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마주한건 몇 년 전 순천만국가정원 행사에서였다.


교과서에서도 소개되는 김승옥 작가의 사인회

천재였던 그는 뇌졸증으로 형형한 눈빛이 사라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명성은 영원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그의 사인을 받지 않았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사인을 받아볼 수 있었다.


내가 이름을 적어주면 자원봉사자가 사인을 리드하는 수준이었다.

즉, 자필로 사람들 이름을 쓰는 것조차 그는 버거워 보였다.


무진기행, 만으로 23살에 쓴 그의 글은 놀랍게 홍상수 영화 그 느낌이다.

(아마도 홍감독이 영향을 받았겠지.)


그의 소설을 보면 막힘이 없다. 20대 초반에 이미 고민없이 적어낸 듯한 완성된 기교.

하지만 나를 인지하질 못하는 병자의 영혼없는 눈빛에서 '작가의 유통기한'을 찾게 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가 요절하면 젊은 사진을 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그 이론에 따르면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나 나약해서 자살했다고 꾸짖고 본인도 같은 길을 간 미시마 유키오는

중년의 얼굴에 머물러있다.


딴엔 왠 허무주의냐고 하겠냐만, 그의 빛나던 20대의 글재주가 애닯기 때문이다.

태어나 예의 잘생겼다는 소리 한 번 들은 적 없는 남자가 미남 노배우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같은 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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