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b86fa11d02831d16706cea37200d6da918d798475dc62593f8ec7bc976e352968d94ebda4ad23643a3211198c5d7df5b446fde069e26d59bc1a



책 서문에서 저자는 간략히 이 책을 쓴 목적을 밝힌다. 냉전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냉전이 어떠했다는 것을 전체적으로 알려주는 개론서를 쓰고자 했다는 것이다. 서문이 기대한 예상 독자 중 한 명으로서 저자가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냉전에 대한 세부적인 사건들을 알고 싶은 사람이나 이미 냉전에 대해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도, 이 한 권을 읽는 것으로 냉전이라는 개념이 어떤 식이었는지, 어떻게 이 냉전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발생할 수밖에 없던 것이라, 그나마 최선이라 여겨졌는지, 그리고 그 환상이 어떻게 천천히 깨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개론서라는 의도에 걸맞게, 개디스는 냉전 시기의 사건들을 서술해나가며 상당한 분량을 해석에 할애한다. 이 각각의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고, 그 사건들이 전체 지정학적인, 외교적인 의미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점차 변화하는 판도 속에서 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하나의 큰 흐름, 그러면서도 일관적인 흐름으로 엮어나가는 식이다. 냉전은 물론 두 이념 사이의 갈등이다. 하지만 사실 냉전의 핵심을 그것이 아니라 무지에 있다.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무지,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얼마나 큰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무지, 그리고 상대만 보느라 상대와 자신 사이에 껴 있는 수많은 국가들에 대한 무지가 전부 합쳐지며 이성적인 판단으로 비이성적인 행동을 고르다가, 점차 무지의 장막이 흐려져가면서,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두 부분을 고르자면,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실각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전쟁의 무익함을 꼽겠다. 전자는 도덕의 정상화를 상징한다. 물론, 닉슨 이전에도 케네디나 아이젠하워 등의 대통령들이 해외에서 온갖 초법적 행위들을 해왔지만, 닉슨이 국내에서의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그것이 보안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가 무너진 뒤로, 이러한 초법적 행위는 더 이상 현실과 발맞추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국민들의 예외 상태에 대한 최면적인 감각이 급작스럽게 깨어난 것이다. 후자는 외교 관계에서의 정상화다. 앙골라와 소말리아 따위의 분쟁에서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는 데에 성공한 소련이 본격적으로 이런 것들이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바로 그 때니 말이다. 아프간에서 일어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쿠데타와 정권 수립 이후 이들을 돕기 위해 군사 개입에 들어갔지만, 그 결과로 소련이 얻은 건 안 그래도 기름 외에는 수렁 속에 있는 국내 재정의 더욱 급속한 파탄이었다.



지금, 냉전이 끝나고 무지의 장막이 완전히 걷힌 이 시대에 (물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을 신 냉전이라 조명하는 시각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이 냉전에 한하여) 과거를 돌아보자면 참 믿을 수 없고 안타까운 선택들이 가득하다. 베트남 전쟁만 하더라도,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악연을 좀 더 알았고 남베트남 정권에 대한 태도가 조금만 달랐더라면 그만큼 무의미하게 파괴적이고 오점만 가득한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하거나, 그저 단순한 현대인의 오만함 이상의 무언가를 이해하려고자 한다면, 어쨌든 우리는 냉전이라는 시대가 어떤 분위기였고 어떤 전제들을 안고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냉전의 역사>는 그 점에서 상당히 탁월하게 우리를 과거 속으로 들어오도록 설득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재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먼지 덮인 역사 속으로 들어앉은 과거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