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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은 고려 말의 유명한 성리학자다. 그는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 말 3은으로 불리며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 학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색은 성리학자이자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도현철의 저작은 이를 주목하였다. 


이색의 경우 필자가 보기에 그의 행적이나 정치사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이색은 당대의 권력자였던 이인임과도 교류했으며, 유불동도론을 주장하며 불씨잡변 등을 통해 과격한 불교 배척 사상을 보였던 정도전과 달리 불교에도 관용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준의 전제개혁이나 정도전의 역성혁명을 모두 반대했으며, 고려 왕조의 유지를 위해 구법을 존중하고 성리학 외의 사상에도 관용적이었으며, 문벌과 좌주 문생 등 문제가 있었던 제도에 대해서도 긍정하였다. 


이는 정도전과는 완전히 상반된 입장인데 필자는 이것이 두 사람의 사회경제적 배경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정도전은 미천한 출생으로 가진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이색은 아버지 이곡의 원에서의 출사로 인해 비교적 유복한 생활을 하는 등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맀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람의 사상에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급진적 제도 개혁을 반대한 이색이 나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혼란기의 급진적 개혁은 혼란을 더 심화시킬 수 있기에 관료 제도의 개혁을 통한 온건 개혁을 주장한 이색의 방향도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색의 정치사상에서 배울 점은 그의 유연함이다. 그는 사상적으로 성리학을 보완하기 위해 불교와 도교에도 관용적이었으며 주자를 절대화하지 않았다. 이는 고려 왕조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도 볼 수 있고, 조선 왕조의 힉일적, 공격적인 사상계의 동향에 대한 대비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색을 통해 보수 정치가의 의의와 한계를 알 수 있다.