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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공동(空洞)의 언어
이청준이 논리어에 대항하는 새로운 언어 – 동양적 언어로의 전회를 꿈꾸었다면, 박솔뫼는 이러한 시도에 강력히 저항한다. 그것은 이청준이 만들어낸 영도(零度)의 언어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베케트가 “의사소통 할 수 없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하려는 것은 원숭이들의 천박함, 혹은 끔찍한 코믹입니다”라고 비판했듯이, 인간은 비언어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한순미는 그 지점에서 “그러한 말들의 고향(집) 찾기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작가의 총체적인 언어 추구는 불가능에 그친다”라고 말했다.
“‘서편제 안 봤어?’
‘서편제요?’
‘어. 서편제.’
‘서편제에서는 약을 먹이는데요.’
‘아니야. 서편제에서도 그러는데. 그렇게 노래시키는데. 약도 먹이고 여자애 팔을 묶 고 오빠는 발을 묶고 서로 도와주라 그러는데. 그래서 손발을 묶은 끈이 풀어지면 쉬 어라 그러는데. 그런 시간을 견디면 자기 소리를 찾는 거야. 그걸 보여주는 거야. 임 권택 감독은’”(「안 해」, 41쪽.)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이청준의 「서편제」를 원작으로 한다는 점에서, 박솔뫼가 텍스트 「서편제」에, 나아가 이청준에 가지는 일종의 반감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청준의 침묵은 “목이 쉬어라” 부른 끝에 얻는 자기 소리이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셀린 디옹도 아니고 코트니 러브도 아니고 이렇게 가다간 영영 되지도 못해”라는 자조 섞인 말은, 이청준의 침묵이 영영 이루어질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박솔뫼는 어떤 대안을 내놓는가? 그녀는 그저 관조한다. 비어있는 것을 채워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고전 서양 철학과도, 그걸 하나의 대안으로 바라보는 이청준과도 궤를 달리한다. 김녕은 “그것은 허무적인 공백이나 공허가 아니다. 말하자면 바람이 드나드는 공동이다”라고 그녀의 글을 묘사한 바 있다. 박솔뫼가 그리는 세계에서 글은 근본적으로 지루한 것이다. 진지할수록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이고, 우스운 것이다.
“병준은 눈을 감고 열창을 했고 노래를 부르는 병준을 보면 정말 노래에 감정을 담 고 있어 자기 노래에 자기가 집중하고 있어 뭐 이래 싶어서 웃고 싶어졌다.”(‘안 해’ 中)
그렇기에 작중 인물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서로의 서사를 잘라먹는다.
“뭔가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하려고 하는데 술을 마시던 남자가 대학생에게도 술을 따라 주며, 가는 건 난데 왜 네가 더 열을 내는 거지 하고 말했다.”(‘해만’ 中)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사회. 이야기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 사회. 그래서일까, 단편 ‘안 해’는 “그러니까 지금처럼 으음 앞으로 뭐든 열심히 안 해야지”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진지한 말, ‘의미있는 척 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박솔뫼는 대화가 들어갈 자리에 “신음 소리와 웃음소리만이 남아 있다.” ‘의미 있는 척’ 따윈 하지 않는다. 대신 의미 없는 소리를 채운다. 이처럼 공백을 채우는 기의나, 여백 그 자체의 의미를, 박솔뫼는 상정하지 않는다. 대신 의미없는 말을 넣을 뿐이다.
탈언어의 미학
이 글에서는 박솔뫼의 시선에서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를, 이청준의 시선에서 『그럼 무얼 부르지』를 살펴봄으로써 문학이 전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이청준은 논리어를 버리고 침묵의 언어를 내세운 반면, 박솔뫼는 침묵의 언어의 불가능성을 보이며 의미없는 언어 그대로를 보여준다.
우리는 “문학은 무엇을 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 두 작가가 내놓은 상이한 답변의 차이를 확인해보았다. 둘 중 어느 것이 옳은 답변인가? 둘 중 옳은 답이 있긴 한가? 마땅한 질문이지만, 대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이처럼 상이한 대답을 내놓는 작가들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 문학이 앞으로도 건재하리라는 것만큼은 확답할 수 있겠다.
참고:
이청준, 박솔뫼
-1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00149&page=1
-2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00150&page=1
정이현, "삼풍백화점"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9836&_rk=JRL&page=1
이청준 "병신과 머저리", "이어도", "벌레 이야기"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7809
김승옥 "역사"
-1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6969
-2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6971
한병철 "피로 사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6575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0943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0795
최인훈 "라울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34498
이기호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224264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나네오
박솔뫼 읽을만한가요?
배수아, 김사과, 정영문 이런 작가 좋아하면 읽을만 할듯
예전부터 느꼈는데 평론 준비해도 될 듯. 나도 이렇게 분석적으로 예리하게 써보고 싶다... 나는 좀 야매로 써가지고... - dc App
ㄱㅅㄱㅅ 여러모로 부족한 글 매번 읽어줘서 고마움 - dc App
박솔뫼 올해 안으로 츄라이할 계획인데, 박솔뫼가 무의미하고 소통되지 않는 언어로 기대하는 효과는 뭐임?? - dc App
내가 보기엔 "그냥 그렇다"가 핵심인 것 같음. 예를들어 고양이가 짖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 칸트와 같은 철학자는 고양이들끼리 소통할 고양이 언어를 새로 만들어내고, 이청준은 고양이의 침묵이 역설적으로 뭔갈 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지. 박솔뫼는 둘다 틀렸다, 고양이가 짖지 않는 건 무슨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고양이라서다, 그런 말 - dc App
인 것 같음. 물론 박솔뫼 작품이 꽤 많아서 이건 좀 단순화한 말이긴 한데, 박솔뫼 문체가 엄청 기괴하거든? 그 이유를 이런 방식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쓴 글이었음 - dc App
오호.. 최근에 내가 생각 중인 주제랑도 좀 맞닿는 것 같기도... 그럼 무얼 부르지로 입문해야겠다. 혹시 영화도 보면 내가 올린 글도 읽어봐 그 글도 그냥 그렇다에 주안점 두고 쓴 거라 연결되는 것 같다 - dc App
ㅇㅋㅇㅋ 읽어볼게 - dc App
아 누갤 념글에 있어 영화 안 봤어도 아마 읽을 수 있을 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