정도 적군 앞에서 그의 근처까지 왔으면 훌륭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등을 떠밀어버린 것이다.
과연 안위는 닥돌을 시전하고
원래 그의 옆에서 그를 보호해야 할 임무를 맡은 김웅함이라는 양반도 제법 가까이 와있어서
'원래대로면 목부터 베야되는데.. 그래도 지금 사정이 바쁘니 일단 공부터 세우게 한다.'라고 말한다.
앞서 신위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다소 초짜를 적지에 밀어버린 다음, 숙장에게 쪽팔리지 않냐 이새끼야 공세울 기회는 준다고 말한 것이다. 이 상황속에서도 어르고 달래기라니..
그는 분명히 명량해전에서 이 말을 할 때 모든 절제와 위엄을 짜내서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양반이 튀면 확실히 지는 거니까.
다행히 그 정도로 상병신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그렇게 세 척이 닥돌을 하고나니
나머지 배들도 가까이 붙게 되었다. 단 한척의 배는 그럼에도 끝까지 붙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가 말했던 대로 결과적으로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쯤해서 해류가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바뀌고 여러 격전들 끝에 대략 30척을 박살내고 대승을 거둔다.
9.
'천행이었다.' 그의 일기에서 안도감이 나오는 장면은 매우 드문데,
그로서도 이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한 구절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13척으로 200척을 깨부수려고 한 것도 웃기거니와,
그를 제외한 12척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그는 혼자 나가서 200척과 대적하고, 그 격전 속에서도 동료들을 구슬려 상황을 반전시킨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게 가능한 인간이 되었을까?
추악하고 부정적인 인간의 굴레에서 충이라는 기치로 본인을 가다듬었으나
임금은 그를 고문하고, 어머니는 서울로 압송된 그를 보러오다 죽었다.
기적을 만들어내게끔 그를 이끈 것은 충은 확실히 아니었을 것이다.
졸라게 깐깐한 성품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그의 특유의 합리성과 그로 말미암은 엄격함으로 볼 때,
어쩌면 그가 서울로 압송되기 이전까지 기록한 선조에 대한 감읍한 마음은 그의 초고속 승진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알아보는 이는 임금뿐이라는 생각이었을 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토록 충성을 다하여 결국 불효하게끔 만들어낸 왕에 대한 충성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을 성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굳건한 의지로 나라를 지켜낸 것은
그가 유교적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서, 또 그의 책에 보이는 백성에 대한 태도를 통해 본다면,
아마도 백성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앞서 말했던 대로, 그의 행태가 '제가'까지 가능한 인물이라고 합의를 봤다고 가정할 때,
그가 백성에 대한 연민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는 치국까지는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을지?
수신하면 평천하가 가능하다는 말은, 수신할 수 있는 자는 연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처의 대자대비와도 비슷한 말일지도.
신처럼 보인다고 서문을 풀었지만, 사실 유교에서 왕에게 바라는 이상에 가깝지 않은가.
그러나 그를 이끈 가치가 무엇이건 간에
인간의 굴레라는 부정의 집합들을 그러모아 선으로 승격시킨 그의 모습에서 비인간적으로 인간적인 기묘한 품격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10.
맨날 아프고, 떄리고, 화내고, 술마시고, 놀고, 뒷담까야 되는 상황 속에서 선을 만들어낸 장군, 하지만 왕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한반도의 신, 충무공의 이야기다.
난중일기를 읽고 쓴 글이다.
*명량부분 내용이 기억 안나는 부분(장수이름, 전개과정) 나무위키 참조해서 대충 고쳐쓰고
세세하게 표현들 좀 다듬고 첨가함.
**대충 더 생각한 부분들 덧대어쓰고 원균을 원흉으로 선조를 임금으로 바꿔 적음, 나름 반전을 노리고 쓴 글이었는데 쓰다보니 깜빡했어서... 원흉이란 표현은 실제로 일기에서 한두번 정도 그렇게 씀. 개빡돌 때. 성이 김이었으면 김흉, 성이 이였으면 이흉이었을 거.
세줄요약좀
이게 독붕이로서 할 말이란 말인가? 마땅히 목을 베야 마땅하겠지만, 추천 한개가 급하므로, 일단 추천을 하게 한다.
개추
사료를 다 뒤져서 삶에 흠이 될만한 일 하나 없었다는게 진짜 신기하긴 해
보기드문 퀄의 감상문이로다
한국에서 전무후무는 통제공 전용 사자성어지.
난중일기를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읽어보고 싶어졌음. 아플 때 아프고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슬프고 화낼 때 화내고... 잘 읽었음
리뷰가...수준급....
좋다
와.. 그냥 작품이야
수정 전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