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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는 개념은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의 머리 위에 자리잡아왔다. 오늘날의 현대인들도 직간접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영향을 받아 신 혹은 신들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며, 이 관계는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합리주의 사상이 더더욱 공고화되더라도 쉽게 청산되지 않을 것이다. 신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나 유행을 아늑히 넘어선 존재가 된지 오래이다. 신을 묘사할 때 ‘문화’나 ‘유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큰 반발심을 불러올 정도로.
신은 오늘날에도 건재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신의 존재감이 점점 옅어져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나 상식으로 납득하기 힘든 수준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전부 신의 의중으로 설명했지만, 오늘날에는 이 역할을 과학과 지식에 넘겨주게 되었다. 아주 먼 훗날이라도 신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부정되는 시대가 오리라고는 내다볼 수 없지만, 신이 떠맡은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마냥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포클레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은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너무나도 절대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괴리감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이 낳은 수많은 이질감 중 대표적인 예로 칭할만하다.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너무나도 끔찍한 신탁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운명에 거세게 저항하나, 운명을 피하기 위해 행한 대부분의 행동들이 결국 자기 자신을 처참한 운명에 몰아넣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오이디푸스라는 영특한 인간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막대한 노력과 열정을 갈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손아귀 안에서 아예 벗어나지 못했다.
오이디푸스는 그가 장님이 된 이후에는, 『오이디푸스 왕』의 다음 시점을 다루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알 수 있듯 크레온이 오이디푸스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다면 크레온의 나라에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는 새로운 신탁에 의해 존귀한 취급을 받는다. 사실상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그러진 오이디푸스의 생애는 신탁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삶 전체는 신의 의중에 얼룩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그가 불행하기를 원한 신에 의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통을 받았으며, 이후 그가 불행으로 점철된 삶과 방황을 행복하게 내려놓기를 원한 신에 의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마감했다.
소포클레스가 묘사한 오이디푸스는 그의 능동적인 행동과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 결실을 전혀 맺지 못했다. 소포클레스의 이 작품들은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좋더라도 신에게 전혀 반항하지 못하며, 신은 인간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상을 진하게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막 완독한 시점에서는 오이디푸스의 운명에 대한 저항이 전부 무위로 돌아간 것을 근거로, 그의 저항과 능동적인 행동 자체를 너무나도 미약하게만 바라보았다. 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오이디푸스 나름대로의 능동성은 결국 신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인간의 의지를 신의 뜻에 빗대 이를 너무나도 부정적이고 미약하게만 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교양 수업에서 오이디푸스의 행적과 시대상에 대한 부연 설명을 듣고 나니, 내 자신이 생각하던 인간과 신의 관계가 너무나도 현대적인 관점이었음을 이해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신과 인간의 관계는 고대 그리스인이 생각했던 신과 인간의 관계보다 훨씬 수평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한 바는 그 시대에 너무나도 당연했던 신의 인간에 대한 우열이 아니라, 이토록 압도적인 신의 손아귀 안에서 최대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행위 자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고전은 대개 오래됐을수록 현대와 크게 동떨어진 간극을 가진다. 고전의 중요성을 논할 때 현대 사회와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고전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제반 지식이 부득이하게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 한권을 읽기 위해 제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갖추어야하나, 책 한권을 읽을 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등의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정해진 정답은 당연히 없다. 고전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대답은 책을 읽는 당신의 취향에 있다.
글쎄 이 비극이 노력하는 행위의 아름다움을 말한 건 아닐 텐데... 관심 있으면 그리스 비극과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공부해봐
어...이 독후감이 교양 수업 레포트로 썼던 걸 계량해서 올렸던 거였는데 당시 수업 결론이 그랬었음
그럼 일단 뭘 읽어보는게 좋을까? 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