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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엘이에도 올렸었는데 이 글에서 젊작상 이야기도 해봐서. 여기에서는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서 올려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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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나스 엑스, 퀴어의 힙합
이제 다베이비의 발언과 젊은작가상을 곁들인
1. 나스처럼 종횡무진하는 퀴어 래퍼
2021년 7월 23일, 릴 나스 엑스가 커밍아웃을 한 다음 두 번째로 신곡을 냈다. 나이키하고의 법적 공방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Industry Baby’의 Prelude와 이어지는 뮤직 비디오는 여러모로 도발적이었다.
먼저 릴 나스 엑스(이하 X)는 나이키 신발의 한 모델을 차용해,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미스치프(MSCHF)와 협업해서 사탄 슈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때 실제 미스치프 직원 6명의 피를 뽑아 주입한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 나이키는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X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었고, 엉뚱하게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5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사실 미국 힙합 씬에 뮤직비디오 Prelude 속 미국과 법정을 대입해보면 엉뚱하지 않다. 예전부터 힙합은 주로 남성들이 향유하던 문화였고, 1900년대 중후반부터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여성과 퀴어를 향한 혐오를 전혀 숨기지 않던 것이 힙합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때부터의 OG들을 보고 자란 사람들을 통해 지금까지 미국 힙합은 뿌리가 이어져 왔다. 지금도 미국 힙합 씬은 남초의 모습이 강세이다. 카디비, 니키 미나즈, 메간 디 스탈리온 등의 여성 래퍼가 활약하긴 하지만, 여젆히 네임드 래퍼는 남성이 대다수이다.
심지어 2010년대 중반부터 2021년 현재까지도 등장하는 루키들이나 기성 래퍼들이 보고 자란 우상도 대부분 남성이다. (켄드릭 라마, 제이지, 나스, 에미넴 등.) 그들 중 에미넴이나 DMX 등은 Faggot(한국어로 하면 똥X충)라는 혐오 워딩을 사용한 적*이 있을 정도로 미국 힙합 씬에서 게이는 환영받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퀴어에 대한 여론이 완화되어가는 미국 사회 속에서 유명 인물들이 하나 둘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표적으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도 이전에는 호모포비아적인 가사를 써서 출입 금지 헤프닝이 있었을 정도였으나, 후에 자신은 양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사례가 있다. 그리고 ‘Old Town Road’로 핫 데뷔를 한 X가 그 뒤를 이었다. X가 커밍아웃을 한 이후 펼치는 음악적 행보는 뮤지션으로서 급진적이라고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2. tell’em I ain’t layin’ low (그 새끼들한테 전해, 난 웅크리고 산 적 없다고!)
- Lil Nas X, Industry Baby
(이 파트에서부턴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이용한 해석이 이어집니다, 이미 다른 분들의 ‘MONTERO’의 해석을 보신 분들도 한 번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릴 나스 엑스는 돌연 2019년 7월 1일 무지개 이모티콘을 올리며 커밍아웃을 했다. 이때 자신이 데뷔 앨범 ‘7’의 수록곡 ‘C7osure’에서 이미 다 말한 줄 알았다고 언급하였는데, 살짝 멀리 나간 해석을 해보자면. 데뷔 앨범의 제목은 ‘7’이다. 수록곡이 8곡인데 왜 ‘7’인가를 그가 퀴어임을 공식적인 발언으로 밝히지 않고 있던 시기와 대입해보면 무지개의 색깔의 가짓수인 7을 제목으로 해 그를 암시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C7osure’ 또한 그렇다.
Brand new places I'll choose and I'll go, I know
Embracin' this news I behold unfoldin
새로운 곳을 골라서 내가 갈 거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나는 바라보네
‘C7osure’를 Closure, 즉 폐점이나 종료로 해석을 해보자. X의 데뷔 앨범 ‘7’의 수록곡에서 이미 데뷔하면서 발표한 ‘Old Town Road’와 그 리믹스를 제외하면 C7osure는 마지막을 맡는 곡이 된다. X는 이 곡을 마지막으로 퀴어임을 숨기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끝내고 제 2의 릴 나스 엑스의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라고 사실상 선언한다. 그 미래를 앞둔 자신을 상상하며 ‘새로운 사실(=X가 게이임)이 드러나는 것(=커밍아웃)하는 것을 나는 바라보네,’라고 부르는 것이다. X는 이때도 자신이 퀴어임을 숨길 생각이 없음을, 자세를 낮추지 않을 것임을 결심한 상태였다. 세상의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던 (‘C7osure: To let go, use my time to be free.’) X는 동성애를 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한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해버리며 동시에 자신의 동성애를 당당히 하는 행보를 시작했다.
X는 제목이 자신의 본명인 ‘MONTERO’의 부제를 동명의 퀴어 영화인 ‘Call Me By Your Name’의 제목을 그대로 따오면서부터 벌써 주제 의식을 암시해온다. 여기에서 화제가 된 촉발제는 바로 ‘MONTERO’의 일명 사탄 버전,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뮤직비디오다. 이 뮤직비디오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듯이, X는 기독교의 성경 속 구절과 신화까지도 끌어오면서 반기독교적인 성향을 드러냄과 동시에 퀴어로서 쟁취하는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행사했다. 지옥에나 가라는 비하에 유쾌하게 대응하기도 한 모습이다. 이렇게 X는 단순히 원 히트 원더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음악성을 동시에 표현해내고야 마는 뛰어난 래퍼가 되어 자신이 주도하기 시작한다. ‘MONTERO’에서 그가 ‘Never want the niggas that's in my league / 내가 펼친 판에 이제 너넨 원치 않지‘라고 말했듯이, 그는 호모포비아들이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음악 세계를 펼치고 있다.
3. 21세기, 급진적인 퀴어 문화
메간 디 스탈리온과 릴 나스 엑스, 그들의 교집합
최근의 한국 소설 작품들과 특히 젊은작가상 수상작들, 그리고 릴 나스 엑스의 최근 발매 곡들의 뮤직비디오의 공통점이 있다면 ’퀴어의, 퀴어를 위한, 퀴어에 의한‘ 창작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분명 ’퀴어의 시점에서 쓴‘ 사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수 천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도 여전히 사랑을 다룬 창작물에서는 헤테로섹슈얼이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여성은 함부로 성적으로 열려 있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배경에서 서사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이는 음악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엄격함은 동성애에 관해선 더욱 압박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가 1900년대 초중반 신여성 운동이 있었듯이 사람들은 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기 시작했고, 오늘날 힙합 씬에서는 그 점이 더욱 도드라졌다. 이를 메간 디 스탈리온의 2021 그래미 올해의 신인상 수상 심사평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메간 디 스탈리온은 카디비와의 ’WAP‘ 등의 활동에서 예술이라기엔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표현으로 인해 비판받기는 했으나, 여성으로서 성을 자유롭고 적나라하게 노래하는 메간 디 스탈리온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자유가 예전보다 과도한 정도라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를 시사할 수 있다.
그러나 퀴어들은 성적인 이야기를 할 자유를 여전히 확보하지 못 했다, 적어도 힙합에서만큼은. 로직(Logic)이 칼리드(Khalid)와 알레시아 카라(Alessia Cara)와 협업한 ’1-800-273-8255’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도 동성애자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었으나. 퀴어의 성을 이야기하는 래퍼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몬테로의 핫 샷 데뷔과 커밍아웃, 그 이후의 활동으로 이제 0에서 1로 수치가 증가했다.
릴 나스 엑스의 ’MONTERO’와 ‘Industry Baby’의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적지 않은 리스너들은 혐오감을 감추지 못 했다. 한국의 힙합 리스너들의 반응만 찾아보아도 릴 나스 엑스에 대한 시선이 완전히 좋지는 않은 점을 확인해볼 수 있다. 내가 이 리뷰에서 릴 나스 엑스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근거가 있다. X는 두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헤테로가 메인스트림인 힙합 씬의 요소를 게이의 관점으로 전환했다.
우선 현재 릴 나스 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힙합 뮤직비디오에서 대부분 빠지지 않는 요소가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명품이다.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번쩍이는 귀금속들을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주렁주렁 차고, 최고급 스포츠 카에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을 호가하는 의상을 착용하면서 사치를 통해 그들의 재력을 과시한다. 두 번째로는 마약과 술이다. 미국의 힙합은 주로 슬럼가에서 시작한 영향인지 마약이나 술은 앞에서 돈 자랑과 같이 뮤비와 가사 둘 다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다. 세 번째는 여성이다. 정확하게는 성적 대상화된 여성이다. 힙합 뮤직 비디오에서 여성들은 대부분이 헐벗은 듯한 복장을 입는다. 불필요해보이는 노출을 하면서 트월킹을 하거나, 래퍼와 밀접하게 신체적 접촉을 하는 연출이 노골적으로 특정 부위를 부각하는 각도에서 촬영되는 것은 당연스럽다는 듯 만연하다. 카디비나 메간 디 스탈리온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성적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릴 나스 엑스의 뮤직비디오는 이들과 차별적이었다. 우선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뮤직비디오에서는 재력을 비교적으로 거의 과시하지 않았다. Old Town Road의 경우 오로지 카우보이 복장과 승마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Panini나 MONTERO, Industry Baby 같은 경우도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CG 기술을 이용해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Panini 같은 경우 첨단 기술이 발전한 미래의 도시 속 모습을 그려내었고, MONTERO 같은 경우 동성애를 하며 죄를 저질러 지옥으로 기꺼이 향하는 주체적인 퀴어로서의 모습과 그 서사를 독창적이로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앞에서도 서술했듯 반기독교적인 요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기도 했다. Indusrty Baby의 뮤직비디오를 해석하면 미국 사회에서는 파급력이 어느 정도 대단한 X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5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후 본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감옥 안에서도 당당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라는 감옥 속에서도 그는 퀴어인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한다. ‘And this one is for champions.’ 그는 자신과 같이 버텨온,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며 자세를 굽히지 않은 같은 퀴어들을 향해 이 노래는 그들과 같은 챔피언을 위한 헌정곡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I don’t f*ck b*tches, I’m a queer, hah. But these n’s b*tches like Madea.‘라고 발언한다. 자신은 다른 래퍼들과 다르게 여자를 사랑하지도, 여성과의 성적 행위를 말하지도 않는 퀴어인데 그들은 Madea(*남자인데 여장을 하는 미국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퀴어였던 적도 없으면서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표출한 것이다. 이 외에도 Industry Baby의 뮤직비디오 속에는 장치가 더 있다. 동성애를 한정짓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한 오랜 노력과 그 결과물인 탈출구. 그리고 신발에 깨알같이 붙어있는 무지개 등이 있다.
결정적으로 리스너들이 릴 나스 엑스의 뮤직비디오에서 불쾌함을 표출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메이저 래퍼들의 뮤직비디오 속 세 번째 특징인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관련되어 있다. X의 뮤직비디오에는 여성이 나오지 않는다. Industry Baby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본인은 이성애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잭 할로우의 요청으로 출연한 여성과의 관계를 연출한 장면이 전부다. X는 출연한 남성 배우들과 함께 반라, 혹은 전라로, 혹은 크롭티를 입은 채로 트월킹을 하거나 기존 힙합 뮤직비디오 속 여성 배우들의 안무와 유사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집어넣으면서 퀴어의 관점에서 성을 표출했다. 이 점에서 리스너들은 불쾌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여전히 세상은 헤테로이기 때문이다.
젊은작가상과 최근 한국 문학 중 퀴어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퀴어인 인물들 사이의 서사와 행위를 표현하고 묘사하는 것이 그저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그 외에도 젊은작가상이 최근 퀴어 및 페미니즘 위주의 PC만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위주의 작품들만이 선정되고 그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일종의 미러링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이제껏 수많은 고전/근대 문학에서 여성과 퀴어들은 헤테로보다 열등하거나 혹은 비정상인 인물로 취급받아왔다. 현대에는 반사회적인 클리셰를 해소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혐오만 하지 않으면 된다.)
현실감 있는 퀴어들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 ’문라이트‘가 저명한 평론가들과 배우들에게도 극찬을 받았고, ’불타는 여인들의 초상‘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 소비자들 사이에서 적지 않게 높은 평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대중들에겐 낯설 뿐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점점 늘어나는 퀴어들의 목소리에 힘을 입은 퀴어 창작자들의 활동이 활성화됨에 따라 진취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양상은 어떤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4. 다베이비와 토리 레인즈, 티아이의 발언
혐오는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있는가?
최근 힙합 씬의 뜨거운 감자라면 칸예 웨스트 제외하면. 다베이비일 것이다. 다베이비는 최근 공연에서 퀴어를 향한 부적절한 발언을 하여 논란의 인물이 되었다. 호모포비아적인 발언의 파장으로 함께 ’Levitating‘을 작업한 두아 리파, 엘튼 존 등이 ’충격적이다’라는 식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그 둘은 진보주의적인 뮤지션들이라도 말이다.) 한편 토리 레인즈 같은 경우 이렇게 발언했다. ‘When did rap get so politically correct that u can’t speak your mind and have an opinion .... why the fuck was rap started?‘ 토리 레인즈는 흑인이고 속칭 ‘본토 래퍼’인데도 힙합이 왜 시작됐는지 잘 모르는 듯 하다. 검열과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서였지, 자신의 신념이 어떤 내용이고 반사회적인지 아닌지 고려하지 않고 생각을 하는 대로 말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다. 티아이는 ‘동성애를 사랑할 권리가 있다면 혐오할 권리도 있어야지.’라는 말을 했다. 혐오할 권리는 없다. 혐오는 부적절한 근거를 들고 대상을 싫어하는 행위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연인을 사랑하는데 누가 “야! 걔는 머리가 단발이잖아! 왜 걔하고 사귀냐? 미쳤냐? 평범한 사람 같지도 않네. 너 사람 맞냐?”라고 하는데 그걸 수용할 것인가? 혐오는 이런 문제다. 다르고 같은 문제가 아니라 옳고 틀린 문제다. 혐오는 틀렸다. 그들의 발언을 시원하다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이다. 특히나 다베이비 같은 경우에는 자신과 같이 작업한 적 있던 릴 나스 엑스가 퀴어임을 알면서도 해당 발언을 한 것은 굉장히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다베이비나 티아이 등의 나이를 고려하면 세대 간의 차이로 인한 모습이라고도 생각해볼 수가 있다. Z세대, 즉 현재 20대 초반인 사람들의 인격 형성기인 청소년기와 청소년기가 막 끝난 무렵까지, 그 이후에도 현대 사회에서 성소수자, 여성, 노인, 유아, 노동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던 상승 곡선을 보내온 사람들이고, 이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비교적 반 소수자적인 사회를 더 이른 시기에서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물론 개인적 환경 문제 역시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요소를 따져보면 그럴 것이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티아이, 에미넴 또한 40대일 때 호모포비아적인 발언이나 그러한 발언을 옹호한 적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힙합 씬에서도 이런 논리적 사고가 썩 정확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을 수도 있다. (물론 혐오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라는 것 아니다. 에미넴도 타일러를 fag**t이라고 디스한 1년 뒤에 사과를 하였으니까.)
다베이비와 같은 호모포비아인 그들이 릴 나스 엑스를 보기 싫어하는 것은 릴 나스 엑스가 자신의 음악에 삽입한 퀴어적 요소에 대한 진입 장벽이 모두를 휩쓸기는 힘들 정도의 진입 장벽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 (앞에서 말한 세대 차이라던지, 진보와 보수의 차이라던지.) 하지만 그 장벽조차도 호모포비아적인 그들이 가진 편견과 아직 편견이 남아있는 현대 사회의 잘못이 더욱 크다. 릴 나스 엑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악성으로 전 세계를 아우르고야 만다. 이미 스스로가 혐오의 피해자가 되어보았던 그는 자신이 이뤄낸 업적들과 열정, 그리고 실력을 무기로 하여 나아가는 중이다.
사실 이 이야기들을 하면서 꺼내보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혐오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용서되고 포용될 수 있는가였다. 피타입이 이전에 ‘힙합이란 폭력적인 잡종문화’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에 들어 나는 이것을 이해하고야 만다. 우리가 듣고 있는 힙합 음악에서는 ‘motherfucker’ ‘bitch’ ‘nigga’ 등의 욕설이 사용된다. 요즘 랩 가사에서는 번역되면 씹새끼, 개새끼, X신 등으로 해석이 되지만, 우리는 원래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이미 보고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표현들이 결코 혐오하는데에 사용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당장 뮤직비디오에서도 b*tch와 트월킹하는 여성들을 병치해놓는 구성을 확인해보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한국 힙합도 이미 혐오로 몇 차례 시끄러워진 적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블랙넛, 브레디스트릿, 스윙스, 창모 등이 그 사례에 해당되는 경우들이라고 볼 수 있다. (블랙넛의 여러 노래, 김효은 신곡에 피처링한 브레디스트릿의 가사, 애인을 향한 스윙스의 부적절한 언급, 창모의 여자 학생을 대상화한 듯한 가사 등. 이 중 브레디스트릿과 창모의 경우는 이후 일단락된 듯 했다.) 이 외에도 더 많을 수 있다. 이런 젠더적인 이슈 말고도 서로 타당한 이유 없이 싸우며 앙금만 쌓인 경우도 존재한다.
다른 예술과 힙합이 다른 점은 힙합은 그 시작의 근간에서부터 이미 저항과 폭력, 그리고 혐오가 이미 담겨있었고 이것이 그대로 내려오던 미국의 힙합이 다시 우리나라로, 다른 나라로 전해지고. 이것이 유지된 채로 투팍, 비기, 나스, 라킴 등의 앨범들은 바이블에 가깝게 여겨지고. 그렇기 때문에 힙합과 혐오는 서로 떼어내려 해도 이제는 디스도 하나의 힙합이 된 상황에서 분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영원하다. 음악은 예술의 한 형태이다. 카디비가 이전에 ‘WAP’를 컬처에게 들려주지 않고 중간에 소리를 끈 헤프닝이 있었다. 우리가 현재 듣고 만드는 음악이 후세에도 떳떳하게 모두가 들을 수 있기를 원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으려면 과격하고 혐오적인 특성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항의 상징인 힙합이 그저 폭력적인 잡종문화로만 남아있기를 원하지는 않으니까. 옛날에는 21 savage의 Bank account를 어린아이가 부르는데 그 아이도 욕설이나 은어는 묵음한 채로 커버한 영상이 떠돌지 않았는가. 우리가 과연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서 폭력과 욕설을 사용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과시는 배출 방식마저도 과격할 필요가 없다.
퀴어 서사가 공감을 못받는건 피해의식에 기반한 적대적 태도를 무고한 일반인에게까지 일반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과격한 표현 수단에 대한 이 글의 부정적 태도도 문화적 우월감이 근저에 깔린 교조주의라고밖에 보이지 않고
요약하면 퀴어가 비판받는 이유는 비판받던 주제이기 때문이고 퀴어와 관련된 작품들이 나오는 이유는 억압받던 자들의 몸부림이다 라는것 같은데 만일 퀴어가 불편한 이유로 너무나 의도적인 퀴어 밀어주기와 이를 통해 관련된 자들이 갖는 선민의식이 싫은 사람이라면 이 글은 그냥 개소리로 느껴질테고 그냥 저냥 게이 레즈같은 퀴어 자체가 싫은 사람이고 이를 의도적으로 표출하면서 비판할 수준의 사람한텐 설득력이 있겠네 근데 음악은 예술의 한 형태이기 이전에 즐기기 위한 콘텐츠 아닌가? 카디비가 지 딸한테 wap를 못 들려준건 너무나 선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격하고 혐오적이기 때문이라면서 body좌랑 wap 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성적 자유도가 높아졌음을 시사한다는 본문 내용을 봤을때 대체 무슨 음악을 지양해야 한다는건지 모르겠는데 힙합의 근간 자체가 저항과 폭력, 혐오를 담은 예술인데 물론 이같은 혐오가 심해져선 안되는거겠지만 만
만일 없어진다면 힙합은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억압받던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던 힙합이 억압받는 게이와 레즈들의 자유와 해방을 상징할 방향성으로 흘러가야 한다? 백인 래퍼랑 흑인 래퍼랑 디스전 할 때 둘 다 인종차별 주의자새끼 라고 음악도 안듣는 애들이 이야기를 한다고 사회적 영향이 있었나? 무조건 적으로 한 쪽이 옳다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등신 호구새끼 만드는? 서로에 대한 개방적인 혐오를 통해서 발전한 디스와 힙합만의 원초적인 재미가 사라지고 혐오와 차별 포르노그래피적인 모든 유희적 요소가 사라진 개노잼 저항의 예술 힙합에 남는게 뭐가 있겠냐? 같잖은 이데올로기 전파용 선전매체가 되는거 아닐까? 그런 힙합이 좋아? - dc App
저런 올바름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라 위캔드가 노미 마저도 못 탄거려나 근데 난 ㅠㅠ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둘리랑 떨 한대 태우고 싶게 만들어주는 blueberry faygo나 betternow같은 음악이 좋다 동성애 한다고 5년 때려맞은건 이해가 안가지만 저런 PC사상을 예술계에 들여와서 사랑, 우정얘기만이 남게 된다면 또 이걸 까는 힙합이 나타나지 않을까? 굳이 개노잼의 시대를 겪어야해? - dc App
실제로 5년형 때려맞은게아니라 뮤비에서의 픽션임 ㅋㅋ
젊은작가상과 최근 한국 문학 중 퀴어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퀴어인 인물들 사이의 서사와 행위를 표현하고 묘사하는 것이 그저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여기서 그냥 내림 ㅋㅋ 수고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